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마리노에 위치한 헌팅턴 도서관(Huntington Library)을 방문했다. 오래 전, 근처에서 담임 목회를 할 때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을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찾았다. '도서관엘 왜 가는 거지?'라는 의문점을 지닌 채 가본 그곳은 도서관뿐 아니라, 미술관과 식물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서 줄 서는 바람에 입장하는 데만도 한참 걸렸다.
그 장소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서관 외에도 18세기 및 19세기 유럽 미술과 17세기에서 20세기 중반 미국 미술에 중점을 둔 광범위한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또한 '일본 정원', '중국 정원', 그리고 '사막 정원' 등 약 120에이커(49ha) 규모의 전문 식물 조경 정원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 정원'에는 다다미방 같은 집이 완전 오픈해서 공개되어 있고, 대나무와 단풍이 우거진 멋진 전경을 뽐내고 있었다.
'중국 정원'에는 오색찬란한 금붕어들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연못과 작은 성곽 같은 건물들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사진 찍기에 적격인 장소들이었다. 세 번째 방문한 '사막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선인장들이 집결되어 있어서 사진 찍기의 최고 장소가 되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다양하고 특색있는 선인장은 처음 구경했다. 하나님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하신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거길 방문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뭐니 뭐니해도 헌팅턴에서 내가 가장 방문하고픈 곳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구텐베르크가 제작해서 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성경책이 있는 장소였다. 목사와 교수의 신분에 그보다 더 큰 소망은 없을 것 아니겠나.
요한 구텐베르크(약 1397~1468년)가 제작한 성경은 서양에서 활자로 인쇄된 최초의 실질적인 책이다. 이것이 등장한 시기는 1455년경이라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최초의 175부의 판본 중 오늘날 48부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중 36부는 종이에, 12부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만든 모피지에 인쇄되었단다. 오늘 우리가 방문한 헌팅턴은 미국에 있는 세 개의 양피지 판본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큰 크기로 화려하게 제본이 되어 있는데, 개인용이 아닌 기관용으로 돈이 많은 수도원이나 교회의 소유였음을 시사한다. 활자로 찍어낸 최초의 성경책이라 그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고 가거나, 아니면 나처럼 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구텐베르크와 같은 분의 재능과 수고로 인해 성경이 활자로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됨이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헌팅턴 도서관에 기념으로 전시되어 있는 그 성경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집이나 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는 성경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놓쳐선 안 된다.
기념하는 것만으로는 실제적인 도움이 되질 않는다. 손에 들고 읽고 묵상해서 은혜받고 변화 받을 수 있는 성경이 가까이 있음에도, 전혀 활용하지 못해서 조금도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구텐베르크에 의해 서양 최초의 활자로 인쇄한, 헌팅턴 도서관에 비치된 성경책 한 권의 값은 얼마일까? 팔지도 않겠지만, 값으로 따진다면 어마어마한 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책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값지고 소중한 최고의 성경책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집에 있는 성경책이나 스마트폰 속에 있는 성경책이다. 가끔씩 야외에서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닐 땐 스마트폰 속에 있는 성경을 읽으며 은혜를 받곤 한다.
영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A bird in the hand is worth two in the bush."(손에 있는 새 한 마리가 수풀에 있는 새 두 마리보다 낫다)
그렇다. 2024년 새해엔 우리 모두가 어느 해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종이 위에 기록된 글자라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글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에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의 삶이 경험될 것이다. 어느 해보다 '성경의 해'가 우리 모두에게 펼쳐지길 소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