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Photo : )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행전 2:44-46)

우리 민족은 6.25 사변을 통해 공산당의 실체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한 북한에서 해방 이후 그리고 6.25 사변 때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봇짐을 지고,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공산당의 잔혹한 행위는 누누이 밝혀져 있습니다. 소위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통해 자본가, 지식인, 공무원, 군인가족, 경찰가족, 기독교 성직자 등 수많은 사람을 즉결 처형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공산당에 놀라 남한으로 피난을 온 것입니다.

공산(共産)이란 한마디로 말해 ‘재산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유재산이 없고, 모든 재산은 공동체의 소유로, 특별히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도, 가

한 사람도 없는, 골고루 평등하게 나누며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Karl Marx의 주장이었습니다.

막스의 주장에 따라 소련의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고, 그 후 중국의 모택동과 북한의 김일성이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해서 실천했습니다.

최초 공산주의 체제가 실현된 곳은 바로 예수님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성경은 예루살렘 교회의 공산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고....”(행 2:44-46)

이렇게 각 사람이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던 것이 원시 공산 사회의 전형(全形)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시 공산 사회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 이하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짐으로 히브리 파 사람을 원망하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히브리파 사람들이 헬라파 과부들에게 매일의 구제를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우들 간에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 간에 차별이 생겼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공산 사회가 오래가지 못하고 분쟁에 휩쓸린 이유는 인간 차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오순절에 불같은 성령을 받았을 때는 자기의 재산을 아낌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열정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 왔을 때,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내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생겨났고, 또 건강하면서도 열심히 일하지 않고 빈등거리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구제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과부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제금이 넉넉하지 않자, 자연히 토박이인 히브리파 과부들에게는 나누어 주면서도, 외부에서 들어 온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구제를 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최초의 분쟁 사건은 처음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 안의 과부들 구제 문제였습니다. 즉 물질의 분배 문제였습니다. 물질은 항상 공정하게 분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과부들의 가정 형편, 즉 나이가 얼마냐, 아이들은 몇 명이냐, 재산은 얼마나 되느냐,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냐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공정하게 구제를 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습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재산(구제)의 공정한 분배는 그 어떤 문제보다 어려웠습니다. 공정한 분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일 계속 쓰겠습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