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힘과 인도
여호수아 2장 22절-3장 17절

달라스 큰나무교회 김귀보목사
(Photo : ) 김귀보 목사

사람들에게 자심감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 안에 자신감이 충만하면 평소에 하는 것에 몇 배나 더 잘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요소들은 예상외로 많이 있다. 칭찬, 인정, 내 편인 사람들, 내가 가진 재력, 좋은 환경, 내 건강, 내 외모, 말주변, 지식 등등.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자신감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빼앗길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빼앗기지 않는 자심감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신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신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순종해 봤을 때 확인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점령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정탐군을 보냈다. 그 정탐군들이 하는 보고가 24절이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정탐군들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확인되었다. 우리가 가장 힘이 날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확인될 때다. 이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심감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출발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마주대했다. 1절을 보자.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그날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이유가 15절에 나온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요단강은 건기에는 강 넓이가 30m도 채 되지 않고 수심도 그리 깊지 않은 강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기가 되면 갑자기 돌변한다. 봄이 되면서 헬몬산과 레바논의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거기에다 장마비가 쏟아진다. 이 물들이 모두 수심이 낮은 요단강으로 모여들어 사해바다로 흘러간다. 이때 요단강은 강뚝이 물에 잠기고 강 넓이가 최고 1.6km까지 강이 확장되기도 하고 물살이 무려 시속16km에 달하는 급류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에 도착한 때가 곡식 거두는 시기라고 했다.(15절)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이다. 이스라엘은 10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다. 특히 파종기인 10월과 추수기 바로 전인 3월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이것을 성경은 ’이른 비와 늦은 비‘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늦은 비가 내린 직후에 요단강에 도착했기 때문에 요단강의 수심과 넓이 그리고 급류가 최고조에 달한 때이다. 여호수아는 넘실거리는 요단강물 앞에서 기가 질려서 건널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텐트를 치라고 명령한 것이다. 2절에 보면 그 후에 또 사흘이 지났다고 이야기 한다. 요단강에 막혀서 3일 동안 건너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이 전에 한 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수1:10-11)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고 자신감을 얻어서 3일 안에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런데 약속한 3일 안에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다.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 정탐꾼이 추격하는 적들을 피한다고 산에서 3일을 숨어 있었기 때문에 약속한 3일은 이미 다 지나갔다.(수2:22) 3일이 지난 다음에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이번에는 요단강 앞에서 막혀버렸다. 그리고 또 3일이 흘렸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이런 상황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획했던 일들이 막히고, 확신을 가지고 한 일들이 잘 안풀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호수아의 모습을 한번 보자. 하나님이 확신을 주셔서 말하고 계획한 일이 막혔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2절과 3절을 보자.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요단강 때문에 가로막힌 여호수아는 3일 뒤에 요단강을 건너는 구체적인 방법과 지시를 내린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면 너희는 그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럼 요단강 앞에서 막힌 3일 동안 여호수아는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는 말이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이 막힌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통해서 여리고성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 요단강은 건너게 될까? 못건너게 될까? 하나님이 반드시 건너게 하실 것인데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 뭘해야 하는가?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여기서 봐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자신감의 근거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확신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 자기 확신을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려고 했다면 포기하게 된다. 요단강을 보면 볼 수록 못 건널 이유만 생각이 난다. “하나님이 요단강을 통해서 우리 길을 막으시니까 건너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어처구니 없는 해석까지 붙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삶 속에서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확신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널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셨다. 첫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3절-5절까지를 보자.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내일 아침이 되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 너희도 그 뒤를 따라서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법궤를 멘 제사장들 따라갈 때 이천규빗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라.” 한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길이를 말한다. 약 45cm가 된다. 그런데 계산하기 편하게 50cm 정도로 보는 경우들이 많다. 그럼 이천규빗은 약 1km가 된다.

이천규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분이시다. 길을 내시는 분이시다. 뒤쳐져서 우리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분이 아니시다. 힘든 길도 막힌길도 앞서 가시면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신다.(사43:19)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신다.(시23:4)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시고, 불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하신다.(사43:2)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안전하고, 막힌 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이천규빗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거리이기도 하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 놓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을 섬길 때 사랑과 존중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무례해진다. 너무 멀면 관계가 끊어진다. 엘리제사장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가 하나님께 무례해져버렸다. 사울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버렸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사무엘을 하나님도 존중히 여겨 주셔서 사무엘의 말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한다. 5절을 보자.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성결하게 하라는 것은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라는 것이다. 성결을 도덕적이고, 성적으로 깨끗한 몸의 성결로만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몸의 성결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의 성결, 생각의 성결이다. 마음의 성결, 생각의 성결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순전함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마음과 생각이 성결하지 못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두번째는 제사장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6절을 보자.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제사장들에게는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백성 앞에 서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그 요단강을 갈라진 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요단강물이 흘러내릴 때 그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5절에 보면 요단강물은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잠기고 난 뒤에 갈라졌다.

하나님은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의 선봉에 서기를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발걸음을 가장 먼저 내 디뎌야 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지도자들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직분자들은 성도들의 영적인 선봉에 서야 한다. 예배의 자리에, 기도의 자리에, 섬김의 자리에 가장 선봉에 서야할 사람들이 직분자들이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운영위원, 가지장, 각부서 임원들 모두 선봉에 서야할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세번째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7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요단강 도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너의 영적인 지도력과 권위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요단강 앞에서 제일 두려운 사람이 누구인가? 여호수아이다. 물도 그치지 않은 요단 강물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일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사장들에게 법궤를 메고 물이 철철 흘러 넘치는 요단강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를 믿고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의 결단을 하고, 믿음의 선포를 하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뎌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요단강을 가르셨다. 17절을 보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또 우리에게 사탄의 권세를 이길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주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무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주셔서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럼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 앞에서 두려워 떨고, 문제 앞에 좌절하고, 문제 앞에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으로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믿고 그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이 시각으로 보면 우리가 겪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고, 해결된 문제다. 우리가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뭘 해야 하는가? 문제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문제를 이미 해결하신 예수님께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을 들어야 한다. 길이 가로막혔으면 무조건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왜 가로막혔는지 물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알려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두려운 마음이 들고, 안된다는 절망감이 들면 왜 그 마음이 드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사탄이 주는 것인지 기도 하면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사탄이 주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물리치고 그 생각을 내 속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새 마음과 새영을 내 마음에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복음의 눈으로 보면 문제는 모두다 하나님을 만날 통로가 된다. 문제를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아라. 복음의 눈으로 보면 문제 뒤에 역사하는 사탄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그 사탄의 권세를 꺾으라. 문제 앞에 내 마음대로 결론내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묻고 기다려보라.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다.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다고 기도해보라.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펴서 읽어보라. 기도하고 주일 말씀을 기다려보라.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다. 그리고 잘 못들으면 목회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문제와 막힘 앞에서 반드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해결책과 음성을 듣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