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작동버튼, 순종
여호수아 1장 10절-18절

달라스 큰나무교회 김귀보목사
(Photo : ) 김귀보 목사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 컴퓨터, 전자기기 안에는 편리한 기능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그런 좋은 기능들도 실행시키는 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우리가 원하는 기능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행시키는 버튼을 눌려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수많은 축복의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약속들이 우리 삶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활성화 시키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 버튼이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의 버튼을 누르면 그 말씀은 우리 삶에서 실행된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서 두려워 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다.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모세에게 약속한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두려워 하지 말고 실행하라.

하나님이 하신 약속에 대한 여호수아의 첫번째 행동이 무엇인가? 즉각 순종이었다. 10절과 11절을 보자. “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힘이 났다. 격려가 되었다. 마음 속에 도전해 보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그래서 즉각 순종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지만 거기서 멈추어 버리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실제 삶의 변화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감정적인 위로로 끝나 버리는 경우들이 많다. 말씀은 우리의 감정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도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말씀을 우리의 감정과 상처를 치료하는데만 이용하면 능력을 낭비하는 꼴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게 하는 능력을 준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해야 하는 반응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선포를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위로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머뭇거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두 가지를 선포했다.

첫번째는 사흘 안에 요단강을 건너갈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은 믿음의 선포이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선포로부터 시작한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먼저 믿음의 선포를 했다. 에스더가 믿음의 선포를 했다. 선포는 대적을 향한 기선제압이다. 선포는 우리 안에 불신앙을 향한 선전포고이다. 사탄을 향한 선전포고이다. 사람은 말에 따라서 뇌가 움직인다. 뇌가 움직이면 몸이 반응한다. 이것은 말만 앞서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선포하고 시작하라는 말이다. 믿음으로 도전하면 하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양식을 준비하라고 했다. 지금도 먹을 양식인 만나가 내리고 있었다. 만나는 요단강을 건너서 유월절을 지키고 가나안 땅에서 수확한 양식을 먹고 난 뒤에 그쳤다. 지금 만나가 내리고 있는데 왜 양식을 준비하라고 하는가? 요단강 도하는 그냥 요단강만 건너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바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만나를 거두어서 먹을 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전쟁을 대비해서 미리 양식을 준비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이 있다. 평소에 내리는 만나와 전쟁을 위한 양식은 다르다. 평소에 내리는 만나로는 전쟁을 준비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한 것을 원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려면 평소에 기도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틀을 깨뜨리는 것이다. 갇혀 있는 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멈춰 있던 것들을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고장난 것을 고치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반대작용들도 많다. 사탄의 역사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평소와 똑같이 해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다. 새로운 일을 위해서는 양식을 준비하듯 기도 계획부터 세워야한다. 기도하는 교회가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 기도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말만 하고, 생각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을 했다. 르우벤 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를 불러서 전쟁이 시작되면 선봉에서 싸우라고 했다. 선봉에서 싸우는 것은 전쟁을 할 때 가장 앞에 서서 적들과 가장 먼저 맞이 하는 것이다. 선봉에 서서 싸우는 것은 고난과 희생이 따른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선봉에 서는 사람에게 보상을 두둑히 한다. 사울왕은 골리앗과 싸울 때 선봉에 서서 골리앗과 싸워 이기는 사람에게 왕의 사위가 되는 상을 걸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선봉에 선다는 것은 이렇게 위험하기 때문에 보통 전쟁을 할 때에는 번갈아 가면서 선봉을 맡는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두 지파 반에게 선봉에 서서 싸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지파 반은 여호수아 말을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16절을 보자.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두 지파 반이 여호수아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데는 이유가 있다. 13절과 14절을 보자.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도 않았는데 이 두 지파 반은 이미 땅을 분배받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민수기 32장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요단강 동쪽 편을 먼저 점령했다. 이 땅은 헤스본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통치하던 땅이었다. 산악지역인 요단강 서쪽편과 달리 평야지대라서 물이 넉넉하고 풀이 잘 자라서 목축을 하기에 딱 좋은 땅이었다. 가축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던 르우벤과 갓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그땅을 보자 탐이났다. 그래서 모세를 찾아가서 그 땅을 자기들에게 먼저 달라고 요구를 했다. 이것은 명백한 반칙행위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 전체를 다 차지하고 난 뒤에 제비를 뽑아서 각 지파에 땅을 분배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두 지파 반이 요단강을 건너기도 전에 땅을 먼저 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행위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신의를 깨뜨리는 행동이었다. 모세는 두 지파 반의 이런 행동을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 반역한 것만큼이나 큰 범죄로 봤다. 이 두 지파반이 한 행동 때문에 나머지 지파들은 분노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도 전에 내분이 일어날 위기에 처했다.

다행이 모세의 중재로 그 일은 잘 마무리 되었다. 가축이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그 두 지파 반이 먼저 땅을 차지하게 해주었다. 대신 두 지파 반의 남자들은 그땅에 남아 있지 않고, 완전무장을 하고 나머지 지파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서 모든 전쟁마다 선봉에 서서 싸우기로 했다. 땅을 먼저 분배 받는 대신 선봉에 서서 싸우는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지파들이 요단강 서쪽에서 땅을 다 정복하고 난 뒤에 자기 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두 지파 반의 남자들은 총 11만 명이었는데, 실제로 요단강을 건너가서 선봉에 서서 싸운 숫자는 4만명이었다.(수4:13) 나머지 7만명은 남아서 가족들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두 지파 반을 불러서 그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반드시 지키라고 이야기 했고, 두 지파 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16절을 보자.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두 지파 반은 과거에 자기들의 욕심 때문에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고 자기들이 한 약속을 지켰다. 이것이 중요하다. 희생하고 섬기기 보다 이기적으로 내 것을 먼저 챙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사람이다.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다. 인간이 어떠한지 잘 아신다. 그래서 용서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4-15)

예수님을 베드로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예수님은 베드로가 배신한 후에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돌이키기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돌이킬 때에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중요한 사명을 맡겨주셨다.

우리는 한번 잘못을 저지르면 고집 부리고 엇나가는 경우들이 있다.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에 본심과 다르게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사탄의 부추김이다. 돌이키라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감정에 순종하면 감정의 종이 된다. 죄책감에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된다.

이 두 지파 반은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돌이킬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에게 힘이 되는 역할까지 한다. 17절-18절을 보자.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이 두 지파 반의 과거의 행동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했던 두 지파 반이 누구도 서고 싶지 않은 전쟁의 선봉에 서서 형제들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한다. 자신들이 했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면서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한때 이스라엘에 실망과 괴로움을 안겨주었던 지파들이 이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자랑이 되었다. 한때는 자기 욕심을 챙기던 사람들이 선봉에 서서 희생하면서 진정한 공동체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늘 잘하는 사람이 꾸준히 잘하는 것은 너무나 큰 감동을 준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변화되고 회복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큰 감동이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이런 곳이다. 과거에 잘못한 사람들이 과거에 발목 잡혀 사는 곳이 아니라, 복음과 말씀으로 변화되어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곳이다. 과거에 실패한 사람들이 실패의 고통을 안고 사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성취하는 기쁨을 누리는 곳이다.

두 지파 반은 왜 선봉에 섰는가? 자기들이 받은 은혜를 알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섰다. 우리가 왜 섬김과 봉사를 하는가?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반드시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은혜 받은 것이다. 은혜는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섬김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은혜는 자기 만족으로 끝나 버린다.

받은 은혜가 있다면 선봉에 서라. 기도의 은혜를 받았다면 기도의 선봉에 서라. 섬김으로 은혜를 받은 적이 있다면 섬김의 선봉에 서라. 어릴 때 자기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준 교사가 있었다면 교사로 선봉에 서라.

선봉에 서는 사람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선봉에 섰다고 해서 자기가 Leader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Follower이다. 이스라엘의 선봉에 선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했다. 지파들의 선봉에 선 두개 반 지파는 영적인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순종했다. 이 영적 질서가 깨지면 분열이 일어나고 사탄이 틈을 타고, 영적 질서가 지켜질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순종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여러분의 인생에 실행시키는 삶을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