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겸손보다 더 무거운 짐 없어
'목사님, 30분 설교하고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에요?'
설교시간에는 여호수아처럼 '담대하라'
정작 자신은 주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형 교회들을 돕고 상생하는 길을 열기 위해 기획된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그 막을 올렸다.

첫째날인 6일(월) 오후 2시에 박성호 목사(ANC 온누리교회)의 사회로 진행된 개회예배에서 김성규 목사(주백성교회)의 개회기도, 이인규 대표(기독일보)의 인사말, 이건창 목사(발랜시아 샘물교회)의 설교로 개회예배를 드리고, 구봉주 목사(감사한인교회)가 인사말을 전했다.

조별 모임 및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샬롬 김 박사는 "예수님의 비전 멘토링" 강의를 이끌었으며, 이어서 조별토론, 저녁식사 후 원하트 워십가 저녁집회를 이끌었다.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원하트 미니스트리(OneHeart Ministry, 피터 박 목사)가 저녁 집회의 찬양을 인도했다.

지동근 목사(베이커스필드 아름다운 교회)의 기도로 시작된 첫 날 저녁집회에서, 김영길 목사(TMF 대표)는 "겸손하고 온유한 목회"(마 11:29-30) 라는 제목으로 집회에 모인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들에게 자신의 목회의 경험을 나누며 참석자들을 위로하고, 목회라는 힘들고 무거운 짐을 가벼운 짐으로 만들 수 있는 비결을 전하며 소망을 전했다.

"내 자신을 누군가 위에 놓으려 할 때 피곤해진다. 스스로 높임 받고 싶은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경쟁의식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겸손은 억지로 겸손하려 하면 그 보다 더 짊어지기 어려운 멍에가 없다. 겸손은 노력이 아니다. 억지로 겸손하려 하면 더 괴롭다."

그는 "겸손과 온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이다. 예수님의 멍에는 사랑의 멍에이다"라며,"옛날에 제가 교단 총회장을 하면서 자주 목사님에게 한 이야기가 있다. '목사님, 왜 이 길로 들어섰습니까? 가서 잔디만 깎아도 2만 불은 버는데. 사례비도 못받으시면서.이 일이 여러분의 삶에 가장 보배로운 길이라 생각해서 선택한 것 아니에요? 그러면 보배로운 사명을 감당할 때 감격스러움을 갖고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목사님, 30분 설교하고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에요?'

김영길 목사
(Photo : 기독일보 ) 김영길 목사가 11월 6-9일(월-수)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린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 저녁집회에서

그는 1983년 개척을 막 시작할 무렵,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1983년에 창립예배를 드리기 전에, 제 아내와 저와 둘이 두 시간이 30분 청소를 하고 20달러를 받았다. 20 달러면, 알파와 베타라고 하는 슈퍼마켓에서 카트가 가득 채워진다. 교회를 시작하고 1년 반쯤되었을 때, 교인이 100명 쯤 되었는데, 어떤 집사님이 안경 너머로 웃으며, '목사님, 30분 설교하고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에요?' 저는 웃음이 안 나왔다. 그때 제가 받고 있는 사례비가 700 불이었다. 다우니에서 애들 둘과 제 아내와 네식구가 사는데 1200 sqft 집 렌트비가 한 달에 천 불이었다. 굶고 살아도 절대 부족한 돈이 300 불이었다. 궁리하고 궁리하다가 LA 타임스를 배달하는 장소를 찾아갔다. 한 달에 600불을 받으며 비오는 겨울이면 비닐을 씌워 배달하며 그것으로 300불 부족한 집값을 넣고, 십일조를 내고, 나머지를 사용하는 때였다."

특별한 캐릭터 가득한 이민 개척교회

특별한 캐릭터를 지닌 이들이 가득한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며, 제직회의 때마다 '빨리 다른 목사님을 찾으라'고도 했다. 한 번 은 안수집사가 그를 교회 뒤로 끌거가더니, "목사님이 그만두신다 할 때 마다 간이 붙었다 떨어진다 하는데, 그러지 마시고 그냥 그만둬 버리세요." 그말에 그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러분 중에 정말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민 오는 수는 점점 줄어들고, 새로운 세대는 영어권으로 들어가고 교회 전망은 부정적이다. 미국 중소도시 교회를 찾아가 보면, 특별히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를 찾아가 보면 심각하다. 교회 평균 연령이 65-75세이고, 젊은이는 아예 없다. 그 외에도 많은 멍에가 있다. 설교시간에는 여호수아처럼 '담대하라'고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주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기력 조차 없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어서 그는 플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 교수의 수업에서 들은, 100 Barrier라는 개념이 잊혀 지지 않는다며, 이 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풀러에 있을 때, 피터 와그너 교수님이 얘기하신 barrier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교회가 성장해야 하는데, 100명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사역해서 곧 100명이 넘을 줄 알았는데, 둘로 나눠지고, 다시 남은 팀들이 기도하고 2~3년쯤 지나서 다시 100명 가까이 갔는데 또 나눠진다. 이민 목회에서 수도 없이 봤다. 이게 100 barrier다."

김영길 목사에 따르면, 이민교회가 이 장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정' 때문. 교회가 성장하고 커지면, 가족같았던 옛 교회의 모습을 잃어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첫째날 저녁 집회 모습.

교회 성장의 임계점, 넘으려면

"제가 발견한 이유는, 한국인은 정이 많다. 10명이 모여서 개척하고, 2~30명이 될 때, 굉장히 가정적 분위기이다. 40~50명이 되면, 목사님이 바빠지고,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고 섭섭함이 들어온다. 굉장히 이중적이 된다. 한편으로는 부흥이 되어서 좋은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공허하다. 옛 교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사소한 일로 떨어져 나간다. 빙산이 떨어져 나가듯 떨어져 나간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00의 barrier는 넘어서기 힘들다. 넘어서는 길이 하나 있다. 1 미터 보자기를 네 귀퉁이에서 잡아 당기면, 평평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방 5미터 정도 되는 보자기를 잡아 당기면 가운데가 축 쳐진다. 20미터 보자기를 잡아 당기면, 그 가운데는 땅에 닿게 된다.

'장막의 터를 넓히고 줄을 길게 하고', 좋죠. 보자기를 올려야지, 안 올리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거기에 꽉 차 있는 것이다."

교회안 갈등과 분란, 무엇으로 해결가능?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극에 있는 집들이 지붕이 높은 것 처럼 가운데 기둥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더 넓게 펼칠 수 있다. 중앙의 기둥은 뭘 상징할까? 교회가 카페를 만들어 사이 좋게 지내게 하면 될까?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세울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이 주의 종들이다. 성도가 서로를 바라보며 원망하고 평면적이고 수평적인 교회가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할까? 목사님이 매일 맥도날드 데리고 다니고 다니면 가능할까? 철 따라 여행 데리고 다니면 가능할까? 천만의 말씀. 다른 길은 없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이다."

35살에 목회를 시작해, 37살이 되었을 때, 김영길 목사는 새벽에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목사되었나요?' 라고.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그의 마음 속에 두가지 장면을 보여주셨다.

하나는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63년, 그는 시골마을에 가서 3박 4일동안 여름성경학교 봉사를 했고, 그것을 계기로, 매 주일 45분이 걸리는, 교회가 없던 그 시골 마을에 2년 동안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가서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2년 동안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인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성탄주일인데,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가보니, 난리가 났다. 26살 먹은 처녀가 29살 먹은 총각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리고는 둘이 씩씩거리고 서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뺨을 때린 분에게, '어떻게 세 살이나 많은 분의 뺨을 때립니까, 당장 사과하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고, 9살 차이가 났다. 그런데 이 성격이 깐깐한 분이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사과를 했다. 하나님이 그 권위를 내게 주시는 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2년 동안, 교회 성도는 30명이 되었고, 당시 뺨을 때렸던 여자분은 사모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전, 50년 만에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분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첫째날 저녁 집회 모습.

숙모의 기도, "네가 태어난 날부터 기도해 왔다"

목회의 소명에 확신이 서지 않던 그에게, 하나님이 응답처럼 떠오르게 한 기억은, 그를 키워준 숙모의 기도였다.

"저를 길러주셨던 작은 어머니가 계시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저를 길러주셨다. 저는 전라남도 강진에서 농업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동네 어르신 할머니 한 분이 저를 불러서, '졸업하면 뭐 하려고 하니?'하고 물으셨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번도 인생의 내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5급 공무원을 할까', '오일장을 따라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또 2주 후에 또 다른 할머니가 저를 불러서 똑같은 질문을 하셨다. 작은 어머니가 저와 혈연지간이 아니니, 자립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12월 말 책가방을 들고 집에 들어가는데 작은 어머니가 여기 앉으라고 하셔서, 마음을 다 잡고 옆에 앉았다.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너 서울에 한국신학대학에 가거라. 네가 태어난 날부터 너를 세계적인 주의 종이 되라고 기도해 왔다.' 그것을 생각나게 하셨다. 예레미야를 태중에서 부르셨고 바울을 태중에서 부르셨듯, 저를 먼저 택하시고 부르셨다."

특별한 성격을 지닌 이민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에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 "네 말 말고 내(하나님) 말을 생생하게 전해라"가 그 답이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다 들여다 보고 싶다. '수고롭지, 무겁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세상에 이런 오퍼를 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제자는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겸손과 온유함을 우리 영혼육이 기억할 수 있도록, 내 근육이 기억할 수 있도록, 내 혀가 기억할 수 있도록, 내 눈동자가 기억할 수 있도록 마스터하라."

요나서의 주제는, 니느웨의 구원 아닌, 요나의 구원

이어서 그는 요나서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이 요나라는 거친 성격의 선지자를 변화시키고 빚어가셨는가를 이야기했다.

"요나는 아주 특별한 선지자이다. 하나님과 말싸움 하는 데 선수였다. 요나처럼 하나님 앞에 대든 선지자가 없었다. 니느웨에 가서 멸망을 예언하라니까, 즉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 요나는 스불론 사람이다. 최북방에 있는 경계선이다. 앗수르 북방에서 남쪽으로 침범해 내려올 때 제일 많이 수탈당했던 스불론 지파에 속한 사람이다. 앗수르에게 한이 맺힌 사람이었다."

그는 니느웨가 아닌, 전혀 엉뚱한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진 요나에 대해, "하나님께 선지자가 부족하신가? 앗수르를 회개시키는데 꼭 선지자가 필요한가? 한 번만 지진을 흔드시거나, 나팔 소리만 크게 내도, 앗수르는 회개시킬 수 있었다"며 그럼에고 끝까지 하나님은 요나를 놓지 않고 붙드셨다고 말했다.

"요나 놔 버리셔도 되는데,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셨다. 은혜이다. 교만이 깨지고 겸손하게 되는 것 우리 힘으로 안 된다. 겸손한 척 할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겸손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

김영길 목사는 요나서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중요한 것은 요나를 바꿔주신 것이다. 요나서는 앗수르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이 어덯게 그의 종 요나를 구원하셨는가, 어떻게 요나를 더 가끼이 오게 했는가, 어떻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만들어졌는가, 어떻게 바리새인처럼 심판에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까지도 품에 안을 수 있을 만큼 온화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는가이다"라고 말했다.

겸손한 목사, 너그러운 목사 되면, 짐은 깃털처럼 가벼워져

"겸손한 목사로, 너그러운 목자로, 바꿔주시면 우리 목회가 수고가 아니다. 무거운 짐이 아니다. 깃털 처럼 가볍다. 성도가 몇 명이든지, 제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된 다음에 제가 하나님 앞에 겸손을 연습한 것이 설교를 준비하는 자세였다. 늘 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아주 나이브하고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 주일에도 성도들이 말씀을 들으러 옵니다. 주님, 주의 백성들에게 무슨 말씀하시고 싶으세요.' 그리고 귀를 기울이고 기다리고 묵상한다."

"그게 제 마음 속의 원칙이었다. 설교 준비를 했는데 영 감동이 없을 때가 있다. 새벽 1시-2시가 되어도 안 된다. 새벽 4시가 되어도 준비가 안 된다. 새벽 5시,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동시에 제 마음 속에 많지도 않은 몇 개의 단어, 몇 문장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컴퓨터로 설교원고를 작성하고, 45분 잤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첫째날 저녁 집회 모습.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첫째날 저녁 집회 모습.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첫째날 저녁 집회 모습
위 브릿지 컨퍼런스
(Photo : 기독일보) 제2회 위 브릿지 컨퍼런스가 11월 6일 오후 2시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첫째날 저녁집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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