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코로나 시대에 자가 격리를 하면서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책들을 읽는 축복을 누렸다. 2주간 장기 격리 기간에 영원한 고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을 읽었다. 이런 고전들을 낑낑대며 읽다가 기독교 고전에 대한 소양이 부족함을 자각했다. 내친김에 검색을 하고 주문을 해서 기독교 고전을 읽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고전이란, 예수님의 제자들 이후 시대부터 생산된 서신과 저작들을 말한다.

 부끄럽게도 목사가 되어 3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도 기독교 고전을 읽기는커녕 관심도 두지 못했다. 인문학 고전들은 뒤적이면서도 신앙의 고전들을 살피지 못했던 것은 목사로서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코로나 시대에 기독교 고전을 읽은 정말 감사한 축복이다. 기독교 고전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지만, 기독교 고전은 신앙과 기독교 인문학의 보고(寶庫)다. 기독교 고전은 시기적으로는 신약성서 기록 이후 시대(속 사도시대)부터 7세기 혹은 8세기에 이르는 기독교 문서들을 가리킨다. 기독교 고전의 내용은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인정하는 신앙 문서다. 당시의 신앙과 교회의 형편 그리고 그 시절 득세했던 이단들의 정보가 담겨 있고 이단들에 대한 교회의 반응이 담겨 있는 소중한 자료다.

기독교 고전을 접하며 가장 먼저 읽은 글이 안디옥 교회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글들이다.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은 놀라운 정보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이그나티우스 목사(감독)의 의연한 모습과 그의 심장이 담겨 있는 글들을 읽으며 그의 용기와 담대함에 부럽고 감사했다. 그리고 그를 따랐던 성도들의 야성과 열정도 부러웠다.

안디옥 교회 담임 목회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요한의 제자다. 그런데 베드로의 후계자로 베드로의 임명으로 안디옥 교회 감독으로 목회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온 교회사를 통하여 매우 귀중한 신앙의 증언을 남겼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와 바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은 그의 직접적인 제자였다고 한다.

초대교회 전설에 의하면 이그나티우스는 마가복음 9장(마태 18장)에 예수님께서 품에 안으셨던(머리를 쓰다듬었던) 아이라고 합니다. 2세기 교회 공동체가 이그나티우스를 그만큼 존경하고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목회했던 안디옥 교회는 물론 그가 로마로 호송되던 노정 주변에 있는 교회들에 대하여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걸출한 지도자였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은 시리아 안디옥 교회를 목회하면서 그리스도를 주(主)로서 선전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는 곧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수가 되어 안디옥에서 여러 도시를 거쳐 로마로 압송되었다. 잔인한 로마 군병들에 의해 끌려가면서 몇 곳에 머물렀다. 그가 머물렀던 서머나와 드로아에서 자신을 방문해 주었던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그나티우스가 남긴 서신은 모두 7개인데, 6개의 서신은 수신자가 교회들이다. 6개의 서신의 수신 교회는 에베소, 막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필라델피아, 그리고 서머나 교회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에베소 교회는 빌레몬서에 등장하는 오네시모가 담임 목회자였다. 마지막 일곱 번째 서신은 자신의 동역자이자 후배요 사형수가 되어 끌려가는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서머나 교회 폴리갑 감독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의 편지들에서 밝힌 그의 소원대로 로마에서 맹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의 순교는 당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폴리갑, 오리겐, 제롬 그리고 유세비우스의 증언에 의하면 로마에서 야수의 밥이 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여러 순교 기록은 거의 유사해서 신뢰성을 준다.

이그나티우스의 인격과 신앙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그가 거쳐 간 도시들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그나티우스를 존경하고 더욱 사모하였다. 이런 소식을 들은 로마 교회는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구명운동을 강하게 전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로마교회에 보낸 이그나티우스의 서신에서 그는 구명운동을 강하게 만류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강청(强請)했다.

개인과 교회에 보낸 개인적인 편지들이 회람문서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순교한 후에 그를 특별히 존경하고 사모하였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폴리갑 감독에게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을 필사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폴리갑 감독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들을 전해 주었고 이 소식을 들었던 주변 교회들도 그 편지들을 구하고, 필사본이 보급되어 회람되면서 2세기, 3세기 교회에 중요한 문서로 유통되게 되었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편지를 보낸 6개 교회 중 로마교회를 제외하면 모두 이그나티우스를 찾아와 위문했던 교회들이다. 그는 그 교회들에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고 방문했던 목회자와 성도 대표를 언급하며 칭찬했다. 죽음을 향해 압송되어 가는 신앙인이 보여주는 여유와 담대함이 아름답다.

이그나티우스는 6개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의 질서와 하나 됨을 강조했다. 목회자와 평신도 리더들인 집사들의 권위를 강하게 주장한다. 교회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따르지 않는 행태를 강하게 질책했다. 심지어 주교를 그리스도 대하듯 대하라고 권했다.

예수님의 뒤를 이은 사도들은 대단했습니다. 사도들의 권위가 그대로 속사도 교부들에게 이양되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당시 목회자의 권위나 리더십에 도전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례들이 많았다. 이런 교회 상황을 반영한 이그나티우스는 ‘권위에 순종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가르친다.
이그나티우스는 유대교와 영지주의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서신에 이단 문제를 언급했다. 이단에 빠져 순수한 신앙에서 이탈되는 것을 막는 길은 예수님을 닮은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자기 순교였다. 그는 자신의 순교가 방해받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고난의 현장에서 찬란히 빛나는 그의 야성이 부럽다. 그의 당당한 순교를 목격했던 서머나 감독 폴리갑도 곧 순교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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