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Photo :기독일보) 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인생이 죄인에서 성도가 되듯이, 아삽자손은 끝에서 시작해서 높이 쓰임을 받게 됩니다. 아삽의 처음 시작은 성전 문지기였습니다, 다음은 헤만 다음의 제2 지휘자가 됩니다. 그리고 말씀 연구로 하나님의 사람 선견자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히스기야 때의 기록을 보면, 히스기야 왕 때 귀인들과 레위 사람들로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자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했다 했습니다. 아삽의 기본 깨달음은 이스라엘 백성은 혈통으로만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로 언약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배 자에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인은 나쁜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악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아는 악한 일로 악인이 되는 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악인인 것입니다. 또한 현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잘 믿는데 왜? 남보다 잘 살지 못하고, 남보다 충성과 헌신을 다 하는데 아프고 막히는가? 을 생각합니다. 반면에 악인은 하는 일이 잘 됩니다.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납니다. 합리적인 세계에서만 보면, 그리 보일 수 있습니다. 70-80년 사는 인생으로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삽자손은 넘어질 뻔했고, 미끄러질 뻔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성소의 눈으로 종말을 보니 현재의 부조리 문제가 해결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선함이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행복은 잘됨 정도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선하게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도 잘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실이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잘되려면, 적당히 남을 속이고 사기도 쳐야 잘 될 수 있다 합니다. 그러면 선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이를 인간은 선과 행복을 왔다 갔다 하는 비극적 존재, 갈등하는 존재라고 한 것입니다. 선하면서 행복한 것을 최고선이라고 하지만. 최고선이 있으려면, 현세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내세가 있어야 하고, 영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현재의 과제는 무엇인가? 동행과 사명인 것입니다. 기다림 속에서 동행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소의 깨달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겠다는 고백 속에서 삶의 부조리나 모순이 예배로 풀린다는 겁니다. 비록 현재가 모순과 부조리 가운데 있다 해도 하나님 임재의 뜨거운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순과 부조리가 풀리며,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전부라고 예배 중심의 말씀을 증거 한 선견자가 아삽자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