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사역자이기에 남편과는 다른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는 제자가 있다. 신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 여교수인데, 아침에 카톡을 보내왔다. 남편이 출석하는 교회의 새벽기도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는데,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오늘 설교 중에 내가 한 말씀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반가워서 그 내용을 문자로 적어서 보내왔다.

뭔가 했더니 낯설지 않은 내용이었다. 제자가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 부분만 영상을 보고 받아 적은 것 같은데, 문장을 매끄럽게 수정해서 소개해본다.

"아신대학교의 신성욱 교수님은 '오늘날 설교자의 설교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인용하는 설교자들을 지적합니다. 이것만큼 비성경적인 것이 없음에도 강단에서 설교 시에 설교자들이 자주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신 교수님은 이 문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적인 내용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스스로 도울 능력이 없는 자를 도우신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스스로 구원할 수도 없는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에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주님은 부활 승천하신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계신 것이 아니라 이끄시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을 끝까지 견인하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이처럼 내 책에 나오는 내용이나 페북에 올리는 글이나 강의의 내용들을 가지고 설교에 인용하는 이들이 꽤 있음을 안다. 오늘 제자처럼 그걸 본 이들이 반가운 나머지 그 내용을 캡처해 보내주기에 그런 사실이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내 글이나 책이나 강의 내용들이 설교자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고 기쁜 일이다. 한편으론 내 한 마디가 잘못되었을 땐 얼마나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뛰어난 교수는 아니지만 나 또한 강의의 내용이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어 구체적인 변화로 열매 맺길 고대한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폭이 넓어지면서 기쁨과 보람도 크지만,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선다. 잘못 가르쳐서 배우는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주제나 내용이면 몰라도 '생명의 말씀'을 가르침에 있어서 무지와 실력부족으로 인해 배우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생기면면 큰일 난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시각장애 언어학자인 일본의 호리코시 요시하루가 쓴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충격적이었다. 눈과 시력을 가진 나를 참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말한다. "세계는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만져보고 들어보고 맛보고 맡아보는 것이다"라고. 눈을 사로잡는 온갖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본다'와 '안다'가 같은 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보지 않고 보는 것이 가능할까?

시각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예민한 더듬이가 '정상'으로 가득한 세상과 감각의 경계를 유쾌하게 뒤집어엎으며, 빛이 없지만 어둠도 없는 일상을 입체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나면서부터 눈으로 보고 철이 들면서부터 눈으로 판단해온 나로선 전혀 이해하지 못한 세계를 그는 새롭게 소개한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비록 나면서부터 나처럼 사물을 보진 못하지만, 내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고, 그걸 또 잘 묘사하고 있다.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보지 못한 제자들을 책망하신 주님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막 8:18).

나면서부터 빛도 어둠도 존재하지 않는 이가 깨닫고 전하는 얘기가 남다름을 보게 되었다. '내가 육안으로 보고 알고 깨닫는 게 다가 아니구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욱 겸손해야겠구나!'란 생각을 오늘만큼 깊이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무지에 대한 자각도 깊어진다. 그래도 보다 깊이, 보다 많이, 보다 정확하게 알아가고픈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지에 대한 깨달음이 더해지더라도 참 지식에 대한 갈구만큼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님을 늘 깨닫고 인식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주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늘 겸손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