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의장국인 미국과 한국, 일본이 공동 요청한 북한 인권 상황이 정식토의 의제로 채택했다. 이번 북한 인권 공개회의는 2017년 이후 6년 만에 재개됐다는 것과 중국, 러시아의 반대 표명이 없어 곧바로 공개토의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번 안보리 북한인권 공개회의는 당초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반대 의사를 표명해 회의 개최 여부를 놓고 절차 투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회의 전까지 반대하던 중국이 막상 회의 당일엔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는 바람에 곧바로 의제가 채택됐다.

이 회의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매 해 한 차례씩 열렸다. 그러나 이후 6년간 어느 국가도 회의를 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한 데 있었지만 당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김정은과 미·북 정상회담에 몰두하느라 이슈를 제기하지 않은 탓도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번 회의는 개최 직전까지도 과연 회의가 열릴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다. 지금까지 열린 네 차례 회의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와 두 나라에 동조하는 몇몇 나라 때문에 매번 투표로 어렵게 회의 개최가 결정됐었다. 그런 전례로 봐 이번에도 15개 이사국 중 과연 몇 나라가 찬성하고, 반대하게 될지 외교부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게 사실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회의를 열 때마다 정치적인 이슈를 다뤄선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반대해 온 나라다. 유엔 안보리의 존재 이유가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인데 북한 인권 문제는 한 국가의 정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북한 인권 문제의 불똥이 자국의 인권 문제로 옮겨 붙지 않을까 우려하는 심리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

그런 분위기로 인해 유엔 안팎에서는 회의 직전까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나니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했던 두 나라가 회의 개최에 반대하는 의사 표명을 일체 하지 않는 뜻밖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우려곡절 끝에, 그것도 6년 만에 재개된 유엔 안보리 북한 인권 관련 회의가 던져준 가장 큰 의미는 최근 점점 더 심각해지는 북한 인권 상황에 국제사회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한 데 있다. 그만큼 북한 인권 문제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중심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이전 문 정부와 180도 달라진 대북 인권 대응 방식에 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안보리 의제가 아니라며 매번 북한 편을 들던 중국과 러시아가 회의 개최에 토를 달지 않은 배경엔 국제사회에 고조되는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뜻도 내포돼 있다.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앞에선 돕는 척하지만 여론의 화살이 자국의 문제로 돌아오는 걸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볼커 터크 유엔인권고등판무관과 비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최근의 북한 인권 상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단연 주목을 끈 건 탈북민 김일혁 씨의 증언이다. 김 씨는 이날 북한의 참혹한 인권 유린 상황을 증언하며 "북한이 미사일 단 한 발에 사용하는 돈이면 북한 주민을 세 달간 먹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영어로 "북한 주민에게는 인권도, 표현의 자유도, 법치주의도 없다"며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역에 시달린다"고 폭로했다. 증언 마지막에 "북한 정권에 나의 언어(한국어)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우리 북한 사람들도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절규했다.

이날 김 씨의 증언은 회의에 참석한 유엔 안보리 회원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큰 울림이 됐다. 비록 이번에도 의장성명이나 결의안 등 안보리 차원의 조치가 나오지 못한 건 아쉽지만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의 성명에 52개국이나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번 유엔 안보리 북한 인권 공개회의에 앞서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북한인권시민연합 등 대북단체들은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 및 중국의 탈북민 강제송환 정책 문제를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10년째 북한에 억류돼 있는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 씨 등도 여기에 동참했다.

비록 이런 내용이 결의안으로 채택되진 못했지만 상당수의 유엔 회원국이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해 연대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도 성과가 적지 않았다. 또 이번 안보리 회의는 북한이 실질적인 인권 개선을 하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만 믿고 있다간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해석된다. 탈북민 김 씨의 호소처럼 북한이 주민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로 변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