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쉘 목사
(Photo : 기독일보 ) 우미쉘 목사

갑작스럽게 닥친 가난, 부끄럽고 비참했던 10대의 마지막과 20대 초 중반
10년 넘게 계속되던 악몽, 친구들의 수군거림과 눈길을 피하고 싶던 그때

"예수님을 향한 갈망이 제 성향을 뛰어넘는다."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집에 수영장, 농구장, 테니스장이 있었고 교회 강당보다 더 큰 백야드가 있었다. 그런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나. 고 2 때 이전과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살던 집은 팔리고, 갈 곳이 없어 노숙할 처지였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작은 투베드룸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그때가 대학진학을 앞둔 수험생 때였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줄리어드 음대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등록금도 없고 생활비도 대줄 수 없었다.

"나만 빼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대학 생활의 로망을 즐기는 듯 보였다. 나보다 더 실력이 없던 친구들이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며 좌절감과 상실감이 깊어졌다. 친구들은 보스턴으로, 다른 도시로 가서 대학 생활을 즐기는데 나는 아직도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했다. 무엇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 작은 한인 커뮤니티 안에 우리 집 소문이 다 퍼진 것이다. 친구들이, '미쉘 우 아빠가 동전 100개를 가지고 가스 스테이션에 담배를 사러 왔더라'고 쑥덕이고, 우아한 사모님이던 엄마가 마트에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지만, 그 당시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는지 10년 넘게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우미쉘 목사(만나교회, 를 포함해 다섯 가족이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데, 꿈속에서도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꿈 속에서 집안을 돌아다니며 눈물을 흘리다 잠을 깨곤 했다.

우 미쉘 목사는 청년 시절을, "10대의 마지막 20대 초중반을 우울감에 시달리며 허비해 버린 것 같다"고 회상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정오에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에, 가난한 현실을 조롱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 친구들의 시선을 벗어나고 싶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지난 8월 19일(토) 오후 6시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주님의영광교회에서 원하트미니스트(문화사역단체, 대표=피터박목사) 주최로 우미쉘 목사의 찬양집회가 열렸다. 우미쉘 목사는 LA에서 태어나 얼바인에서 성장한 한인 2세로, 현재는 분당 만나교회(담임 김병삼 목사)를 섬기며, 많은 청년집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오직 주로 인해(Because who you are)',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예수님 때문에 (고상연)', '높이 계신 주께'(제이어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서' 등을 파워풀한 목소리로 찬양하며,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간증을 나누었다.

우미쉘
(Photo : 기독일보 ) 지난 8월 19일(토) 오후 6시 주님의영광교회에서 원하트미니스트와 함께하는 우미쉘 목사의 찬양집회가 열렸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인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 싶다. 이 여인은 사마리아인이며 여자라는 이유로 천시를 받아왔다. 해가 뜨거운 대낮에 편도 2킬로가 넘는 거리를 혼자 물을 길으러 다닌 여인이다. 인생의 패배자. 문란하다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보잘것없는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 주시는 것인가? 4장은 3장과 짝을 이뤄 읽어야한다.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누시고 본문에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신다. 한 명은 유대의 최고 의회의 회원이었던 신분이 높은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천대받은,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우 목사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최고의 인간과 최하의 인간, 지식인이 무식한 자, 의인과 음행한 자"로 두 인물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 역시 그 은혜가 절대로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자였다며, 카톨릭 모태신앙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왔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상실감을 수험생 때 맞닥뜨리고,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을 꿈꿨던 학교를 포기하고 아무 주립대학에나 들어가 시간을 허비했다. '헛헛한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친구 따라서 교회에 "놀러"갔다. 그러면서 그는 "전도의 중요성이 여기 있다. 친구 따라서 교회에 놀러 갔다가 목사까지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 간 교회가 남가주사랑의 교회였다. 거기서 말씀을 처음으로 들었다. 메시지를 듣는데,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해서 계속 말씀이 마음이 심기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저에게 들려주신 음성이 있다. 세상의 음성과는 너무나 다른 음성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평생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낮 12시에 고생을 해서 겨우 우물가에 왔는데, 우물가에 낯선 남자가 서 있다. 그것도 유대인 남자가 서 있으니, 이 여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저는 이 여인이 이렇게 생각했을 거 같다. '아 오늘 망했다, 오늘 잘못 걸렸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물을 길어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 멸시와 조롱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을 것 같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했을 거 같다.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이 여인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따뜻하고 친절한 음성이다. 저는 이런 말 들어왔다. 너희 가정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거야. 제 자존감을 짓밟았던 음성 대신에 네 있는 모습 그대로 와 줄래. 이미 너희 삶에 놀라운 일들을 많이 계획해 놓았어. 너는 나의 자랑스러운 딸이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예수님의 따뜻한 음성이었다."

우 목사는 매일 예배 콘티를 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매일 콘티를 짜다 보니 새로운 곡을 찾아다니는데, 얼마전 부산 집회를 마치고 수서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한 재생해서 들은 곡이 있다며, 어노인팅이 새로 편곡한 '어려운 일 당할 때'를 불렀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은 예수뿐일세.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타투를 언급하며, "손목을 보면서 저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기억한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고 수치이다. 타투를 보며, 자격 없는 자를 세워주시고,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

우 목사는 페이지교회(page_church, 신재웅 목사)의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그대로 두진 않으신다'는 글을 인용하며, "구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난 전후의 변화가 확연하게 나타난다"라며,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시선을 피하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벅찬 소식을 널리 널리 전하고 다닌다. 저는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앞에 서기 어려워하는 성향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뒤에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제 성향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을 향한 갈망이 제 성향을 극복하게한다"고 삶의 변화를 나눴다.

우미쉘
(Photo : 기독일보 ) 지난 8월 19일(토) 오후 6시 주님의영광교회에서 원하트미니스트와 함께하는 우미쉘 목사의 찬양집회가 열렸다.

그는 "수치스러운 저의 과거를, 대한민국 전국을 돌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저에게 얘기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회복하시고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아름다운 미래를 계획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 목사는 러빔(Luvim)의 하나님의 열심,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 내 기쁨되신 주(Made me Glad)를 찬양했고, 원하트미니스트리의 피터 박 목사가 기도회 시간을 이끌었으며 김인찬 목사의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집회를 주최한 원하트미니스트리(One Heart Ministry)는 남가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찬양문화사역단체로 교파와 세대, 인종을 초월하여 교회의 연합과 하나됨을 추구하며, 건강한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미쉘 목사
(Photo : 기독일보 ) 우미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