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장신대 조철민 교수
(Photo : 미주장신대 조철민 교수)

데라가 데라하다

(창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1. 데라의 비전
데라는 늦은 나이 70세에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아브람, 나홀, 하란 3자녀를 낳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한참 후, 더 늙은 나이에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는 모험을 시도하였다. 계산을 해보면 하란이 커서 결혼하여 딸 밀가를 낳고 또 그 밀가가 커서 나홀과 결혼 한 상황에서 가나안으로 떠난 것으로 볼 때 데라가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한 때는 이미 그가 120세가 넘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늙은 나이에 자녀들을 데리고 2000km 넘는 여정을 시도한 것을 볼 때 데라는 보통 사람의 의지를 뛰어넘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2. 이곳이 좋사오니
그렇게 데라 가족이 약 1500km를 이동해 중간 기착지 하란에 도착했다. 이제 약 500km만 더 이동하면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나(but)라는 접속어를 쓰면서 의외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성경을 풀어서 말해본다면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정착해버렸다(They settled there)이다.

왜 데라는 그곳에서 주저앉아버린 것일까? 성경은 데라가 고향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다고 힌트를 준다(수 24:2). 더 나아가 유대 전승은 데라가 화신(火神) 숭배자였고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만일 우상을 만들어 파는 게 데라의 비즈니스였다면 그 시대 문화, 종교, 무역의 중심지 하란은 비즈니스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혹시 모른다. 데라는 원래부터 가나안이 아닌 하란을 꿈꾸었을지도.. 또 그래서 자신의 아들 이름을 하란이라고 지었을 수도 있다.

3. 데라가 '데라하다'
어쨌든 그의 여정은 하란에서 멈추었고 성경은 서둘러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더라"(창 11:32)로 '죽은 자'로 기록하며 서둘러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참 재미있다. '데라'라는 이름의 뜻이 '지체하는 자', '머뭇거리는 자'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풀어서 읽어본다면 "지체하는 자가 하란(메마른 땅)에서 죽었다"이다.

비즈니스에 빠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포기하고 메마른 땅에서 죽은 데라를 요즘에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돈을 버는 '하란'이라는 중간 기착지보다 더 위대한 부르심의 최종 목적지가 있다. 지금 당신의 비즈니스는 어디에 있는가? 혹시 이곳이 좋사오니 하면서 지체하다가 하나님의 목적지를 포기하지는 않았는가? 작은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큰 부르심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때
비즈니스, 예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