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여러분들은 상처가 많으십니까? 그러한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상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처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해야 상처를 바르게 치유를 할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처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어려움이나 상황으로부터 주어지는 아픔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고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들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상태로부터 오는 것이 바로 상처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자녀에게 "넌 정말 아무짝에도 소용없어"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그 자녀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어머니가 한 그 말로 인해 그 자녀는 자기의 가치, 즉 자신의 존귀함이 떨어져 버렸다는 느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넌 왜 이렇게 항상 빌어 먹으면서 사냐"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그 가난한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말로 인해 그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가치, 즉 자신의 존귀함이 떨어져 버렸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상처를 회복할수가 있을까요?

한때 유행했던 상처치유 집회에 가면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 또는 무의식적인 것을 끄집어 내서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저도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상처치유가 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올바른 상처치유는 심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너는 바보 같이 이런 일도 잘 못해"라고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 말때문에 상처가 되었다는 것은 그 말로 인해 여러분이 정말 바보라고 여겨져서 여러분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만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변화되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 상처 치유에 관한 책을 읽고 상처 치유 집회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러한 책들의 내용이나 치유 집회는 지속적인 치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치유가 된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상처 속에 들어가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에베소서 1장 1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이라는 구절로 인해 상처가 치유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때 항상 앞에 수식어를 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셨다는 고백인 겁니다. 바울은 알았습니다. 하나님만이 바울의 가치를 부여하는 분이시라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했던 가치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던 겁니다.

저는 이 간단한 바울 자신의 소개를 묵상하다가 참된 치유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과거의 말로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거부했습니다.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말미암은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했던 모든 생각들을 거부했습니다. 목회자의 자존심은 교회의 크기로부터 온다는 여기게 만드는 모든 생각들을 거부했습니다. 가정의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로부터 나의 가치가 주어진다고 여기는 생각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치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셔서 나를 살리신 것으로만 주어진다고 날마다 선포했습니다. 나의 가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실 만큼의 가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로부터 참된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참된 상처를 받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상처는 예수님을 존귀하게 만들려고 받는 상처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려다 받는 상처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려다 받는 상처입니다. 교회를 바르게 섬기려다 받는 상처입니다. 나의 꿈과 계획을 내려놓으려다 받는 상처입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려다가 받는 상처입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가짜 상처는 거절하고,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짜 상처를 받기로 한 겁니다. 근데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기쁩니다. 너무 평안합니다.

이제서야 바울이 왜 이런 고백을 했는지를 알것 같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