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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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이단 가운데 구원파라는 단체가 있다. 구원론에 약한 개신교 목회자나 성도들에게는 무척 상대하기 벅찬 이단 중 하나이다. 이들은 구원을 마치 자기네만 전세 낸 것처럼 구원이라는 칼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기성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인가? 당신의 죄는 어떻게 사함받았는가? 당신이 계속 짓고 있는 죄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당신은 죄인인가 의인인가?"

이 질문에 대한 기존 신자들의 공통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구원을 확신하기 힘들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긴 하지만 여전히 죄를 짓는 죄인이다. 원죄는 예수를 믿는 순간 해결 받고 자범죄는 지을 때마다 회개한다."

이에 대한 구원파의 반격을 아는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나?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원죄와 미래에 지을 죄까지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그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가? 당신이 자범죄를 회개하는 이상 당신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다. 천국은 죄인이 가는 곳이 아니라 의인이 가는 곳이다."

이 말이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에 기존 교인들이 혼란에 빠지거나 아니면 구원파로 옮겨간다.

교회 안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30%밖에 안 된다는 확실한 통계가 나와 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긴 하지만 부끄러운 통계가 아닐 수 없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우리의 원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지을 자범죄까지 짊어지고 가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범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없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요한일서 1:8~9절이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라 했고, 또 죄를 지었을 때는 해결책(자백)까지 제시했음을 놓치지 말라.

구원파에 대한 연구를 30년 이상 해온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치명적인 결함 한 가지를 발견한 바가 있다. 그것은, 자범죄에 대해선 그들이 절대 회개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도 처음 믿을 때는 다 회개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2천 년 전 예수께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 모든 죄를 한꺼번에 다 지셨고, 원죄와 자범죄까지 다 해결하셨기 때문에 자범죄는 물론, 원죄까지도 회개해선 안 된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자기들의 모든 죄를 영단번에(once for all)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감사만 하면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처음 믿을 때나 자범죄를 지었을 때나 공히 회개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오래 전에 이미 해결해놓으신 사안을 가지고 뒤늦게 회개할 필요가 없단 뜻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처음 예수를 믿는 순간만큼은 회개를 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에 명백히 배치되는 모순이다.

그러면 원죄든 자범죄든 무조건 회개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처음 믿을 때 뿐 아니라 자범죄에 대해서도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2천 년 전 예수께서 해결해 주신 자범죄를 왜 지을 때마다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회개'는 '지'(깨달음), '정'(후회, 통회, 자복), '의'(결단)가 종합적으로 발휘되는 개념이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의 '돌이킴'(turning back)이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우리가 앞으로 지을 죄까지 법적으로 다 용서하셨더라도, 미래에 짓는 죄는 범할 때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뼈저리게 아프도록 통회 자복하며 그 지은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가 반드시 필수적이다.

그래서 자범죄는 지을 때마다 회개하라고 성경이 말씀한 것이다. 아무리 2천 년 전에 법적으로 용서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짓는 자범죄는 범하는 순간순간마다 죄사함 받은 자답게 살지 못함에 대한 뼈저린 통탄의 내용과 함께,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힘을 주십사의 내용으로 기도함은 백 번 천 번 필요하고 유익한 일임을 기억하자.

끝으로, 구원파는 죄인은 천국에 못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얼핏보면 맞는 말 같다. 죄없는 천국에 죄있는 사람이 들어간다는 것이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천국은 '잃어버린 자', '죄인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예수께서 이런 자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눅 15:1~2, 19:10).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한 종류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느끼는 의인, 다른 하나는 스스로 의인이라고 느끼는 죄인이다"(There are ony two kinds of men: the righteous who think they are sinners and the sinners who think they are righteous).

눅 15:7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의 기쁨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에게가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에게 있으리라"(원문대로 필자가 수정함).

그렇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실제 의인이 아니라 '자칭 의인'이라고 하는 '교만한 죄인'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세리, 죄인, 여자, 창녀, 사마리아인 등은 자신들이 천국에 합당치 않은 자들임을 잘 인지하고 있는 '겸손한 죄인'들이었다. 천국안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다.

그렇다. 천국은 스스로 의인이라는 죄인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자각하는 겸손한 죄인이 가는 곳이다. 돌아온 탕자처럼 자신이 천국에 합당치 않음을 인정하는 죄인(눅 15:21)을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의인)(눅 15:24)이라 불러주신다.

구원파의 교리대로라면 본문 속 아버지는 "아들(의인)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 고백하는 탕자를 향해 "내 아들이라 고백하기를 꺼려하는 걸 보니 너는 결코 내 아들도 아니고 내 집에 들어올 자격도 없구나. 썩 물러가거라!" 고 호통치셔야 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칭 의인이라는 교만한 죄인인가, 아니면 천국에 갈 자격도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의인'인가?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