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매 순간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당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남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만을 누리는 구경꾼이 되고자 하는가 아니면 열정과 땀을 흘리며 적극적으로 그 일에 참여 하고자 하는가? 요즘의 크리스천들은 이전의 선배들에 비해서 입술로 혹은 두 발로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많이도 부족해 보이는 것 같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많은 것들이 요즘 크리스천들에게는 오래된 '고전'의 이야기로만 들리기에 그들의 삶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제는 만민을 복음화 하라는 지상대명령이나 주님의 십자가의 그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면 꼰대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시대인가?

당신은 제자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물론 제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상황에서든지 따라가겠다는 것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매 순간 그 분의 성품과 능력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랑의 흔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 보아라. 혹시 당신의 주변에서는 이러한 영적리더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말하자면, 수많은 주의 제자라고 하는 이들 마저도 이제는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고 응원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넘쳐나고 자신의 인생 목표나 계획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달려가기는 하겠는데, 그 분이 가신 그 고난의 길을 함께 동행하겠다는 제자의 길은 사양하겠다는 형국이다. 이는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진정으로 길을 잃은 양들을 찾아 헤매고 있거나 혹은 예수님께서 명령한 것들을 지켜 행하는 참된 제자양육을 꺼리는 요즘의 교회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제자훈련은 은혜와 결단의 시단이다. 그곳은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훈련의 장이다. 그런데 정체성 조차 확실하지 않은 제자가 어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삶을 어찌 제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디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시작이 되었을까? 이는 아마도 우리의 가슴 한 곳에 쌓여있는 걱정과 의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예수의 제자 중에서도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는 도마처럼 혹은 니고데모처럼 성경 지식은 있되 성령의 동행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이 지금의 영적리더들 가운데 많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은 로마인이자 동시에 장래가 촉망되는 바리새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뒤에는 이러한 권리를 모두 포기해 버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9:16절을 통하여,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23절에서는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선배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복음에 참여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을 즐거워하라고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4:12-13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전하고 있다.

피터정 선교사 (코칭한국 국제협회 대표)
피터정 선교사 (코칭한국 국제협회 대표)

그러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 이라는 것은 진실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고난일까? 아니다. 이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되 종의 신분까지 낮추어야 하는 겸허한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 자신을 낮추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산모가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 겪게 되는 '해산의 고통'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이 자신을 핍박하는 이들마저도 용서함으로써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여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켰던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물질의 축복과 안전한 복음 생활이 보장된 지금은 순교를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던 믿음의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세속적인 리더십과 실용주의적 리더십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는 지금은 싸구려 영적리더들만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싸구려 영적리더가 아니라면, 오늘 밤 주님을 만나러 갈 때 당신이 그렇게도 소중하다고 여기고 있는 그 인생의 핵심가치와 사역의 목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주님 앞으로 달려 나가 그분께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