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의 조직신학 에세이 5] 그리스도인 내부에 있는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
정성욱 박사의 '조직신학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을 가진 죄인이었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소명' (calling)이라고 부릅니다. 그 때에 성령님은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고 (convicting of sin), 우리는 죄를 회개 (repentance)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회심' (con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중생 (regeneration)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며 (born again), 새로운 피조물 (new creation)로 빚어지게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다시 말하면 영적인 신생 (spiritual new birth)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사실 영적인 아기 (spiritual baby)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태어난 신생아가 유전적 질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여러 가지 병균들과 거친 환경 등 건강을 위협하는 대적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처럼, 영적 갓난 아기로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영적인 적들에게 둘러싸입니다. 육신적인 신생아들이 병균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듯이, 영적인 신생아들 역시 영적인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영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적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마귀입니다. 사탄입니다. 악한 자입니다. 참소하는 자입니다. 어둠의 권세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니며 (벧전 5:8) 택한 자라도 미혹하게 하려는 자입니다 (마 24:24). 마귀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하고, 멸망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다 활용합니다 (요10: 10).
둘째, 사망의 권세입니다. 순간 순간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과 염려를 불러 일으키는 세력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 2:15).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원리상 예수님과 연합하고 하나가 되어 사망의 권세를 이미 이긴 사람이지만, 실재로 우리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바로 이 모든 적들은 우리 외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외부에 있는 적들의 수가 엄청나고 그 힘이 강력하더라도, 이 대적자들은 여전히 우리 밖에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 있지 않습니다.
반면 성경은 우리가 거듭나고 중생한 이후에도 우리 안에 죄와 죄성이 잔존하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거듭나고 중생함으로 성령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영혼은 죄의 지배와 통치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아직 완전히 영화 (glorification)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성장 중에 있고 성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미숙으로 인하여 여전히 우리는 잔존하는 죄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동시에 우리의 몸은 여전히 죄의 저주와 오염 아래 있으며, 죄의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여전히 죄가 남아 있으며, 죄로 오염되고 부패한 몸이 남아 있고, 또한 우리의 영혼 역시 죄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화과정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재적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 잔존하는 죄는 호시탐탐 우리를 사로잡아 가려고 시도합니다. 바로 우리 내부에 잔존하는 죄와 죄성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입니다.
잔존하는 죄에 의해 지배되고 영향을 받는 상태를 성경은 옛사람이라고 부르며, 죄의 소욕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거스릅니다. 성령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반면에 성령이 주시는 거룩한 소욕은 육체 즉 죄성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끊임없는 대결, 싸움, 갈등 가운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대결과 싸움과 갈등을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6-18)
베드로 사도 역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문제는 여전히 육체의 소욕, 죄의 정욕이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혹적이라는 데 있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저항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죄의 소욕에 끌려갈 때가 있습니다. 끌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 24)
결국 승리의 관건은 성령과 성령의 소욕을 순간순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입어 (엡 5:18) 성령의 지배와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엡 6: 10), 성령의 검인 말씀 (엡 6:17)으로 죄와 죄의 소욕을 죽여야 합니다.
오늘도 이 피비린내 나는 영적 싸움의 현장에서 성령을 택하고, 성령의 소욕을 택하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