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Photo : )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열왕기 하 20:1)
R.M.S.-Royal Mail Ship - Titanic-타이타닉 호는 영국의 Wild Star Line이 운영하는 북대서양 횡단 여객선입니다. 이 배가 1912년 4월 10일, 영국 Southampton에서 뉴욕으로 처녀 출항을 한지 4일 만에 북대서양에서 빙하와 충돌한 것이 1912년 4월 15일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타이타닉 호가 완전히 침몰한 시간은 새벽 2시 20분입니다. 이 때 승객 수는 2,224명이었는데, 사망자는 1,514명이었습니다. 승객 대부분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 배에는 승객을 다 태울 수 있는 구명정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20여 척 밖에 없었는데, 승선 최대 인원은 1,178 명뿐이었습니다.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구명정에는 우선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태웠습니다. 타지 못한 승객들은 바다로 뛰어 들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배 안에는 1천 여 명의 사람들이 남아있었습니다. 

Edward John Smith 선장은 구명정을 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타이타닉호에 남아 승객들을 탈출 시키다가 배와 함께 장렬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의 세월호가 침몰할 때, 승객들을 배에 버려두고 혼자 살겠다고 탈출했던 선장과 대비가 되는 사례입니다.

이 배의 악단 지휘자였던 감리교회 신자 Willis Hartley는 배가 기울어져 가기 시작하자 많은 승객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틀리는 8명의 악단 대원들에게 연주를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찬송을 들은 적지 않은 승객들은 악단 주변에 모여 조용히 함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연주는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10분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Hartley의 시신은 고향인 영국 Coln에 묻혔고, 장례 예배에는 4만 여명의 시민이 모였으며, 그의 동상도 세워졌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죽어 가는 많은 승객들을 위해 위안의 찬송을 끝까지 연주했던 그의 불굴의 신앙은 후세에 귀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Thomas Biles 신부는 구명보트의 승선을 거부하고,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먼저 타는 구명보트 승선을 도왔습니다. 배에 남아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종부(終傅:임종 직전에 신부에게 마지막 고백 성사를 하는 성사)를 집례하면서 신자들의 고백을 듣고 죄의 사유(赦宥)를 선언하면서 신자들과 함께 선종(善終:善生福終에서 나온 말로, 임종 시, 성사(聖事)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가톨릭교회의 용어)하였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설계자인 Thomas Andrews는 승객들의 구명보트 승선과 쓸 만 한 물건을 던져주는 일을 돕다가, 1등실 흡연실에 들어가서 조용히 흡연을 하면서 초연하게 임종 하였습니다. 

이때 흡연실에 들어간 앤드류뿐만 아니라, 다른 1등석 승객들도 있었는데, 어떤 승객들은 카드놀이를 하였고, 당시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Thomas T. Stead는 조용히 독서를 하다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초연한 태도를 지녔던 이들은 평소 어떻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 가운데 하나인 뉴욕의 Macy's 백화점 소유주였던 Isidor와 Ida Straus 금슬 좋은 노부부는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여러 사람이 구명보트에 승선하기를 권했지만, 거절하고 하녀 엘렌 버드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준 후, 자기들 대신 구명보트에 태운 후, 조용히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외에도 기관장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2분 전, 그러니까  배가 물에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엔진을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책임을 완수하였습니다.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Benjamin Guggenheim은 자신이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아내와 하녀를 구명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는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던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드를 즐기면서 마지막을 맞이하였습니다. 그의 딸 구겐하임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예술 작품들을 모은 후, 뉴욕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립하고 선친을 기념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영웅답게 마지막을 맞이한 사람들은 두 명의 전파사, 기관장과 기관사들, 항해사 등 승무원 대다수는 선장과 함께 배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인생은 그가 살아생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어떻게 생을 정리했느냐가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어차피 죽는 인생 마지막도 멋지게, 후세에 모범이 될 수 있게,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가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마지막을 그리고 계시나요? 오늘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