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인 나성북부교회 부목사, 목회학 박사
(Photo : 기독일보) 김석인 나성북부교회 부목사, 목회학 박사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 정도는 사용해 보는 가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케아라는 가구입니다. 왜냐하면 가구에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라도 설명서만 보면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학생들에게는 살림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미국에서 유학 생활 하면서 이 이케아 가구를 참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케아라는 회사에서 참 의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실험은 한 학교 안에서 왕따 문제의 경각심을 알리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그런 실험단은 잎이 푸르른 두 화초를 학교에 나란히 세워 두었습니다. 그리고 환경과 조건을 동일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초에 공급되어야 햇빛과 물의 양분도 동일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화초를 맞이하는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조건이 달랐습니다.

A라는 화초에게는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B라는 화초에게는 비난과 욕설의 말을 건네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일의 실험이 지났습니다. 두 화초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은 화초는 여전히 잎이 푸르고 풍성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비난과 욕설을 들은 화초는 이파리의 모습이 변했고 서있는 것이 힘겨워 하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시들어 말라가게 되었습니다. 차이는 무엇 일까요? '그것은 어떤 말을 듣는가'였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은 화초는 살아있게 되었고, 비난과 욕설의 말을 들은 화초는 그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곧 시들어 말라 죽게 돼버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치심의 형성도 이와 같습니다. 단번에 인간이 수치심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난과 욕설을 들은 화초처럼 인간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어 수치심으로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카우프만이라는 학자는 "수치심을 내면화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내면화는 이미지들과 연결되는데 그런 이미지들은 수치심을 주는 사람, 언어, 공동체, 장소, 문화, 경험들이 이미지화되어 인간의 내면에 수치심이 형성이 된다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내면화가 일어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바로 가정입니다. 도날드 네이트슨이라는 학자는 내면화에 대한 기가 막힌 연구를 했습니다. 그 내면화의 연구는 놀랍게도 생후 2개월 반부터 3개월 사이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이의 얼굴 표정을 통해서 수치심의 내면화가 이뤄진다 라고 연구의 결과를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브래드쇼라는 학자는 수치심의 치유라는 책을 통해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수치심이 어떻게 내면화되는지 말하는데 그런 가정의 모습은 역기능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역기능 가족에는 7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들은 통제, 완벽주의, 비난, 오감 부정하기, 말하지마, 실수하지 말라, 그리고 믿지 못함이었습니다. 이 규칙들은 대부분 역기능 가족에게서 나타났고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수치심이 내면화 되어 엄청난 수치심을 양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성적학대, 신체적 학대의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었고 이것은 곧 수치심이 내면화 되어 수치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결과가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치심이 내면화된 아이는 두 가지 모습을 나타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존재(Private Self)를 부정하고 이상적인 존재(Public Self)의 모습을 찾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회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의 기대, 가족의 기대, 공동체의 기대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이상적 존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거짓 위장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면에는 수치심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 밖으로는 관심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완벽주의 모습으로, 자기 도취형의 모습으로, 강한 모습으로, 성자의 모습의 형태로 드러냅니다. 즉 자신의 진짜 모습(True Self)은 숨기고 거짓된 모습(False Self)으로 위장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나타남은 내면의 고통 때문인데 그 고통은 바로 내면화된 수치심의 고통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그 고통의 신호로 거짓 위장된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은 안타깝게도 세대간으로 전수가 되어 부모에게 양육을 받은 학습된 감정은 자녀들이 전수가 되어 나중에는 그 부모와 마찬가지로 수치심의 내면화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인생 전체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랑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존재와 거짓 위장된 모습 속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한 채 수치심의 고통 속에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질문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이 수치심의 내면화에서 안전하시나요?

참고자료:

Brené Brown, I Thought It Was Just Me (but it isn't): Telling the Truth about Perfectionism, Inadequacy, and Power (New York, NY: Gotham Books, 2008)
Donald L. Nathanson, The Many Faces of Shame (New York, NY: The Guilford Press, 1987), 28.

Gershen Kaufman, Shame: The Power of Caring (Rochester, VT: Schenkman Books, 1992), 41-2.
John Bradshaw, Healing the Shame That Binds You (Deerfield, Florida: Health Communications, Inc., 1998), xviii.
Kim, Seokin. "Minimizing the Effects of Shame in Korean American Churches." DMin diss., Biola Universit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