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어두운 면 드러내며, 현실 고증 뛰어나다 호평
저열함 깃든 군복무, 그로부터 절감하는 죄악 현실
현재 군복무, 말 그대로 인생을 낭비하는 시간 불과
저열한 현실 인식해야 선과 고결함 갈망하게 될 것

◈군대와 인권: 생존을 위해 인권을 제한하는 사회, 군대

군대 내 가혹행위, 구타, 따돌림의 현실을 주된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의 〈D.P.〉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사와 연출에 있어 분명 소소한 허점들이 존재하지만, 그런 허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만큼 적절하게 묘사된 군내 병영생활의 부조리한 모습들 덕에 시청자들, 특히 군 생활 경험자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군대라는 곳은 독특한 세계이다.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룰이 먹히지 않는 곳이다. 통상 하나의 국가라고 하면 단순히 하나의 원칙과 규율로 움직이는 곳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해이다. 하나의 국가 안에는 여러 유형의 조직과 집단, 공동체들이 존재하고, 그들 각각은 고유의 성격을 지닌 사회를 이룬다.

이들 사이에 일정한 정도의 문화적 동일성이나 시공간적 근친성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각 집단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상적 삶의 양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한 개인의 삶이 하나의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될 때 체감되는 차이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크다.

군대의 기본 목표는 생존이다. 그들이 지키는 민간인들의 생존, 그리고 군인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고 모든 것을 희생한다. 힘과 계급의 논리가 생활과 행동양식 전반을 지배한다.

생활의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샅샅이 규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감내하는 경험의 모든 부문에서 인권 개념은 약화되고 후퇴된다. 이는 군대라는 집단의 본질에 속한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1995)에는 군대의 이런 속성과 관련된 명언이 등장한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앨라바마 호 함장 램지 대령(진 해크만 분)은 무리하고 위험한 훈련을 강행한 자신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함장 헌터 소령(덴젤 워싱턴 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 있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실천하려 있는 것이 아니다."

D.P. 크림슨 타이드
▲영화 <크림슨 타이드>의 한 장면. 지휘 방식에 관한 이견으로 갈등을 빚는 부함장 헌터 소령(덴젤 워싱턴 분)과 함장 램지 대령(진 해크만 분, 왼쪽부터).

이렇듯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는 민주주의 체제 속에 존재하지만, 민주적 질서를 어느 정도 거부한다. 물론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을 진정으로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인권도 우선 삶이 존속되어야 보존될 수 있다.

따라서 군 내에서 인권의 약화 및 인권 보장의 보류는 군대가 감당해야 할 어려운 임무들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하는 목적에 귀속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나라의 군대에서는 이러한 목적을 묵살하고 인권 자체를 짓밟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되고 내면이 충실하다고 하는 미군에서조차 간간이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미군은 군대 내부의 부조리한 폭행, 따돌림, 가혹행위, 성추행 및 성폭력에 대해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한다.

"그런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만일 발생하는 경우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진지함을 보인다. 아마 이것이 선진 군대와 후진 군대의 차이일 것이다.

〈D.P.〉에 묘사된 여러 가혹행위에 대한 시청자들, 특히 군필자들의 분노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반사회적 선임병들의 행태 자체를 향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인사고과에 미칠 악영향 때문에 사실을 은폐하기 일쑤인 군 간부들과 지휘관들의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태를 향하기도 한다.

우리 국군은 이런 병영 내 부조리에 대해 반성도 없고, 개선하려는 노력과 의지도 없고, 제대로 된 처벌도 없는 모습을 보여왔다. 〈D.P.〉는 이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군대와 현실: 본연의 목적을 묵살하는 저열한 행태가 만연한 병영 현실

군필자들이 진정으로 듣기 거북해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 갔다 오더니 사람 됐다"는 말이다. 이는 1950-1970년대, 대한민국 청년들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뒤쳐졌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군에서는 보직을 맡기기 위해 사병들에게 강력한 규율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교육을 시킨다. 그런데 당시에는 군대 내에서 행해지는 교육의 수준이 사회에서 배우는 것보다 높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민간에서 받는 의무교육 및 대학교육이 군에서 받는 보직관련 교육과 훈련보다 수준이 전반적으로 월등히 높다.

또한 군에서 배우는 훈련과 교육 대부분이 오로지 군에서만 활용되는 특수한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 제대하고 나면 거의 실생활에 쓸모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즉 지금의 사병 군복무 기간은 말 그대로 인생을 낭비하는 시간이다. 복무자 각각의 사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군복무 기간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장병들은 국방력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꽤나 긴 시간을 희생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 만큼, 군은 이들이 군대 본연의 목적을 묵살하는 인권 유린과 폭행, 가혹행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자원해서 입대하는 모병제 군대도 이러한 책임을 지는데, 하물며 징집제 군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D.P.
▲징집제를 유지하는 국군에서 장병들이 당하는 부당하고 악질적인 가혹행위 및 폭력을 고발하는 드라마 〈D.P.〉

생각하건대, 현재 대한민국 남성들 거의 전부가 경험하는 군 생활에 유일하게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면 바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그리 선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회가 통상 배우는 것처럼 공정하거나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군에 가기 전까지 일반적인 청년들의 삶은 가족들의 돌봄과 보호, 또래 집단들과의 친밀감을 바탕삼아 지탱된다. 또한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교육받아온 까닭에 일정한 수준의 권리를 누리고 인권을 보장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군에 징집되어 입대하면 그런 모든 온정이나 권리는 단번에 차단되고 박탈된다. 상명하복의 위계적 계급질서가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우선시되며, 군의 일반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한 주어지는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이는 원래 국민들과 군인들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립된 질서이긴 하나, 하루하루 체감하는 군생활의 현실에서는 이 질서가 군 간부들과 선임들의 개인적 이익과 만족을 위한 것인지 진정 군대 본연의 목적을 위한 것인지 혼동될 때가 많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군 복무자들은 그동안 숱하게 들어왔던 정치적·사회적 명분들이 허울좋은 겉치레에 불과하며, 우리 현실의 삶은 법과 원칙보다 힘과 폭력이 앞서고 온갖 개인적인 욕망들이 투쟁하는 현장임을 깨닫는다.

이는 누구에게 전해 듣거나 인터넷 상에서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감을 동반하는 저열함이다.

〈D.P.〉는 군 생활을 하게 되면 누구나 한 반쯤 절감하게 되는 이 암울한 느낌과 현실을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점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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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 인간 본성의 저열한 측면을 깨우치게 해주는 현실고증이 뛰어난 드라마 〈D.P.〉

그리고 이런 점은 기독교적인 관점으로도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세속적 현실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환멸은 항상 누군가에게 신앙의 길을 열어주는 강력한 계기로 작용하곤 한다.

〈D.P.〉에 묘사된 저열한 현실은 사라져야 한다. 이는 엄연한 당위이다. 하지만 현실은 당위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인생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고결함과 멀어진 인간 세상에서 계급질서를 이용한 부당한 가혹행위와 폭력, 압제 같은 악독한 행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더 간절하게 선과 고결함을 갈망하며, 병영 내 악질적이고 악의적인 행태의 발생 빈도를 줄이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