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나면 이전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나
이제 몸의 목회에서 머리의 목회로 전환해야
목회자들, 신학 과잉… 인문학과 ‘통섭’ 필요
세상과 사람들 마음을 담아내려면 공부해야

아트설교연구원 대표 김도인 목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올해만 벌써 <언택트와 교회>, <나만의 설교를 만드는 글쓰기 특강>, <설교자,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등 3권의 책을 출간했고, 8월 초 올해 4번째 책 <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목양)>가 나온다.

<언택트와 교회>는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만의 ‘킬러 콘텐츠’로 세상에 승부수를 띄워야 함을, <나만의 설교를 만드는 글쓰기 특강>은 목회자들의 설교문 쓰기에 대해, <설교자,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에서는 신학의 기초가 깔려 있는 설교자들이 신학과 인문학을 ‘통섭’해야 함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을 터뜨리자, 지천명(50세)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해 10년간 인문학 위주로 5천여 권의 책을 독파했다. 이후 아트설교연구원을 설립해 매주 설교자들에게 설교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본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동시에 설교자들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해, 2020년까지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자와 묵상>, <설교를 통해 배운다(이상 CLC)>,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 <감사인생(이상 목양)>, <출근길 그 말씀(공저)> 등 7권의 책을 출간했다. 다음은 최근 만난 김도인 목사와의 일문일답.

-코로나 사태가 1년 반을 지나고 있는데요,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한국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대응을 위해 나름 몸부림을 쳤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외로움과 기회 박탈에서 탈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변화돼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움직임은 그리 찾기 힘들었습니다. 교인들도 위기와 준비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목회자들은 안일하게 코로나가 지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목회자들이 못 느끼고 있다고 봅니다. 세상에 대한 무지가 아닐까요. 외부 강의를 나가보면, 목회자들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선교사들은 더 뒤처져 있지요.

이 코로나 기간 동안 한국교회가 과연 깨어 있으려 했을까요? 각자 몸부림을 쳤겠지만, 전체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업들은 즉각 대처했지만 국가는 미진했고, 교회는 더 부족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질까 두렵습니다. 1만 명 출석하던 교회가 (20% 출석 당시) 2백 명 나온다고 합니다. 떠도는 말이겠지만, 그 자체가 이미 준비 부족을 보여줍니다.

유튜브 조회수만 봐도 아실 수 있습니다. 1-2만 명 출석하던 초대형교회 온라인 출석이 1만 명도 안 됩니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백신을 만드는 회사들을 봐도, 화이자는 초대형기업이지만 모더나는 벤처기업입니다. 벤처기업도 시대 흐름에 맞출 만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모더나가 삼성과 계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초일류 기업 삼성도 생산 공장 역할을 할 뿐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교회는 뒤따라가면서 떨어지는 걸 받아먹는 정도 아닐까 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적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더 어려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콘텐츠입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학과장 교수님이 ‘학생들이 프로그래머로 만족한다’고 개탄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초봉을 6천만 원, 1억 원씩 주면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서울대라면 소프트웨어 산업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엔지니어에 만족한다는 것이지요.

교회는 사람도 건물도 많은데, 콘텐츠가 없다 보니 방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대형교회들이 각종 콘텐츠를 갖고 홍보했지만, 지금은 전무합니다. 길잡이를 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취약점도 하드웨어 목회가 아닐까 합니다. 코로나를 예견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부터 ‘몸의 목회에서 머리의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외쳐 왔습니다.

지금은 정말 시급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유튜브에서 목회자들의 설교나 강의를 얼마나 듣고 있을까요? 세상 콘텐츠에 빠져 삽니다. 콘텐츠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습니다. 한국교회가 더 많이 공부해서 콘텐츠 양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도인 목사의 이전 저서들.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 <설교는 인문학이다> 순으로 발간됐다. 설교 제목에서 강조한 것처럼, 책 제목이 모두 문장으로 돼 있다. ⓒ이대웅 기자
김도인 목사의 이전 저서들.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 <설교는 인문학이다> 순으로 발간됐다. 설교 제목에서 강조한 것처럼, 책 제목이 모두 문장으로 돼 있다. ⓒ이대웅 기자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할까요.

“목회자들은 3가지입니다. 먼저 설교, 그리고 성경공부입니다. 어느 하나를 연구해서 시대에 맞게 깊이와 통찰력을 갖추고, 소통이 잘 이뤄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책’입니다. 요즘 목회자들의 책쓰기를 위한 책을 써놓고 정리 중입니다. 세상에서는 책쓰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아직 잠잠합니다. 주위 세상에서는 30대가 벌써 책을 씁니다. 기독교계에서 인사이트나 비전을 주고, 시대를 담아낼 만한 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차별화된 콘텐츠 3가지는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낯설음’과 ‘창의력’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장착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설교는 서론, 도입부가 낯설어야 한다고 합니다. 적용도 낯설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설교가 뻔합니다.

이찬수 목사님 설교를 분석해 보면, 서론이 낯설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설교문 코칭을 해 보면, 서론이 낯선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뻔해서는 안 됩니다. 뻔하면, 온라인 시대에 보고 듣지 않습니다. 낯설음이라는 화두는 이미 철지난 것임에도, 교회에서는 그리 많이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교는 구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경만 갖고 설교하기보다, 논증을 하면서 설교해야 합니다. 설명 중심의 설교는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논증 중심의 설교는 낯섭니다. 자신만의 경험을 버무려서 하면 됩니다.

지금은 설교에 있어 차별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찬수·유기성 목사님은 낯설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설교란 역량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낼 수 있습니다. 매주 비슷한 성경 본문을 통해 하는 설교라 해도, 낯설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친숙한 낯설음’이 가능한 것인가요.

“이찬수 목사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보통은 ‘사랑’을 설명할 때, ‘사랑’ 그 자체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프트 파워’로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청중들이 신선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개념만 조금 바뀌어도, 달라지게 됩니다.

성도님들이 주보나 화면에서 제목을 읽고 설교를 듣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제목을 읽고 뻔하게 가면, 듣고 싶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홍수 시대입니다. 차별화되지 않으면, 외면당할 뿐입니다. 한국교회 설교가 일부 외면당하고 있다면, ‘낯설게 하기’가 부족해서 아닐까요?

특히 지식인층과 젊은이들에게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낯설게 하기’가 하나의 일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대로 일상적으로 하다 보니,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입부가 낯설다 해도, 결국 결론은 뻔하지 않나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내용을 주로 어떻게 설교할까요? ‘돈을 섬기지 말라’ 등 성경에 나오는 우상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소속을 분명히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속되면,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에 대해서도 ‘사랑합시다’라고 하기보다, ‘장점을 찾으라’고 해 보는 것입니다. ‘아내의 장점을 찾아보십시오. 찾다 보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낯선 적용도 가능합니다.

결국 이는 독서에서 나옵니다.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글로 써봐야 합니다. 사고(思考)는 한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독서도 한두 권 읽으면 사고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많이 집어넣어야 돌아갑니다. 4권 볼 때와 10권 볼 때가 확 다릅니다. 많이 집어넣다 보면, 돌아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 환경 자체가 독서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목회 문화와 안 맞는다고 느끼거나,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하나님을 위하고 성도들을 위한 것 아닌가요?

요즘 다양한 책을 빨리 쓰고 있는데, 다 다독(多讀)의 힘입니다. 하다 못해 변도 많이 먹어야 밀어내서 나오지 않습니까? 밀어낼 만큼 집어넣지 않으니, 안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독서를 시작하고 4년간 1,200여 권을 읽었을 때, 뭔가 확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책을 읽는데, 이 글이 왜 좋은지 보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가 행복했습니다. 엄청난 독서가 따라야 합니다.”

-글쓰기는 어떤가요.

“말씀처럼 독서는 기본이고, 글쓰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한국 목회자들은 ‘편집의 달인’들인 것 같습니다. ‘내 것’이 없어요. 그러면 세상의 창작자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설교자들은 창작자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자이시듯, 하나님을 닮아 설교의 창작자가 돼야 합니다.

강사로 유명한 김미경 작가님이 작년 코로나 사태 이후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1년 동안 5년치 공부를 하라’고요. 그만큼 많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저희 아트설교연구회 회원들에게, ‘지난해보다 2배 열심히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도 작년보다 1.5배는 읽고 쓰는 것 같습니다. 위기의 때는 준비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지금이 위기라는 걸 알고 있을까요? 작년에 한 평신도가 했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들이 공부를 더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니, 목사님들이 놀고 있는 것 같다’더군요. 매달리고 공부해야 하는데,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에게 1주일에 책 몇 권 읽냐고 물으니, 많아야 2-3권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라’고 하면, 저를 싫어합니다(웃음). 아이들에게도 ‘공부하라’고 하면 잔소리라서 싫어하지, 공부하라는 말 자체는 좋아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콘텐츠의 시대에,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책을 쓰면 무엇이 좋은가요.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죄를 조금 덜 짓게 된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다’고 답합니다. 책이 나오면, 반응에 대한 기대감도 생깁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이 성장해서 행복합니다. 내면에 치유도 일어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갖습니다. 성도님들도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목사님들 세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자기 세계에 갇혀 버립니다. 성경도 읽어야 하지만, 책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책인 성경과, 인간의 책인 여러 서적들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콘텐츠 시대’의 기본은 독서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경제·경영, 주식 책들을 많이 읽습니다. 저희 교회가 위치한 건물주도 ‘공부해서 부자됐다’고 했습니다. 공부도 안 하고 잘 된다는 건 넌센스 아닐까요. 예전에는 기도만으로도 설교가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물론, 신학책이든 인문학책이든 많이 읽어야 합니다.

지금은 신학의 과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0년간 한 우물만 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습니다. 신학 이야기입니다.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공부라면,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공부입니다.

설교자들이 하나님께 설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이기에, ‘사람 공부’도 해야 합니다. 이 기본적인 마인드가 안 통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김용규 선생님이 그랬습니다. ‘신학과 인문학이 적대적 관계가 된 것은 근대에 와서 소수의 학자들 때문’이라고요. 한국에서도 소수의 근본주의 학자들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폭넓은 사람, 폭넓은 설교자가 돼야 합니다. 세상을 담아내고,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벽을 향해 설교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설교할 때마다 아내가 인상을 팍팍 썼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아내에겐, 제 설교가 듣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요즘 설교자들을 가르치면서 그 마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짜증은 내지 않습니다(웃음). 설교는, 공부할수록 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90% 정도는 그렇다고 봅니다.

위기의 때이니, 설교는 좀 더 성경적으로 할 필요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갈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해 메시지를 잘 선포해야 합니다.

오히려 이런 때 성경공부가 더 활발해져야 합니다. 모임이 없어지니 온라인에서라도 활발하게 했어야 하는데, 작년에는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접속도 힘드셨고, 교회들도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작년에 더 많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시작한 아트인문대학도 참석자가 꽤 있습니다. 위기 때 더 많이 활동해야 합니다. 도구가 바뀌는 것뿐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러지 못했지만, 조금 더 성경을 잘 풀어내면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