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수 목사
(Photo : 기독일보) 이준수 목사

2021년은 내가 미국 땅에 첫 발을 디딘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1년 7월 나는 생후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미네소타주립대학'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었다. 물론 그전에도 일본 동경에 다녀왔지만 그땐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갔었고, 순전히 나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탄 채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해외에 나가본 것은 1991년이 처음이었다.

당시 서강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었지만, 나의 불편한 신체 조건으로 인해 낯선 이국 땅에서 홀로 생활할 수 있을까 하고 많이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독립된 생활이 가능한지 시험해 보기 위해 장애인 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는 미네소타주립대학으로 어학연수를 가보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특별 편지를 보내 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작은어머니를 통해 미네아폴리스에 사시는 어떤 교포분께 연락하여 가끔씩 나를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등 미국에서 홀로 두 달 동안 살아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하였지만 여전히 걱정과 염려가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는 미네아폴리스까지 취항하지도 않고 다른 외국 항공사도 서울에서 바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이 중간지를 경유해야 해 비행기를 갈아타고 짐을 다시 찾아 부쳐야 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래서 또 부리나케 알아본 결과 'United Airline'이 동경에서 짐은 다시 부치지 않고 그냥 갈아타기만 하면 된다고 해 떠나기 이틀 전에 표를 구입하였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티케팅을 하러 가니 UA 직원들도 날 보고 황당했는지 사무실로 데리고 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일일이 물어본 후 가장 늦게 비행기에 태웠다. 마침 매니저가 한국분이셔서 그분의 권한으로 이코노미석이었던 내 자리를 비지니스석으로 옮겨주고 여러 가지 극진한 배려를 해주셨다.

그래도 난생 첨으로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라 마음이 몹시 불안했고 혹 실수라도 하여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앞자리에 있던 어떤 백인 남자분이 승무원에게 자기가 날 도와주고 싶다고 하며 내 옆 좌석으로 옮겨와 앉았다.

휠체어를 탄 필자가 미네소타주립대학 ESL 과정에서 선생 및 학생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Photo :이준수 목사 제공) 휠체어를 탄 필자가 미네소타주립대학 ESL 과정에서 선생 및 학생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편집자 주)

그 사람은 영국인으로 비지니스차 동경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내가 장애의 몸으로 홀로 여행하는 게 인상 깊다고 말하며 영어를 이토록 잘 하는데 왜 또 영어를 배우러 가냐며 동경에 내려 자기랑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동경으로 날아가는 2시간 동안 위스키 한 병을 다 거덜 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기도 미네소타에 가봤다며 깨끗하고 한적한 동네라고 하면서 나에게 미국 도시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얘기해줬다. 기내식을 먹을 때도 손수 뚜껑을 열어주고 음식을 흘리면 닦아주는 등 큰 도움을 줬다. 또 동경에서 3시간 정도 대기하는 동안에도 먼저 가지도 않고 나와 함께 기다려주며 다시 비행기에 타야 해서 헤어질 때는 "I believe you will be a great man!!"이라며 뜨겁게 격려해주었다. 

이와 같이 홀로 떠나는 첫 외국 여행길에 이처럼 좋은 분을 만나 불안과 근심을 덜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보통 사람들은 내 옆에 앉는 것조차 피하려 하고 함께 있어도 여행하는 내내 말 한마디 안 건네는데, 이 영국인은 이방인이고 부족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업가인데도 몸 불편한 장애인에게 먼저 다가와 극진한 배려와 친절을 베풀어주었으니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으며 그 넓고 큰 마음 씀씀이에 깊은 감탄이 나올 뿐이다. 이 분 덕에 나는 큰 용기를 얻어 그 이후 홀로 아무 두려움 없이 태평양을 수십 차례 건너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외국에 가는 첫 여행에 움츠려 들지 말고 담대해지라고 하나님이 직접 보내주신 '사자(messenger)'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듯 하나님은 나를 비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지만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하심으로써 나의 불편한 삶을 보완시키시고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신다. 이런 모든 분들의 사랑과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 역시 지극히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