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세계로교회 임지석 목사
(Photo : 기독일보) 나성세계로교회 임지석 목사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일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곤 한다. 이 교회는 예배에 있어서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예배 중에 함께 십계명을 암송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뭐 구태의연하게 이러한 것을 암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십계명을 암송하는 것이 차츰 의미 있게 다가왔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던 그 심정으로 암송을 하니까 그 자체로서 은혜가 되었던 것이다. 요한일서 5:3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주님의 심정을 품고 십계명이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를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심령에 말씀을 새겨라

신명기 6:6절에 있는 말씀이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분이 주시는 계명을 지키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담아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하셨기에 그분을 사랑하는 자녀는 당연히 그분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자녀가 말로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제사보다도 순종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 모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임을 증거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한 분이신 사실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여럿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인데 이는 십계명의 제1계명에 선포되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0:3에 보듯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성경에도 밝히 증거된 진리인데 바울 사도도 딤전 2:5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강조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교훈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주체인 영혼을 다 바쳐서 그분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마다 그분이 주시는 말씀을 심령 깊이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중심을 바쳐서 그분을 인정하고 경외하고 사모하며 그분의 모든 명령에 순종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을 위해서는 돈이나 시간이나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데 그분을 위해서는 이처럼 아낌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 주시는 말씀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돈을 모으고 지식을 쌓기 전에 먼저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던 거지된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교훈할 수 있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비록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온전히 가르치라

히브리 민족의 특징은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명기 6:7절에서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말씀하고 있다. 자녀들을 교육할 때 먼저 하나님 사랑하기를 가르치라는 교훈의 말이다. 이러한 일은 집에 있을 때든지 밖에서 일을 할 때든지 쉬는 시간이든지 일을 시작하는 시간 할 것 없이 언제든지 힘써서 계속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보고 들으며 교육을 받기 때문에 자라서도 부모가 하는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부모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가르침으로서 일평생 지키도록 교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녀교육에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들은 어릴 때부터 확실한 기준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친다. 이는 소위 '쉐마' 교육으로서 '쉐마'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들은 자녀들에게 계속적으로 들려주는 교육을 시킨다는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구약성경을 읽고 들려줌으로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경을 받아들이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면 말씀을 기록하여 그들의 손목이나 이마에 붙여주어서 항상 말씀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더 나아가 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함으로서 그들이 언제든지 말씀을 대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자녀들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교훈할 수 있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당연히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씀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애매모호하거나 적당히 가르치지 말고 분명하게 가르치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의와 불의,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해서 가르치라는 말로서 복을 약속하고 저주를 경고하면서 분명히 가르치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말씀을 강론해야 하는데 이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해서 알려주라는 말이다. 집에 있든지 길에 있든지 언제든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가르치면 그들이 저절로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웃에 대해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라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있어야 할 것이고 둘째 부분은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이다. 칼빈은 이를 가리켜서 첫째 부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관한 종교적인 계명이요 둘째 부분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첫째부분과 둘째부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두 가지 사랑이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십계명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의 엄숙한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시내산 기슭에 도착하였고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실 때 그들은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다 행하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은 이처럼 백성들로부터 서약을 받은 다음 각자 자신을 성결케 하고 옷을 빨면서 3일 동안을 기다리도록 하셨던 것이다. 3일이 지나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강림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산으로 올라오게 하신 후 마침내 열 가지 계명을 말씀하시고 친히 기록한 두 돌 판을 그에게 주셨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돌 판을 받아서 시내산을 내려오던 모세의 마음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이 정성을 다해서 일러 주신 열 가지 계명 하나하나를 금과옥조와 같이 지켜야 할 일이다. 우리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켜야할 규범을 친히 일러주신 그분의 심정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과의 관계에 묶임이 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하나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레위기 19:18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 사랑은 그분의 이러한 말씀을 따라 중심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마저 제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