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생활 중 2세 못지 않게 어려움 겪는 1세대 부모들,
2세들이 겪는 내적 어려움을 이해할 여력 턱없이 부족
한인 교회, 코리언 어메리칸과 크리스천 정체감 심어야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 씨(순자 역).
(Photo :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 씨(순자 역) )

영화 ‘기생충’에 이어 최근 아카데미상 수상이 기대 되는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 제작에 감독도 한국계 미국인인 미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대사가 주를 이룬 것 때문에 골든글로브의 비영어권 규정에 의해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아이러니한 영예를 안았다.

‘미나리’는 작년 12월 한국어 가사 곡(Life goes on)으로 사상 처음 미국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던 방탄소년단을 떠올리게 하면서, 세계인들이 이해 못하는 한국어로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는 의미에서 양자가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우리가 사는 현 세계가 글로벌 시민들 간에 공통적이고 공유된 지식과 문화, 경제, 정치 등 제반 분야의 동질적 양식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급속히 보편화로서 세계화의 원숙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사인이라 생각된다.

바야흐로 이제 세계는 언어적 소통만이 의사소통의 유일하고 효과적인 도구라는 통념을 제쳐두고, 언어를 초월한 인간성에서 풍겨나오는 사랑과 행함으로도 얼마든지 참된 글로벌 가치를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온 세계인들에게 이를 실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국면을 맞이한 셈이다.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인터뷰에서 “세계는 국적을 넘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또 “우리가 극복하려 했던 주요 장애물은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남는 방법이었지, 외부에 있는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 아니었어요”라고 했다.

 <미나리> 중 한인 이민 가족의 모습.
(Photo :<미나리> 중 한인 이민가족의 모습 )

필자는 이민 2세인 정 감독의 가족이 낯선 불모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외부에 있는 공동체와의 관계’에 두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우선적인 가치를 외부 사회보단 내부의 가정에 두었다는 고백은 소시민적이고 담백하다고 느꼈다.

‘미나리’의 메시지가 지닌 이와 같은 보편적 평이함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글로벌 가치를 창출하게 된 것은, 위드 코로나 시기에 던져진 복구의 메시지처럼 고무적이고 소망적이다.

한편 영화 속 병아리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의 말을 통해,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려는 한인 이민자들이 더 이상 교회 공동체와 관련을 맺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은근슬쩍 시사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동남부 바이블벨트 지역인 알칸소 주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이자 부친의 친구인 ‘폴’이 방언기도를 하고 농장과 할머니를 위해 귀신을 내쫓고 수맥을 찾는 모습, 또 주일에 교회로 가는 대신 혼자 손수 만든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걸어가는 모습 등이 흥미롭고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민 2세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불안정한 정체성 혼란과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느끼게 되는 ‘고아’로서의 소외감의 이중고를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영원한 본향을 모를 때, 진실된 의미에서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과 고아 의식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민 2세들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차원에서 경험되는 독특한 것이다.

이민 생활에서 2세 못지 않게 정착의 어려움을 겪는 1세인 부모들로선, 2세들이 겪는 내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할 만한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이민 1세뿐 아니라 이민 2세인 자녀들을 위한 한인 교회들의 역할이 코리언 어메리칸과 크리스천으로서 정체감을 심어주는데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적지 않은 경우 안타깝게도 이민 2세 청소년들은 ‘부모의 교회’라 부르며, 다니는 한인 교회 안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이민 1세들간의 의견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자신들이 그동안 의지하고 보살핌을 받았던 청소년 사역자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반복해서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많은 남녀 청년들이 사회를 나가면 기성세대의 교회와 신앙의 모습에 큰 환멸과 회의를 품고 부모의 교회에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체감하는 바, 글로벌 세계의 현상인 보편화로서의 세계화는 비단 세상 사회뿐 아니라 교회 사회도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한인 교회는 언어적 복음 전파만이 전도의 유일하고 효과적인 도구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간성에서 풍겨나오는 미덕으로써 복음의 참된 글로벌 가치를 우리의 자녀들과 세상 사람들이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애써야할 영적인 뉴노멀의 국면을 맞이한 셈이다.

필자는 십수년 전 한 이슬람권 영화를 본 후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영화를 통해 이슬람인들의 신앙적인 성실함과 진지함을 바라보는 동안, 기독교인으로서 그간 가졌던 이슬람 국가에 대한 석연찮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인류애로 저들과 금새 접목되는 듯한 친근한 정서적 유대감을 유발하는 영향력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때때로 교리적 혹은 독선적이라며 귀를 틀어막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복음이 소시민적인 삶 속에서 진솔하고 잔잔한 인간애적인 겸양과 온유의 미덕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펼쳐나가고 발휘하길 원해서인지도 모른다.

복음은 단연코 글로벌 세계의 중심적 가치이며 중심적 능력이다. 이 복음의 중심은 ‘데리다’식 표현으로 결코 온전하게 그 자체로서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은유나 환유적 중심 개념이나, 보편적인 것을 가장한 배타적이고 폭력적 관념인 로고스가 아니다.

복음의 중심이 온전한 현존적 실재로서 영생의 가치와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게 되는 것은, 혹자들이 도모하는 종교다원주의 같은 중심 체계의 이동이 아닌, 로컬적 일상의 삶 속에서 거룩한 실재인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우리 모두에게 잠재한 선하고 의롭고 진실된 인간적 자질의 계발을 통해서만 가능하리라.

‘미나리’ 정 감독의 표현이 어쩐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일정 영역에 도달한 영화에 대해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나는 언제나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복음주의자인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일정 영역’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박현숙 목사

인터넷 선교 사역자
리빙지저스, 박현숙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9awEs_qm4YouqDs9a_zCUg
서울대 수료 후 뉴욕 나약신학교와 미주 장신대원을 졸업했다. 미주에서 크리스천 한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