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사랑하는 이들 수십만명 모여
앉은 걸 보니 눈물나 견딜 수 없어
아무 준비 없이, 심정 이야기한 것

은평제일교회에서 만난 심하보 목사. 그는 해외 방문길마다 태극기를 챙겨간다고 한다. ⓒ이대웅 기자
(Photo : 기독일보) 은평제일교회에서 만난 심하보 목사. 그는 해외 방문길마다 태극기를 챙겨간다고 한다. ⓒ이대웅 기자

지난 10월 25일 광화문 철야 국민대회에서 한 목회자가 “나는 비겁한 목사였다, 회개한다”며 피를 토하듯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에서 11월 2일 현재 총 12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얻고 있다.
그 주인공은 은평제일교회 심하보 목사. 지난 27년간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교회 성장 세미나를 개최했고, 해외 46개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할 정도로 전도와 선교에 열정을 갖고 있는 목회자다.

지난 10월 29일 오후, “오늘밖에 시간이 안 난다”는 심 목사를 만나기 위해 은평제일교회를 찾았다. 제법 성장한 교회인데도 심 목사의 아내는 교회 예배당 1층에서 환경 정리중이었고, 심 목사도 교회 입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동네 목사인 그는 무엇 때문에, 금요일 철야기도회 시간, 교회를 비우고 광화문으로 향했을까.

-10분간의 짧은 연설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 아셨습니까.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냥 제 심정을 토로한 것뿐이었습니다.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 수십만 명이 있는데, 그 깊은 밤 빗방울 떨어지는 추운 곳에, 애국하는 마음 없이 나올 수 없지요. 거기 놀러나온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희 교인 한 분이 나중에 왔다는데, 담임목사가 나오니 앞으로 가서 들으려고 했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나오겠더랍니다. 2년 전 촛불은 어땠습니까. 불이 있으니 위험해서 뚝뚝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깨와 어깨를 대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뚫고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추운데도 나라를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태 나는 뭐했나 싶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 손주들이 ‘할아버지는 그때 뭐했어요?’ 했을 때 뭐라고 대답할까 싶었습니다. ‘집에서 놀았어’, 그건 아니잖아요. ‘그때 광화문 가서 밤에 목이 터져라 기도했다. 그게 오늘날 이렇게 좋은 결실을 가져온 거다.’ 이렇게 떳떳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멀리 광화문까지 가서 집회에 참석하고, 연설까지 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도 광화문 현장에는 계속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안 하고 혼자 갔습니다. 3월 1일에도, 8월 15일에도, 10월 3일에도 혼자 지하철 타고 갔습니다.

강단에 서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10월 25일 광화문 집회 전에 독일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중 ‘애국’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거기 있던 청소년들이 헌금을 해준 것입니다. 정확히 3,230.1유로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전달했습니다.

저는 전광훈 목사님을 알지도 못했기에, 그 분과 안면 있는 목사님께 다리를 놔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 목사님이 한 말씀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0분 설교한 것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올라가서, 제 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전에 교회에서 이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신앙 지키는 것’이라고 한 것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또 한 것입니다.

돌아오는 토요일(11월 2일)에도 가서 10여분 말씀해 달라고 하셔서 나가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좀더 세게 갈지도 모르겠어요. 속에 있는 게 겉으로 나오는 것이니까요.”

목사는 그른 걸 그르다 말해야
나라가 없어지면 신앙 못 지켜
선지자, 죽음 무릅쓰고 말해야
죽을 각오로 나서면 못 죽인다

-본인이 비겁하다고 하셨는데, 목회 잘 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목사는 그렇습니다. 옳은 걸 옳다고, 그른 걸 그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잘못된 걸 보고도 영적 지도자인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교인들도 그른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것 아닙니까.

나라가 있어야 신앙도 있습니다. 나라가 없어지면, 더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면 어떻게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까. 예전에는 서서히 무너뜨렸지만, 지금은 한 방에 끝내버릴 수도 있습니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면 끝입니다. 강단에서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내가 목회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선지자가 할 일은, 죄를 죄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평성대 때 선지자를 내려보내지 않습니다. 왕이 잘못 하고 국가가 잘못할 때,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백성들을 착취할 때,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가서 말하면 죽지만, 선지자들은 죽으러 간 것 아닌가요.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그랬습니다. ‘혹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해야 할 말을 하겠다.’ 그러고 나니, 몇몇 교인들이 나가요. 카페에서 봉사하던 한 집사님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요약하면 ‘다음 주부터 못 나오겠다’고요.

사상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몇십 년을 같이 신앙생활 했는데, 무 자르듯 잘라 버립니다. 신기한 것은 우파라고 할까, 보수 쪽 사람들은 제가 강단에서 ‘박근혜가 나쁘다’고 이야기해도 튀지 않아요. 그런데 좌파는 그냥 튀어요(웃음).”

심하보 목사가 지난 10월 25일 광화문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Photo : 기독일보) 심하보 목사가 지난 10월 25일 광화문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목사님처럼 ‘비겁하게(?)’ 망설이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을까요.
“다들 그때의 저와 같은 심정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용기를 못 내서 앞으로 한 발을 못 내딘 것이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한 발을 내디딘다면, 대한민국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심정으로 다함께 일어난다면, 두려움 없이 강단에서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랑의교회든 명성교회든, 광화문으로 나오면 삽니다. 김삼환 목사님과 오정현 목사님, 희생해야 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면 됩니다. 죽일 것 같지만, 절대 못 죽입니다. 지금 전광훈 목사를 내란음모죄로 고소했지요? 그런데 그들은 몇년 전에 더하지 않았습니까?

안타깝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어요. ‘모 아니면 도’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개’로 있으면 안 되잖아요. 남이 해 주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죄를 죄로 설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으로 막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설교를 하지만, 그게 진짜 설교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없는 상황을 그냥 두고볼 수 없습니다.

나서지 못하는 분들은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우리 생명도 알고 보면 다 삶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저도 몸에서 암이 발견돼서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셈이지만, 늘 밝게 살아갑니다. 하나님 정해주신 기한까지 있다가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 가는 것 아닌가요. 집사람도 항암치료 하지 말라고 했어요. 천국 가는 날은 치료해도 정해져 있고, 안 해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정치인들 좋아하고 돕지만
그들의 사상만큼은 따를 수 없어
죄를 죄라고 설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진짜 설교라고 할 수 있나

-보수 정권도 비판하신 적이 있으시군요.

“없지 않습니다. 보수 정권 시절 수쿠크법을 도입하려 할 때, 정부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법이 통과되면, 돈만 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할랄 음식도 오고, 사람도 오고, 그러면 결혼도 하게 됩니다.

문화가 오면 종교는 따라옵니다. 그러면 이 땅에 자연스럽게 무슬림이 들어오고, 그들은 포교를 할 것이고 다시 이 땅을 우상의 단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진정도 넣고, 서명운동도 했습니다. 동성애 합법화나 군 동성애 합법화 움직임 때도 전 교인들 대상으로 반대 서명운동에 나섰습니다.

진보 정치인들도 다 착하고 사람은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려고 하는 길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닙니까. 그렇게 가면, 교회는 없어집니다. 강단에서 윤리나 도덕을 이야기하려면, 유교 사당에 가서 듣는 게 낫습니다. 강단에서는 예수의 피를 전해야 하고, 죄를 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벙어리 아니겠습니까.”

-현 정권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로 간다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으신지요.

“신영복을 존경하고 윤이상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을 존경할텐데, 그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법률도 그런 쪽으로 제정하려는 것 아닙니까?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입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저희 교회에는 경찰이 두 사람 와서 대기했어요. 민주화운동하던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 분들은 군사정권 시절 진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이에요. 그러다 고문까지 당했지요. 그들 중 한 분이 나중에 어느 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하셔서, 전 교인들이 가서 도와줬어요. 아침에 도시락 싸 들고 기차 타고 내려가서 도와주고 오후에 올라오고 그랬지요.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다 좋아요. 나쁜 사람이 어딨어요? 만나자고 하면 다 만나지요.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사상만큼은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몇 교인들이 나가는 거예요. 십수 년을 같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자를 수 있습니까.

그래도 공산주의 사상과 기독교는 공존할 수 없지요. 무신론 아닙니까. 공산주의의 적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교회입니다.”

-철 지나 용도폐기된 공산주의 사상이 왜 다시 지금 대한민국에서….

“지금 홍콩이 왜 저렇게 난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러다 우리가 홍콩처럼 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어요.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국가 일에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 입장에서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직무유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공산주의 됐느냐’고요. 그런데 공산주의가 이미 돼서 반대하면, 이미 늦은 것 아닌가요? 차를 새로 사면 제일 먼저 보험에 가입합니다. 사고가 나서 가입한 건가요? 사고 나기 전에 가입해야 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준비해야지요. 미리 미리 막아야지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지금 당장 비가 안 와도 우산을 갖고 나가야지요. ‘비도 안 오는데 우산 왜 갖고 나가느냐’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사상의 흐름도 지금 막아서지 않으면 강단을 지켜낼 수 없어요. 교회도 못 지켜요. 유럽은 장기간에 걸쳐서 무너졌지만, 대한민국은 법제화시키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무너지는 게 길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면 목사가 결국 앵무새 노릇밖에 못 하게 됩니다. 지금 중국이 그렇습니다. 모택동과 시진핑 얼굴을 교회에 걸어놓고, 십자가는 떼기 시작했습니다.”

신사참배도 정치 의식이라고 주장
우리는 정치 간섭 아닌, 신앙 수호
교회는 희생하면서 선지자 역할을

-광화문 집회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정교분리는 일제의 잔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 또는 교회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요.

“정교분리는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것처럼, 정부가 교회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자, 교회에서 세금 걷지 말자는 것입니다. 목회자 과세도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앞장서지 않으면, 교회에서 구제 사역이 잘 안 됩니다. 교인들이 먼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을 목회자가 하고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들이 받는 사례비는 교인들이 세금을 떼고 낸 헌금에서 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개척교회들은 월급이라고 줄 것도 없습니다. 이걸 무슨 수입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요. 제가 볼 땐 ‘세금의 세금의 세금’을 계속 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수장은 교회의 수장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국은 국교회 체제여서, 여왕이 교회의 수장까지 맡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나온 것입니다. 건너와서 제퍼슨이 선포한 것입니다. 교회가 정부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부가 교회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정교분리입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 일제가 교회를 향해 주장한 것이 교회가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정교분리입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니, 교회는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신사참배는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우상 앞에 절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생명 걸고 신앙을 지킨 것처럼, 올바른 신앙인이라면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은평제일교회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개설한 비전센터 내 작은도서관 모습. ⓒ이대웅 기자
(Photo : 기독일보) 은평제일교회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개설한 비전센터 내 작은도서관 모습. ⓒ이대웅 기자

일제는 신사참배를 하나의 정치 의식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묵념하는 것뿐이라고요. 우리가 김일성 주석 앞에서 절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신앙은 끝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정교분리를 말하는데, 정치에 간섭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신앙이 국가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되면, 가만히 있지 말고 말해야지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대적하는 일에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정치가 잘 되면, 교회에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 도와줄 것입니다. 저희도 구청 일에 적극 협력합니다. 구제도 크게 합니다. 버스도 내주고, 동네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장소도 제공합니다. 다 협조하지요. 단, 신앙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을 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교회는 선지자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희생 없이 안 됩니다. 선지자들이 희생했고, 예수님도 희생하셨습니다. 이번 일은 저도 아내도 희생을 각오한 것입니다. 저도 아내가 말리면 못합니다(웃음). 교인들이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게 희생이지요. ‘그냥 이렇게 가면 편안하고 좋은데…’ 하고 진정으로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각오 없이는 안 됩니다.

저는 교회 개척할 때부터 희생하며 살았습니다. 개척을 앞두고 금식 기도했는데, 월 5만원 사글세방 말고는 가진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없는데, 없으면 굶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2살, 4살짜리 애들이 무슨 죄입니까. 그래서 ‘아빠가 굶으면 너희들도 굶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아내도 애들도 굶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981년 3월, 방에서 예배를 시작했어요.

그때 울면서 시작했고, 여태까지 38년간 안 울다가 이번에 복받쳐서 처음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도, 우리 내외는 ‘절대 먹고 살려고 목회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8년간 교회에서 1원도 안 받았어요.

그럼 뭐 먹고 살았냐고요? 쌀은 교인들이 조금씩 주시는 성미로, 반찬은 맹물에 된장만 풀어서 3년 먹었어요. 그랬더니 몸무게가 52kg까지 내려갔지요.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간에 이상이 왔어요.

입원하라는데 돈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부교역자가 없으니, 제가 없으면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해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애들은 유치원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8년간 사례를 안 받으니, 예배당 지을 땅 계약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불광동에 예배당을 지었고, 빚을 져서 5년간 또 사례를 못 받았어요. 햇수로 13년간 안 받다가 처음 80만원을 받았는데, 집사람이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더라고요(웃음).

안 받았을 때가 더 편안했어요. 마음놓고 목회할 수 있었으니까. 이후에 지금 예배당 지어야 해서 2-3년 안 받았고, 교육관 지으면서 또 2년 안 받았어요. 사례를 받은 때보다 안 받은 때가 더 많았지요.

이렇게 희생해야죠. 우리 교회에서 차 한 번 사준 적이 없어요. 지금 차는 한 교인이 사 주셨어요. 죽을 때가지 첫 각오처럼 ‘돈 때문에 목회하지 않을’ 겁니다. 성도의 시간을 도둑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가 되고자 합니다.”

한국 복음화해서 복음 역수출을
히잡 벗길 것… 케이팝으로 선교
올바른 신앙인, 애국자 될 수밖에

이 지도에는 심 목사가 방문한 국가들에 파란색 ‘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지도에서 우리나라를 가리키고 있는 심하보 목사. ⓒ이대웅 기자
(Photo : 기독일보) 이 지도에는 심 목사가 방문한 국가들에 파란색 ‘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지도에서 우리나라를 가리키고 있는 심하보 목사. ⓒ이대웅 기자

-선교에 관심이 많으시지요.
“유럽엘 가 보니, 그 큰 교회가 텅텅 비어 있어요. 전 세계를 다녀보는데, 교회가 점점 유물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나라를 복음화해서, 그런 나라들에 복음을 역수출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 비전센터가 있는데, 여기서 힙합 댄스교실을 열고 있어요. 앞으로 댄스학교를 개설할 겁니다. 이걸로 해외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요. 지금 케이팝(K-Pop)의 영향력이 대단해요. 이걸로 ‘히잡’을 벗기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함께 춤 추면서 복음을 심으려고요. 젊은 시절 평신도 선교사로 1년만 가서 해도 좋을 것입니다.

태국에 ‘히즈팝’이라는 단체와도 협력하고 있어요. 태국은 불교 국가인데, 이걸로 복음을 전해요. 왠만한 선교사들 10년 하는 것보다, 하루 춤 같이 추는 게 낫더라니까요(웃음). 재작년에 저희 교회에서 무슬림 선교 대회도 했는데, 선교사님들이 10년 있어도 전도를 한 명도 못하고, 하다 못해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말도 못 꺼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로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날 연설에서 전광훈 목사에게 ‘정치 하면 가만 안 둔다’고 하셨는데요.

“정치 목사가 실제로 있어요. 미국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던 제시 잭슨,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마틴 루터 킹. 이런 분들이 정치 목사입니다. 그것도 잘못한 건 아니겠지요.

전광훈 목사가 국회의원 나가고 장관 하겠다면 정치 목사가 됩니다. 그렇게 정치에 나서면 제가 이용당한 거니까, 그러지 않는다고 다짐받은 거예요(웃음).

그런데, 목사가 정치인이 뭐 그렇게 부럽겠어요? 군목은 대위이지만, 중령·대령인 대대장도 오면 ‘목사님’ 하잖아요? 목사에게 교인들은 의원이든 장관이든, 다 교인일 뿐입니다. 교인들로부터 누가 더 존경을 받겠습니까? 그런데 구태여 그걸 왜 하겠어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해서 복음의 역수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였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한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 없이는 안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새벽종이 울렸네’ 외쳤는데, 그 새벽종이 어디서 울렸습니까? 교회입니다. 지금은 시끄럽다고 종도 못 울리게 해요.

요즘은 교회 십자가 불빛 때문에 밤에 신고가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건 법적으로 허가돼 있다고 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병원 적십자 불빛은 아무 말 안 합니다. 육신의 병만 병인가요? 마음의 병은 교회에 와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걸 신고하는 사람이 있는데, 꼭 아주 멀리 사는 분들이에요. 가까이 있는 분들은 십자가 불빛 보면 평안해서 잠이 잘 온다는데 말입니다(웃음).

올바른 신앙인은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내 신앙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거짓 신앙인은 나라도 못 지키고 신앙도 못 지킵니다. 내 나라관, 교회관, 가족관, 목자관, 이게 있어야 올바로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선교하러 46개국을 다녔는데, 현지 숙소에 딱 들어가면 태극기부터 꽂습니다. 제가 혹시 잘못 돼도,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책임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행 가방에 항상 태극기를 넣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