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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칼럼] 행복한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

기독일보 강태광 편집위원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May 02, 2019 08:50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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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
월드쉐어 USA 강태광 목사

얼마 전에 부산 출신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반갑게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공감대가 많았습니다. 송도제일교회, 복음 병원 등의 추억들을 나누다가 장기려 박사의 삶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장기려 박사와 복음병원에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권사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고 필자도 장기려 박사의 삶과 신앙을 익히 아는 터라 제법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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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의사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는 탁월한 외과 의사였고, 신실한 신앙인이었고, 훌륭한 교육가였고, 많은 선행을 베풀었던 인자한 어른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하는 한국 의료 보험 제도의 초석을 놓으신 분입니다.

장기려 박사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이 설립한 의성학교를 거쳐 1928년 개성에 있는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32년 경성의학 전문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의전 외과학교실 백인제 교수의 조수로 의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백 교수는 장기려가 경성의전 외과학교실의 후계자로 남기를 바랐으나 그는 그 시절 엘리트 코스를 마다하고 평양으로 내려가 1940년 선교병원인 평양연합기독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하여, 본격적으로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이는 경성의전 입학 당시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의전에 입학하면서 치료비가 없어서 의사 얼굴 한번 못 보고 죽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1940년 9월 일본 나고야 제국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45년 11월 북한 제1 인민병원 (평양도립병원) 원장, 1947년 평양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재직했습니다. 이 시기에 김일성의 맹장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월남 후 195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1956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겸 학장, 1965년 서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1976년 부산아동병원 원장 그리고 부산 복음병원 원장, 청십자 병원 원장등을 역임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사설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1976년 청십자의료원을 설립하여 환자 진료를 계속하였습니다. 1974년 한국간연구회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회장을 맡았고, 부산 생명의 전화 설립, 장애자재활협회 부산지부 창립에도 앞장섰던 사회 운동가요, 한국 의료 복지의 기초를 놓았던 의료인입니다.

장기려 박사는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암 환자의 간암 덩어리를 간에서 떼어 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또 1959년에는 간암 환자의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을 하였답니다. 그는 간의 혈관과 미세구조 등에 대한 연구 업적으로 간질환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간장외과의 발전과 의료 인재 양성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공적으로 장기려 박사는 1976년 국민훈장동백장을,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부문)을, 1995년 인도주의 실천 의사 상 등 중요한 상들을 수상하였습니다. 노년에는 당뇨병에 시달리면서도 백병원 명예원장으로서 집 한칸 없이 협소한 사택에서 지내면서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박애와 봉사정신으로 인술을 펼쳐 한국의 성자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자신은 당뇨병에 시달리면서도 무의촌을 찾았고, 가난한 당뇨병 환자들은 돌보면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다가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에 84세의 나이로 당뇨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치료비를 대주며,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병원에서 몰래 도망가라고 문을 열어주고 병원 원무과 직원들에게 혼이 났었던 병원장이었습니다. 수십 년 의사 생활을 했지만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북에 두고 아내와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독신으로 수절한 성자입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너무 그리워했지만 이산가족 상봉의 '특혜'는 거절했던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장기려 박사는 행복한 나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그의 진료를 받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기려 박사의 인격과 신앙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나눔의 삶을 통해서 신앙을 실천하며 섬김과 나눔의 삶으로 행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각박한 세파에 시달리며 들려오는 잔인한 소식에 놀라면서 성산(聖山) 장기려 박사를 더욱 그리워합니다.

행복 설계사 강태광 목사 (World Share US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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