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12회 석학초청강좌가 19일 오후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화평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강좌에는 올해 100세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나의 삶과 영성: 기도와 성령'을 주제로 강연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 예수에게 더 뚜렷해져
주의 기도, 우리가 이런 기도 드릴 수 있다면
응답 없는 기도? 더 높은 차원과 뜻에서 성취

먼저 기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김형석 교수는 "기독교는 기도를 드리는 종교이다. 그 전통은 구약 시대에도 있었으나, 예수에게 와서는 더욱 뚜렷한 성격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예수는 많은 기도 시간을 가졌다. 전도 초창기보다는 생애 마지막이 가까워지면서 더 많은 기도를 했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언제나 기도했으며, 때로는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전도 초창기에 남긴 기도에 관한 몇 가지 교훈(눅 11:5-8; 9-12, 18:1-8)은 기도의 중요성과 더불어,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그 사랑의 아버지에 대한 기도는 필수적일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호소하고 그 결과를 찾는 것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라고까지 가르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가 오늘까지 존속된 배후에는 이러한 기도의 역사가 그 명맥을 이어왔다. 또 많은 크리스천들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그 기도의 약속을 믿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예수는 기도의 방법과 방향에 대한 가르침도 주셨고(마 6:5-8), 잊을 수 없는 유명한 '주의 기도(주기도문)'를 가르쳐 주셨다(마 6:9-13). 우리가 만일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기도와 인간적 염원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도 그 기도를 외면할 수 없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석 교수는 "이 기도는 세계적 질서의 완성이고, 인간 생활의 도리이며, 구원의 염원을 대표하는 것이다. 인간은 마땅히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하고,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인간은 땅 위에서 최선의 삶을 영위케 될 것"이라며 "물론 우리의 기도는 이 높은 차원에 도달하기 어렵다. 대개의 기도가 기복종교의 위치를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도가 오히려 우리 신앙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지만, 우리의 모든 기도가 주의 기도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뜻이 신의 은총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기독교는 기도할 수 있는 고귀한 신앙으로 남을 것"이라며 "사실 우리는 주의 기도 이상의 기도를 드릴 수 없고, 기도를 드린다면 주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최상의 신앙고백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독교학술원
▲강연 후 기념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 교수는 "사람들은 이기적 욕망이 기도에 의해 채워질 수 있고 또 채워져야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기도드리는 사람들은 그런 좁은 기복성에 빠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그러나 그런 기도로부터 시작해 주의 기도의 뜻에 도달하는 길은 누구나 체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람들은 기도를 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말한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도 그런 경험을 한 것 같다. 전도 생활에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는 것 같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거나 부정적 대답을 얻었다는 기록도 있다"며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역사가 흐르면 우리의 기도는 더 높은 차원과 더 큰 뜻에서 성취되곤 했다. 이 때에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이다. 우리의 소유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기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당장 하나(1)의 뜻을 위해 우리가 기도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열(10)의 결과를 역사 속에 이뤄주신다. 아버지의 거룩함과 주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것"이라며 "필요한 양식과 서로의 죄를 용서함에 대한 기도도 마찬가지다. 고달픈 세상을 살면서 인간 모두가 육체와 정신적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염원하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용서와 사랑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첩경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 뜻을 위한 기원과 실천은 빈곤이 없고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 원동력이다. 더불어 인간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고, 죄악으로부터 구원을 호소하는 뜻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한 기도"라며 "결국 역사의 완성은 언제 어떻게 이뤄지고, 모든 인간들의 희망과 구원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그 뜻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참으로 위대한 기도를 드리게 되고, 삶과 신앙의 방향을 찾아 전진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오래 전 다음과 같은 뜻을 글로 남긴 바 있다. '만일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잠시 동안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여러 친지들과 더불어 주의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며 "기도 중의 기도가 바로 주의 기도이고, 거기에 삶의 압축된 염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형석 기독교학술원
▲김형석 교수는 "예수님 말씀을 교리로 받아들이면 천주교나 장로교나 감리교처럼 믿게 되고, 진리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내 인생관과 가치관이 되어 내 속에 머물게 된다"고 전했다. ⓒ이대웅 기자

성령, 쉽게 말해 하나님 역할 대행하는 능력 실체
구약이나 타종교의 영적 실재 역할, 체험과 달라
참다운 신앙생활 하는 이들, 이 은총의 질서 확신

이어 성령에 대해 김형석 교수는 "기독교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성령'이다. 과연 성령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본질은 어떤 것인가"라며 "기독교 외의 종교에서는 어떤 종교적 실재가 있어 그것이 인간적 종교적 기능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흔히 귀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전엔 천사나 악마가 있다고 했지만, 요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구약과 신약에도 그런 표현이 지속되는데, 성령도 그런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김 교수는 "구약과 신약의 성령은 쉽게 말해 하나님 역할을 대행하는 능력의 실체이다. 우리는 성령을 물질적 존재로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이 만들어 가진 어떤 관념을 말하지도 않는다"며 "구약과 신약의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문제 삼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대행한다는 것은 역사와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을 하나님 뜻으로 이끌어가는 일이고, 이는 여러 성격과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학자들은 계시를 문제삼는데, 그렇다면 계시를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은 누가 감당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지혜나 사고력이 아니라, 어떤 성스러운 능력이다. 그것을 성령이라고 불러 왔다"며 "예수도 다른 모든 죄는 사함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스르거나 모독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친 일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거룩한 능력을 세속적인 것으로 떨어뜨리거나, 그것을 악마적으로 오도하면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형석 교수는 "예수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성령을 보내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장에는 예수의 성령에 대한 약속과 교훈이 나타나 있다"며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다 잊고 있었다. 그러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초대교회가 형성될 때, 예수의 약속과 성령의 역할은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오순절에 일어난 큰 사건이 처음이었고, 그 뒤부터 초창기 기독교가 정착될 때까지 놀라운 성령의 역할로 가득차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기독교의 성령은 구약이나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어떤 영적 실재의 역할이나 체험과는 다르다. 여기서 언급되는 보혜사는 하나님과 예수와 인간의 관계를 연결짓는 능력의 실체"라며 "그리스도의 뜻과 관련 없는 성령은 문제 삼지 않는다. 하나님 뜻과 어긋나는 역할도 기독교의 성령과는 연결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요한은 이 성령의 역할을 진리의 문제와 강하게 연결짓는다. 이때 진리는 구원의 말씀과 통하고 구원의 진리를 가르친다. 또 제자들은 그 진리를 초인간적 능력으로 선포해 구원의 역사를 개척해 간다"며 "진리의 영은 참과 구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능력이다. 또 예수는 이 보혜사 성령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머물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했다.

김형석 교수는 "그래서 신학자들은 역사의 시초부터 예수까지를 성부 즉 하나님의 시대, 예수가 세상에 머문 기간을 성자의 시대, 예수 이후 말세까지를 성령의 시대로 본다. 그렇게 본다면 성령의 시대가 가장 폭넓은 역사의 위치를 차지한다"며 "가장 중요한 신학적 과제는 하나님과 세계, 예수와 인간, 성령과 역사 이 세 가지가 남게 된다. 그만큼 성령의 의미와 역할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그렇다면 성령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얻기 어렵다. 누구도 자신 있는 대답을 하기에는 종교적 체험이 부족하고, 종교적 체험이 있어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예수도 이런 문제에 봉착할 때는 상징적인 비유를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실체와 본질을 설명하는 것은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은 물리법칙이나 자연 질서의 울타리 안에서 보존되며 존재하도록 돼 있지만, 우리의 정신생활은 어떤 정신적 질서 속에서 영위되고 있다. 그 질서는 엄연히 존재하나, 그 영역과 결과가 큰 폭의 차이를 갖고 있기에 쉽게 측정하거나 규범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이러한 정신적 질서 이상의 한 차원 높은 질서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격적 구원의 질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그때 초인간적인 어떤 질서와 능력이 주어진다면 그 능력의 주체를 성령으로 부를 수 있고, 인간적 위치에서 본다면 그것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에 은총의 질서라고 부를 수 있다"며 "그렇게 본다면 성경 역사 속에는 이 은총의 질서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고, 지금도 참다운 신앙생활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이 은총의 질서를 확신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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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좌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대웅 기자

김형석 교수는 "우리는 그것을 수학 공식으로 풀이하거나 합리적 객관성으로 입증해 보일 수 없지만, 그 근본과 목표에 있어 공통성을 가지는 은총의 질서는 많은 성도들의 생활에 나타나 있다"며 "시대를 따라 그것이 강렬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평범한 삶 속에 깃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은총의 사실들을 보고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성령의 작용은 인간 내적 관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끝까지 체험 영역에 속하기에 은총의 질서에는 속하지 않는다"며 "성령의 기능은 항상 성스러운 것과의 차원에서 가능해진다. 성경과 기독교는 이런 의미에서 기도와 성령을 긍정적인 면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는 그 처음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