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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축사] 믿는 것이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4절~31절)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Apr 18, 2019 01:26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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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우리교회 김경진 목사

김경진 목사.
(Photo : ) 김경진 목사.

우리는 지금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인간 사회는 이전엔 상상하기 힘들던 신기술의 개발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사실은 받아드리기 쉽지 않는 진리입니다. 특별히 감각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사회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하나의 종교적 신화처럼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의 회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직접 부활하셨다는 예수님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또한 그 옆구리에 난 창 자국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서구 사회에서 “Doubting Thomas” 즉 의심하는 도마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도마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의심이란 부정적인 신앙요소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회의와 의심이 다 부정적이고 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갈릴레오의 말처럼 회의는 발견의 아버지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회의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삶의 더 큰 풍성함을 줄 수 있는 올바른 신앙과 굳건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도 합니다. 덮어놓고 믿으라는 신앙이 받아 드려지기 정말 힘들 때 의심과 회의를 붙들고 씨름할 수 있는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자신의 고백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 중 가장 먼 지역, 인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의심을 넘어설 때 그 신앙은 나의 신앙이 되면 더 열정적인 헌신을 이끌어냅니다. 얼치기로 알고 있는 신조로 보다도 성실한 회의 속에 참다운 신앙으로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회의와 의심으로 고민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의심을 넘어 믿음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도마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런 의심이 가질 수 있는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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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닙니다. 임철규 교수님(눈의 미학 중에서)의 말에 의하면 눈은 무엇을 인식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관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시각을 통해 일부분만 알고 엄청난 전체의 나머지 부분은 삭제되기 때문에 눈은 관찰자 자신과 관찰자의 인식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눈이란 성 어거스틴이 참회록을 쓰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며 흘리는 수많은 믿음의 눈물이 눈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너무 작습니다. 우리의 눈은 무한한 우주공간의 티끌같이 작은 부분만 볼 수 있듯이, 우리의 눈으로는 우주공간보다 더 큰 영혼의 세계, 영원한 하나님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로 물질세계, 우주공간을 넘는 영원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와 그 진리를 보게 합니다. 그러기에 참된 영원한 진리는 바로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고로 뇌 손상을 입어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둔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실화입니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30세 된 아들이 몇 해 전부터 계속 무의식 상태에서 병원 침대에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 부부는 지쳐서 아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애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아무 반응도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 아들을 자주 방문했지만 그 애를 향한 애정이나 사랑이 점점 죽어가는 현실을 그 부부는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 그 아이를 방문했을 때 처음 본 인근 교회 한 목회자가 자신의 아들의 병실을 찾아온 것을 문 밖에서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마치 그 아이가 알아듣는 것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기도하시는데 마치 내 아들이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을 알아듣고 같이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비웃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세요 내 아들이 어떤 지경에 있는지 모르십니까! 숨만 쉬는 송장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와 동시에 갑자기 마음속에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래 저 목사님은 내 아들의 상태가 어떤지 다 알고 계시지 않는가! 그렇지만 내 아들이 온전히 살아 있는 아이처럼 그에게 이야기 하고 기도하고 돌봐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 저 분은 내 아이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다 완치된 것처럼 말이야. 아니 주님이 지금 그 옆에 오셔서 그 기도를 귀 기울이시고 대화를 들으시며 내 아이를 고쳐주신 것처럼 말이야.” 그러면서 그 아버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 순간 자신과 제 아내에게 그 아들이 온전한 아이임을 보게 해주시고 그를 향한 사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생각하기도 보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우리의 현실이 절망이라고 한다면 그 정말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 절망의 현실은 나의 참된 현재의 전부가 아니라고 의심하며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원한 소망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진리는 믿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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