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하다, 적그리스도에 의해, 영육간 존경받던 삶
주기철 목사님 등 순교자들, 죽기를 간절히 바랐던 분
'종교적 열심' 동의 못해, '십자가 신앙'으로 살아가야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와 말씀과 섬김과 순교의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와 이응삼 목사(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전 사무총장)가 18일 오전 서울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대담 후,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토론을 진행했다. 다음은 토론 주요 내용.

-한국교회 대표적 순교자이신 주기철 목사님 신앙과 순교의 영성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듣고 나서 보니, '순교'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응삼 목사: 요즘은 순교라는 단어가 남발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수련회에서 사고를 당해도 '순교'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순교를 정의하자면, 사도행전 7장 속 스데반 집사님이 기본입니다. 첫째로 복음을 전하다가, 둘째로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셋째로 주기철 목사님처럼 그 삶이 영적이든 육적이든 누구나 존경받는 것까지 겸비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그러하셨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로 기리고 오랫동안 신앙의 모본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순교와 순직을 구분해야겠네요. 순교는 핍박과 박해를 수동적으로 견뎌내고 신앙을 지키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고, 어떤 사역을 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경우는 순직의 개념이네요. 한국교회에서 순교자 개념 정리가 잘 안 되고 있는데, 교단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순교자들 수는 얼마나 되나요.

이응삼 목사: 일제강점기나 6.25 때 집단적으로 당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확인은 어려운 면이 있지만, 보통 1-3천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순교를 보면, 타민족보다 주로 동족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그랬지요. 우리나라에서 6.25 때 대규모 순교를 당했는데, 이 역시 동족들이 이념 때문에 저지른 것입니다.

-교회사 속에도 주기철 목사님 같은 순교 신앙을 가진 분이 많으시죠.

김명혁 목사: 말씀하신 스데반 집사님도 있고, 150년 서머나 교회에서 불에 타 순교하신 교부 폴리캅도 있습니다.

순교를 '수동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분들은 순교를 사모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순교를 바라셨습니다. 할 수 없이 당하신 것이 아니고, 죽기를 바라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아내 정양순 사모님도 손 목사님 시신 앞에서 먼저 울며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하신 다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남편의 소원을 이뤄주셔서'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스데반 집사님도 기뻐하면서 순교하셨고, 폴리캅도 '날 순교자 삼으십니까' 하고 영광스러워했습니다.

터툴리안이 말씀하신 것처럼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로마 시대에 많은 순교자가 생겼고, 그 덕분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님이 없었다면, 이기풍 목사님이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십자가를 사랑하며 죽기를 소원하며 달려갔던 신앙의 선배들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본인이 자원한다고 순교를 당할 수는 없기에 '수동적'이라고 했습니다. 박해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하지 않은 믿음의 결단이지요.

이응삼 목사: 오늘날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시대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주기철·손양원 목사님 때처럼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순교 신앙'을 말하는데, 이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하는데, 소금은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이 녹아지고 희생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순교란 소금처럼 빛처럼 사는 것 아닐까요.

목숨을 버리고 죽는 것보다, 우리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순교일 것입니다. 요즘 많은 크리스천들이 빛을 잃고 맛을 잃었습니다. 주기철·손양원 목사님이 살던 시대에 비해 교회가 지도력과 존경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회복하는 삶이 순교 신앙입니다.

주기철
▲사진 홍성사 제공

-손양원·주기철·이기풍 목사님처럼 순교신앙을 실천하셨던 분들의 삶을 보면, 종교적 열심보다는 기도와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천국 사모'가 강렬했기에 기꺼이 순교자의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종교적 열심과 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대형교회 등 외형에 치우치고 있는데요.

김명혁 목사: 저는 '종교적 열심'이라는 말 자체에 잘 공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삶과 죽음을 너무 귀중하게 여기면, 자연스럽게 순교적 신앙을 갖고 살다가 죽게 됩니다. 꼭 목이 잘려 죽지 않아도, 십자가와 십자가 신앙으로 말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종교적 열심'보다 '십자가 신앙'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순교는 아니지만 순교적 삶을 사신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집도 팔아 버릴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가난해지고 고난을 당하고 약해지고 슬퍼질 필요가 있습니다. 억지 고행주의는 안 되겠지만, 프란치스코가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스승으로 죽음을 자매'라고 한 것을 고행주의라고는 하진 않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프란치스코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약해지고 착해져야 합니다.

가난과 고난, 슬픔과 아픔과 매맞음 속에서도 고린도후서 11-12장처럼 기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교지에서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와 사회 상황에서, 가난과 고난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명혁 목사: 지금은 편안하지요. 약 80년간 고난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선교적 죽음'을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들의 삶을 목사님들이 설교하면서 간증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애양원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신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글을 읽어야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좋은 집을 마다하고 남한산성 아래 조그만 집에서 은퇴 후 평생 사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자꾸 그리워하면 감동을 받게 됩니다. 부요한 때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렇게 살고자 하면, 내가 은혜를 받고 옆 사람이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에 그럴 수 있는 목회자들이 있을까요.

이응삼 목사: 지금은 신앙과 삶의 일치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활 따로, 신앙 따로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세상에서는 똑같이 살아갑니다.

국내 순교지를 순례하는 일들을 하는데, 문준경 전도사님 순교지인 증도를 자주 갑니다. 얼마 전 순례에 함께했는데, 10회 이상 갔지만 갈 때마다 다른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 아닐까요? 믿음의 현장들을 보면서 피부로 느껴야 합니다. 말로 되는 것은 아니고, 가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한 분 덕분에 지역이 복음화되고 예수 믿는 마을이 됐습니다. 신앙과 삶을 '매치'시키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순교 신앙 이전에, 한국교회에 들어온 천민자본주의를개혁하고 갱신해야 가난과 고난과 순교의 신앙에 대한 열망을 갖지 않을까요.

김명혁 목사: 자본주의를 없애는 운동보다는, 지금 쭉 이야기한 대로 순교자들뿐 아니라 장기려·한경직·이성봉 목사님 같은 분들의 귀중한 삶을 함께 돌아보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이런 선배님들의 삶과 순교를 본받아야 합니다. 갑자기 순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갑자기 순교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설교가 한 장이었습니다. 구제도 얼마나 열심히 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도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아지길 원하셨습니다.

이응삼 목사: 오늘 발표를 준비하면서,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느낀 것은, 한국교회에서 기도 소리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삼각산에 자주 갔습니다.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순교도 없습니다. 기도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이성봉·김치선 목사님도 기도에 전력하신 분입니다. 김치선 목사님이 산기도 하면 매일 따라갔습니다. 선배님들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이라도 기도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분들이 나타나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사랑과 섬김, 그러고 나서 순교로까지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