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고난주간을 앞두고 '한국교회를 향한 묵상의 글'을 13일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이 글에서 △한국교회는 교파 분열과 교회내 분열의 허물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자기를 희생하신 주님의 십자가 본받아 세상의 영광 추구를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세상의 권력추구나 현실타협를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자기 비움)를 본받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고난주간을 계기로 그리스도께서 위탁하신 세상의 고통 동참을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교회는 오늘날 이 사순절 기간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갈등과 어려움 속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卑下, 낮춤)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낮추고 세상의 권력과 유익을 위하여 추구한 영광의 신학에서 결별하는 태도가 요청된다"고 전했다. 아래는 이 글의 전문.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한국교회는 교파분열과 교회내 분열, 싸움, 세상의 권력추구나 현실타협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자기비움, 고난, 대속은혜 본받아 위탁하신 세상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고난주간은 사순절 마지막 주간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참회하고 이 세상 대속을 위한 고난과 죽으심에 동참하는 기간이다. 고난주간은 부활절 이전 주간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수난을 묵상하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고난주간 묵상은 예수님이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체포되시고 심문받으시고 성 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심을 묵상하는 기간이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반역한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우리 죄인 대신하여 죄 값으로 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순절의 시작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성회(聖灰) 수요일' 혹은 '참회 수요일'이다. 사순절의 절정은 고난주간이며 고난주간의 절정은 성(聖)금요일(Good Friday)이다. 성금요일에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류의 대속을 이루셨다. 교회사에서 고난주간은 예수 교회가 역사의 시대상황 속에서 항상 새롭게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교회의 시대적 사명과 신자의 개인적 경건을 재정립하는 기간이 되어 왔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이 밝혀낸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개인, 교회, 국가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고난주간 동안 기도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샬롬나비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교회가 자기허물과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반성을 하면서 십자가 신앙을 생활화하기를 묵상한다:

1. 한국교회는 교파 분열과 교회내 분열의 허물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졌을 뿐 아니라 보수교단은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으로 갈라져 오늘날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이념과 가치관의 혼란에 대하여 전혀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여러 교파로 나누어서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정부나 사회에 대하여 응집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장로교 예장 간판 아래 3백개의 군소교단이 있고, 이들 군소교단은 하나의 노회에 지나지 않는 규모도 많다고 한다. 그리하여 종교담당 공무원들에게는 기독교 목회자들이나 교회지도자들이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각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분들에게 전도의 길이 막히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적지 않는 대형교회에서는 교회권력의 싸움 때문에 한 교회당 안에서 각기 예배를 달리 드리는 가하면 심지어 소속 교인들끼리 서로 반목 갈등하여 고소하는 사태 때문에 교회는 양식있는 시민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오늘날 사회의 등대가 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자기 수욕을 자처하는 불명예가 되고 있다. 세상을 위하여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분열되고 있고 자기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케노시스(Kenosis, 자기 비우심)를 본받아 권력 추구 욕심을 내려놓고 자기 낮춤을 실천해야 한다.

2. 한국교회는 자기를 희생하신 주님의 십자가 본받아 세상의 영광 추구를 회개해야 한다.

초창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쓰러져 가는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며 자신을 헌신했다. 백년전 수표교 교회 신석구 목사는 3.1운동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금식기도하며 자기 목회가 무너져가는 조국독립을 위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에 참여하여 순교적 삶을 살았다. 오산학교장 이승훈 장로는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서명 순서에 서열문제가 발생하자 죽을 자리에 서는데 서열이 문제인가 반문하며 일 순위를 천도교 손병희 교주에게 양보했다. 교회는 일제에 압박당하는 독립투사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그리하여 3.1운동 직후 일제의 탄압에 가장 희생이 큰 단체가 교회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희생하는 애국자들의 거처가 되었다.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 본체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시고 십가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신앙을 민족해방을 위한 실천에 적용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선조들의 희생 덕분으로 제일종교로 잡은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자리가 권력이 되어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지나 않는지 이 고난주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한기총은 초창기의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1989년 창립되어 보수교단의 단일연합체로서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교단을 총망라하는 역할을 23년간 해 왔는데 2012년에 정치목사들이 등장하여 권력욕심으로 각종 비리와 혼탁 선거로 분열되어 오늘날 과거의 도덕성과 권위를 상실하고 있다. 한기총 임원들은 이 점을 유의하고 이 고난주간 자기비움을 실천하여 권력욕을 무조건 내려놓고 실망하여 나간 인사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참회의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교연이나 한교총도 한기총 탓하는 모든 변명을 내려놓고 마찬가지로 상응하는 다시 연합하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고난주간 한국교회를 향하는 그리스도의 뜻일 것이다.

3. 한국교회는 세상의 권력추구나 현실타협를 회개해야 한다.

지난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교회협(KNCC) 교회 지도자들은 3선 개헌 반대와 장기독재 거부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세상권력에 예언적 비판을 하고 기꺼이 감옥에 갔다. 그런데 오늘날 안보가 위협당하고 소득주도성장정책이 소영세업자와 일급 노동자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으며, 동성애가 국민들 성윤리를 문란하게하고 있는데 진보교회측의 정권비판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교회협(KNCC) 교회 지도자들은 오늘날 공직자의 신분을 땅투기와 자기 개인 노후생활 보장으로 생각하여 국민의 눈높이에서 벗어나 사퇴하는 장관후보자들이나 동성애나 각종 양식과 윤리에 어긋나는 정부 정책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다. 진보교회 지도자들은 오늘날 청와대에 가서 7포(抛)세대 젊은이들을 위하여 경제적 대책을 대변하기보다는 국가 경제의 기본이 허물어가는 정부의 사회주의 이념정책에 대하여 아무런 예언자적 충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3차례 남북정상회담에 있었으나 북한동포들의 인권 개선에 관해서는 전혀 논의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날 진보교회 지도자들은 북한 동포의 신앙자유와 인권 유린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침묵만 하고있다. 북한이 핵폐기를 위하여 아무런 조처도 없이 일방적으로 구체적인 국제적인 경제 제재만을 해제해 달라는 요구에 대하여 일방적인 북한의 심기(心氣)를 배려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과연 자유대한민국의 백년 대게를 위한 것인지 사순절과 고난주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보야 할 것이다.

한기총은 최근에 들어와 사분오열로 보수교회 연합회의 대변자 위상과 기능을 상실했으며 지도자들의 권력추구와 금권선거를 비롯한 오욕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규칙 위반, 독선적 안건 처리 등 각종 비상식적 업무 수행으로 인하여 건전한 교계 지도자 위상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보도에 접하고 있다. 한기총은 각종 시국현안에 반대하기 위하여 십자군식으로 순수한 교인들을 몰아가는 것은 자기비우는 십자가 정신이라기보다는 세상의 권력 장악의 모습이요 중세의 십자군 행군이요 영광 신학의 표출이라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오늘날 진보나 보수교회 측은 한결같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보다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사순절에 오신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만나는 모습인지 진지하게 자기 반성해야 한다.

4.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자기 비움)를 본받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이 사순절 기간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갈등과 어려움 속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卑下, 낮춤)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낮추고 세상의 권력과 유익을 위하여 추구한 영광의 신학에서 결별하는 태도가 요청된다. 중세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성을 보이는 세상의 성공이나 업적에서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중세교회의 교회권력과 교황권력의 절대화로 나타났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신성과 영광은 세상의 인위적인 교회의 제도와 형식적인 성례전 속에서 은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고통받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타나신 모습은 영광스런 왕이나 황제의 모습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마구간이었고, 그가 복음을 전파하신 곳은 당시 작은 로마 식민지 유대 나라의 변두리 지역 갈릴리의 지방이었다. 예수님은 병자들과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 가운데 계셨고 저들의 친구가 되시고 저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저들의 질고를 담당하셨다.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날 목회자들은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날 기독교인인 나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이 세상에서 교회가 설 곳은 부하고 높은 권력과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빈(貧)하고 누추하고 고난의 자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다.    

5. 한국교회는 고난주간을 계기로 그리스도께서 위탁하신 세상의 고통 동참을 결단해야 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와 무관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고통과 질고 가운데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며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그분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고난 현장에 함께 계신다. 주님은 세상의 종교 권력자들이나 정치 권력자들이 모이는 가운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들과 소외자들 가운데 계신다. 예수님은 호화로운 교회당이나 권력자의 저택이나 재벌의 호화로운 자리에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소자들 가운데 계신다. 오늘날 북한 동포와 탈북자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사회적으로 탄압받고 있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 가운데 계신다. 주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의를 추구하는 자들 가운데 계신다. 사순절 기간 한국교회는 아직도 기본권의 박해 속에 있는 북한 동포를 위하여 기도해야하고,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탈북자들과 난민들의 정착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들의 안식처가 되었는지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복음적인, 선교적인 삶을 사는 방식은 닫힌 공동체에서 열린 공동체로 가는 것이며,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일하는 것이다. 주님은 늘 주변부에서 시작했고 주변부에 거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지상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위탁하신 고난의 짐을 날마다 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가 은혜에 감격해서 해야하는 성도들의 소명이다. 사순절 정정인 고난주간 묵상을 통하여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이 아니라 십자가의 하나님을 명상하면서 영광의 신앙이 아니라 십자가의 신앙을 다시한번 확인해야 하겠다.

2019년 4월 13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