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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낙태 허용 판결 이끈 그녀, 회심 후 낙태 반대 위해 싸워

기독일보 강혜진 기자

입력 Apr 09, 2019 05:0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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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낙태 합법화 판결 '로 대 웨이드'를 돌아보다

지난 1월 18일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생명의 행진’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March for Life

지난 1월 18일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생명의 행진’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March for Life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소송'의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앞서 낙태를 허용했던 미국은 어땠을까?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허용 판결, 이른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을 돌아봤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여성이 임신 후 6개월까지 낙태를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그 때까지 대부분의 주는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닌 한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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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텍사스 주 댈러스의 노마 맥코비(Norma McCorbey)라는 여성은 자신이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며 낙태수술을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은 임산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또한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그녀는 1970년 새라 웨딩턴, 린다 커피라는 두 여성 변호사를 통해 텍사스 주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맥코비였으나 신변보호를 위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피고인은 댈러스카운티 지방 검사인 헨리 웨이드(Henry Wade)였다. 이 때문에 이 소송에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3년 1월 22일 연방대법원은 마침내 대법관 7대 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 즉 임신 6개월 이상이 되기 전까지는 임신한 여성이 어떤 이유로든 임신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임신 단계를 초기(1~12주), 중기(13~24주), 24주 이후로 구분한 뒤, 감격 능력이 결여된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낙태 반대 피켓
▲한 소녀가 자기도 낙태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로' 노마 맥코비의 회심 사건

그런데 미국의 낙태 합법화 판결을 이끌었던 노마 맥코비가 회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성폭행으로 임신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16살에 결혼해 낳은 아이가 있었고, 아이는 어머니에게 맡긴 채 곧바로 이혼한 후 다른 남자와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보냈다.

그런데 22살 때 세 번째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세 번째 아이를 낳아서 입양시키느니 낙태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클리닉을 찾아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마침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단소송을 준비하던 텍사스 변호사들이 있었다. 그렇게 '로 대 웨이드' 사건은 시작된 것이다.

맥코비는 1995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I am Roe' 라는 자서전을 출판했고, 텍사스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낙태반대단체의 대표인 플립 벤햄 목사를 만났다. 벤햄 목사는 "노마 맥코비, 당신이 한 일로 인해 2,700만 명이 넘는 어린 아이들이 실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외쳤다.

그녀는 벤햄 목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낙태반대단체의 최연소 회원인 애밀리 맥키(당시 7세)와 첼시 맥키(당시 3세)의 도움으로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회심을 통해 그녀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태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낙태 합법화'가 얼마나 큰 악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자신이 몸을 담고 있던 프로초이스(Pro choice, 낙태 찬성) 단체에서 몸이 잘려진 채로 죽어 나가던 태아들을 떠올리며 뉘우쳤다고 한다. 

새로운 경험을 한 그녀는 즉시 참회하는 마음으로 낙태반대 운동에 뛰어들었고, 죽은 태아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낙태를 반대하는 시위자가 되었다. 이후 눈을 감을 때까지 낙태를 반대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낙태 반대 

현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적 성향의 브렛 캐버노 판사를 대법관에 지명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달 26일 "미국이 낙태를 지지하거나 제공하는 외국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폐지했던 이 규정을 지난 2017년 부활시킨 바 있다.

'세계 금지 명령'으로 불리는 이 규정은 해외에서 낙태 시술을 하거나 낙태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에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낙태 반대론자들은 매년 '로 대 웨이드' 판결 기념일을 전후에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이라는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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