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격할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일단 참아내자
나를 불편하게 하던 것들이
실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김형태 박사
김형태 박사

어린 손자가 무엇 때문인지 화가 크게 나서 할아버지 등을 많이 때렸다. 한참 후에 할아버지가 손자 보고 "네가 이 할아버지를 때렸느냐?"고 물으니, 손자가 화도 나고 죄송하기도 해서 "때렸다"고 대답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대답했다. "나는 안 맞았다. (너는 나를 때렸는지 몰라도)" 이때 누구 말이 맞는가? 때렸다는 손자와 맞지 않았다는 할아버지, 둘 다 맞다.

가해자 쪽에선 분명 어떤 행위를 한 것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맞은편 할아버지는 맞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 또한 사실이다. 각자의 주관적 해석으로만 가능한 일 아닌가?

불교에서 가르치는 선지식 법문 중에 "화가 날 때는 침묵을 지켜라"는 글이 있다. 살다 보면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프고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것은 즐거움과 기쁨엔 깊이가 없지만 고통에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그 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지만, 고통은 우리의 마음 깊숙이 상처로 남기고 그로 인해 배우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몹시 화가 나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용서되지 않던 것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도 사그라지고, 내가 그때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자신도 모를 때가 가끔 있다.

감정이 격할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일단 참아내자. 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자.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면 실수하거나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불길이 너무 강하면 정작 익어야 할 고구마는 익지 않고 그 고구마마저 태워버려 먹을 수 없는 것처럼, 화는 우리를 삼킬 수 있다. 밝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 그것은 나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는 속히 하라는 교훈처럼, 화가 날 때 우리의 생각과 말을 성능 좋은 브레이크처럼 꼭 밟기 바란다. 그리고 서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면 무리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 즉 100번 참는 집에는 항상 큰 평화가 깃든다는 말을 명심해야 하겠다. 우리는 어릴 때 몇 안 되는 속담 중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란 말을 외우며 자랐다.

물론 그때는 참아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배가 고파도, 몸이 추워도, 타고 다닐 자동차나 자전거가 없어도, 입을 옷이 없어도 오직 참고 견딜 수밖에 없던 때였다.

지금은 안 참아도 되지만, 역시 참는 것을 익히고 실천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다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고, 자유가 아니라 구속이요, 방종이 되기 때문이다.

심갑섭이 지은 '삶의 역설'을 읽어보자. "줄을 끊으면 연(鳶)이 더 높이 날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냥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철조망을 없애면 가축들이 더 자유롭게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나운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 관심을 없애면 다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다툼이 없는 남남이 되고 말았다

간섭을 없애면 편하게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외로움이 뒤쫓아왔다/ 바라는 게 없으면 자족(自足)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삶에 활력을 주는 열정(passion)도 사라지고 말았다/ 불행을 없애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말았다"

미국 척 스윈돌 목사의 말 중에 "내 인생의 10%는 나에게 발생한 일들이고, 내 인생의 90%는 그 발생한 일에 대해 내가 반응한 행동들이었다"는 말이 있다.

'편안'을 추구하면 권태가 들어오고, '편리'를 추구하면 나태가 들어온다. 나를 불편하게 하던 것들이 실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얼마나 보람 있게 살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주어지는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나의 자세는 선택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자동차를 내가 스스로 운전해야 한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