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수전절'은 이방신 숭배로 더럽혀진 예루살렘성전을 정화시켜 봉헌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그래서 이 절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봉헌'을 의미하는 '하누카'이다. 수전절이 우리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직접 올라가 지키신 절기이기 때문이다(요 10:22). 수전절은 유대력으로 '키스레브' 월 25일에 시작하여 8일 동안 지켜지는데, 이때는 12월경으로 비가 내리는 겨울철이다. 이스라엘에서 우기인 겨울철은 통행하기가 매우 불편한 계절이다. 더구나 수전절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 순례 절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수전절을 지키셨다. 그렇게 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시킨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주전 334년부터 시작된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정복으로 이스라엘은 그리스제국의 통치 아래에 놓였다. 헬라문화와 종교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셀루커스왕조의 제8대 왕 안티오커스 4세는 주전 168년 예루살렘성전에 제우스신상을 세우면서 제물로 돼지고기를 바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격분한 모디인 지역의 제사장 마타티아스는 다섯 아들과 함께 헬라제국을 향한 저항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저항운동은 마타티아스의 아들이었던 유다 마카비가 주도하였다. 이 저항운동을 '마카비전쟁'이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카비저항군은 주전 164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방신 숭배로 더렵혀진 성전을 정화시켜 봉헌하였다. 수전절 기간이 8일인 이유는 저항기간 동안 유보되었던 초막절을 겸하여 지켰기 때문이다(마카비 상 4:56-59).

예수께서도 두 차례나 예루살렘성전을 정화시키신 적이 있으셨다(요 2:13-22; 마 21:12-13). 예수께서는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면서 성전을 장사하는 집 곧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제2의 수전절 사건을 일으키신 분이시다. 그것이 통행이 불편한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수전절을 지키신 이유이다.

둘째로, 수전절은 '빛의 축제'이기 때문이었다. 37년에서 100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에서 수전절을 '빛의 축제'라고 명시하였다. 이는 마카비시대부터 수전절이 8일 동안 매일 하나씩 추가하여 8개의 등잔에 불을 밝히는 절기였음을 의미한다.

수전절에 사용하는 촛대인 '하느키야'는 9개의 등(기본 등+8개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기본 등은 '샤마쉬'라고 부르는데, '봉사자' '시중드는 자'라는 뜻으로 다른 8개의 등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빛의 축제로서의 수전절과 관련된 탈무드 내용이 있다. 마카비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을 회복하였을 때, 이방신으로 더렵혀진 성전 안에는 7곱 촛대(메노라)를 밝힐 정결한 기름이 하루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기름이 8일 동안 꺼지질 않고 계속 유지가 되었고, 그 사이에 정결한 기름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같은 '기름의 기적'이 수전절을 더욱 즐거운 빛의 축제로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빛으로 오신 분이시다(요 8:12; 9:5). 그분은 또한 우리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마 5:14). 우리들은 하나님의 제사장나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을 붙여주는 수전절의 '샤마쉬'가 되어야 한다(출 19:6; 사 61:6; 벧전 2:9).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빛의 축제인 수전절을 지키심으로 자신의 빛 되심과 우리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함을 행동으로 직접 강조하신 것이다.

셋째로, 수전절을 통해 감람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치신 '세 때' 곧 '징벌의 날'과 '이방인의 때'와 '재림의 날'을 강조하셨다. 마카비군대의 예루살렘 점령과 성전회복으로 100여 년간 지속된 하스모니아 왕조가 세워졌다. 이를 통해 수전절은 유대인들의 개척과 독립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세푸스는 70년 예루살렘 멸망으로 끝난 유대인전쟁의 배경에 수전절 속에 담긴 마카비의 저항정신이 있음을 증언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징벌의 날'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수전절에 참석하신 것은 곧 다가올 멸망의 그 날을 슬픈 마음으로 예시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감람산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면서 장차 닥칠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늑 19: 41). 그 자리에는 '눈물교회'라는 이름의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마카비정신은 19세기 말 헤르츨에 의해 시작된 시온주의운동에서 다시 부각되었다. 5차례에 걸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은 맨 손으로 불모의 땅을 가꾸는 불굴의 개척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용기를 안겨준 것 역시 수전절 속에 담긴 마카비 개척정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에 대한 증거가 유대인올림픽으로 알려진 '마카비아'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제올림픽과 월드컵과 함께 삼대 국제스포츠대회인 '마카비아'가 처음 제안된 것은 1929년이었다.

3년 뒤인 1932년 첫 대회가 텔아비브에서 개최되어 오늘날까지 매 4년마다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년에 개최된 제20회 '마카비아'는 85개국으로부터 45개 종목의 10,000여명 선수가 참가하였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 독립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마카비아'는 새로운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마카비아'라는 명칭 자체가 수전절 속에 담긴 독립정신을 보여준다.

1948년 5월 14일에 이루어진 이스라엘독립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수전절 참석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방인의 때'가 끝날 것임을 미리 알려주신 예언적 행동이시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