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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목사의 한국교회사] 한국 교회와 3·1 독립운동 (IV)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Feb 28, 2019 12:57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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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그리하여 마침내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이 참석하여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자기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명월관 주인을 시켜 종로 경찰서에 연락함으로써 모두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길선주 목사는 당일 황해도 장연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던 중, 거사가 단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상경하여 대표들이 종로경찰서에 구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그곳으로 가서 함께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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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파고다에서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민족 대표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들이 나타나지 않자, 경신학교 졸업생이며, 해주(海州) 교회학교 교사였던 정재용(鄭在鎔)이 연단 위에 올라가 그가 가지고 있던 독립선언서를 읽어 내려갔다. 읽기를 끝내고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고 군중들도 따라서 10년간 외쳐 보지 못했던 ‘대한독립만세’를 목청이 터져라고 부르짖었다. 그러고 나서 군중들은 서서히 종로 거리로 나가면서 평화적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 때 운동의 지도자들은 군중들에게는 아래와 같이 철저한 비폭력을 호소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든지, 일본인들을 모욕하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고, 주먹으로 치지 말라. 이런 짓들은 야만인들의 짓이다. 누구든지 그런 행동을 하는 자는 독립운동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이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외 없이 이 점을 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시위 대열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망라하여 참여했고, 신앙과 종파의 차이 없이 모두가 이에 참여한, 문자 그대로 거족적인 시위요, 민족의 함성이었다. 이날 4∼5십만의 대중이 온 종일 시위를 벌였으나 단 한 건의 폭력 시위도 없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독립선언식은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등지에서도 동시에 행해졌다. 평양에서는 장로교 총회장이었던 김선두(金善斗) 목사를 필두로 강규찬(姜奎燦), 이일영(李一永) 등이 중심이 되어, 평양의 6개 교회가 연합하였고, 고종(高宗)황제의 인산(因山)을 기해 약 3천 명의 교인들이 숭덕학교에 모여 황제의 추모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김선두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대로 조용히 남아 있으라고 요청한 후에 독립선언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읽기를 마친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평화적인 시위를 시작하였다.

당시에 평양 장로회신학교 교장이었던 마펫 선교사는 “……이 닷새 동안 (3월 1∼5일)에 내가 만난 모든 한국인들과 내가 관찰한 시내 안팎의 가운데서 나는 어떤 한국 사람도 폭력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고 기록하였다. 총회장 김선두 목사는 이 일로 체포되었고 그해 가을에 모인 장로교 총회에 참석지 못하자 부회장인 마펫 목사가 사회를 대신 맡았다.

진남포에서는 감리교 학생 120여 명이 예배당에 모여 시위를 주도했다. 선천에서는 신성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선천역 앞 오리정 광장에 모여 김지웅(金志雄)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그곳 경찰서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그 시위대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게 되자, 일경은 위협을 느껴 시위대에게 발포하였고, 이때 십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함경북도 성진(城津)에서도 그곳 기독교계 학교인 보신(普信)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를 벌여 일본인들의 거주지로 행진하였고, 경북 대구에서는 이만집(李萬集) 목사 주도로 계성(啓聖)학교와 신명(信明)학교 학생들이, 부산에서는 일신(日信)여학교 학생 주도로, 전주에서는 신흥(新興) 학교 학생 주도로, 광주에서는 숭일, 수피아,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시위가 일어났다.

대개 기독교 학교가 있는 곳에서는 그들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이렇게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시위대에 대해 총칼과 곤봉을 마구 휘두르며 폭압적 진압을 하자, 군중들도 자기 방어적 위치에서 이들에게 폭력으로 대처하기 시작하였다. 지방에 따라서는 시위 진압군과 경찰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을 비롯하여, 헌병대, 경찰서, 각급 관공서들을 습격하고 파괴하는 사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당시에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단체는 종교 단체밖에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종교 단체들, 즉 기독교, 천도교, 그리고 불교가 연합 또는 단독으로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한 곳이 많았다. 3월 1일에 시작된 시위는 그 후 약 6개월 동안 진행되어 수 백 만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그 형태도 다양하여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억눌려 있던 민중들의 울분과 신앙에 입각한 기독교인들의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과 맞물려 이 시위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었다. 이렇게 계속된 시위는 필연적으로 많은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교회의 피해

3.1 운동
출처: 朴殷植, 「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 수록되어 있는 것임. 李鉉淙, 編, 「韓國獨立運動史」, II卷, 215쪽.

약 6개월 동안 진행된 전국 시위운동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고, 독립선언서를 운반하며, 태극기를 제작, 살포하는 임무를 담당하였으므로 그 어떤 단체나 종교보다도 피해가 극심했으리라는 점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다음의 도표에서 각 종단별 체포자 수를 비교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당시에 조선에는 일제의 1개 사단 병력과 2만 명 이상의 헌병, 그리고 무수한 헌병 보조원들과 경찰이 있었으므로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보복은 혹독하였다. 당시에 평양에 주재했던 한 선교사 부인이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수많은 일제의 관리들이 교회당에 와서 종탑을 파괴하였고, 교회당 안의 모든 유리창을 박살냈고, 모든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교회학교의 명부와 교회의 서류들을 파괴하였으며, 교회 직원들을 체포하고 옷을 벗긴 후 교회당 뜰에서 구타하였다.

이 사건의 모의, 주도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일제는 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하였고, 검거된 인사들에게 모진 고문을 감행했다. 한 여신도가 직접 당한 고문의 증언이 남아있다.

……나는 평양에서 3월 2일 체포되어 경찰에 구금되었다. 그 감옥에는 여자들도 여럿 있었고 남자들도 많이 있었다. 경관들은 우리가 기독교인인가를 자세히 물어 보았으나……거기에는 열두 명의 감리교 여자들과 두 명의 장로교 여자 및 한 명의 천도교 여자가 있었다. 감리교 여자 중 세 사람은 전도부인이었다. 그런데 경관들은 채찍으로 우리 여자들을 내려치면서 옷을 다 벗기고, 벌거숭이로 여러 남자들 앞에 세워 놓았다. 경관들은 나에게 대해서는 길거리에서 만세를 불렀다는 죄목밖에 찾지 못했다. 그들은 내 몸을 돌려 가면서 마구 구타해서 전신에 땀이 흠뻑 젖었다.……내 양 손은 뒤로 잡혀져서 꽁꽁 묶였다. 그리고는 내 알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땀이 흐르면 찬물을 끼얹곤 했다. 춥다고 말하면, 그 때는 담뱃불로 내 살을 지졌다. … 어떤 여자는 정신을 잃도록 심한 매를 맞았다.……또 한 전도부인은 두 손을 다 묶였을 뿐만 아니라 두 발을 꽁꽁 묶인 채 기둥에 매달려 있게 했다. 우리들은 성경책을 다 빼앗기고, 기도는 고사하고 서로 말도 못하게 했다. 사람으로는 견딜 수 없는 무서운 욕과 조롱을 우리는 다 받았다.

제암리 교회
(Photo : 국가보훈처) 제암리 교회. 1919년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같은 해 4월 15일 일본이 수원 화성시 제암리에 사는 민간인 20명을 교회에 가두고 예배당과 민가에 불을 질러 23인이 잔인하게 목숨을 잃었다.

개인과 교회가 당한 수난을 어찌 글로 다 적을 수 있을 것인가? 교회가 당한 대표적 사건 몇 가지만 적어 보면, 평남 강서 학살사건, 정주 학살 방화사건, 서울 십자가 학살사건, 의주 예배당 방화사건, 천안 병천 학살사건 등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수원 제암리(堤岩里) 감리교회에서의 학살사건이다.

각지에서 만세 시위가 계속되던 4월 15일 오후 2시경에 일본군 중위 유전준부(有田俊父)의 인솔로 일단의 군인과 경찰들이 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교인들을 모두 모아 손을 꽁꽁 묶어 예배당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예배당에 불을 질렀다. 불 속에서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사람들을 부녀자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총격을 가하여 사살하였다.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벌건 대낮에 자행되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1919년 3월부터 5월 30일까지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된 자 46,948명, 교회 파손 47개 소, 학교 파손 2개 소, 민가 파손 715채였으며, 1년 뒤인 1920년 3월 1일까지 사망자 7,645명, 부상자 45,562명, 체포자 49,818명, 가옥 소각 724채, 교회 소각 59개 소, 학교 소각 3개 교 등이었다.

일제는 길거리에서도 지나는 행인들에게 기독교인인가를 묻고 확인되면 체포하고 비기독교인이면 놓아 주는 등 집중적으로 기독교인들만을 체포하였다. 특히 장로교회의 피해가 컸는데, 총회에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누락된 것을 감안하지 않고도, 체포 3,804명, 체포된 목사, 장로 134명, 지도자 202명, 체포된 남자 신도 2,125명, 여자 신도 531명, 매 맞고 방면된 자 2,162명, 사살된 자 41명, 매 맞고 죽은 자 6명, 파괴된 예배당 12동 등이었다. 평양 장로회신학교도 독립운동의 여파로 개교하지 못했다. 당시에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 2,000만의 1% 정도밖에 안 된 상태에서 기독교인 체포자 수가 17.6%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우리 교회가 당한 수난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참고: 평남 강서군 사천장터 학살 사건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헌병대는 시위 군중에 대한 무차별 총격으로 73명을 학살했다. (출처:위키피디아 3.1 운동)

정주 학살 사건: 일본군은 3월 31일의 만세운동과 민족대표로 서울로 올라간 오산학교 설립자 이승훈(李昇薰)에 대한 보복으로, 4월 2일 밤 천도교 정주교구· 오산학교와 기숙사·용동교회 등을 모두 불태우는 한편, 4월 10일에는 읍내 기독교회당에도 방화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906)

서울 십자가 사건: 3월 19일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기독교계 여학교 학생 31명을 체포, 십자가에 묶어 세우고는 태(笞) 90도(度)씩을 과하였다. (출처: 한국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4029)

천안 병천 학살사건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 천안 병천 시장에 있던 3,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일본 경찰과 헌병은 총검을 이용하여 강력한 진압을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성공회 병천교회에서 운영하던 진명학교[14] 교사 김구응이 지역 유지들과 젊은 청년,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출처:위키피디아 3.1 운동)

의주 학살 사건 1919년 3월 29일 일본 군인은 의주군 고령삭면 (古寧朔面) 영산 시장 (永山市場) 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군중을 습격, 그 중 6명을 학살하였다. (출처:위키피디아 의주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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