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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칼럼]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 독일에게서 배운다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Feb 08, 2019 12:11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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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교수
(Photo : 엘정책연구원) 이정훈 교수(울산대 법학과, 엘정책연구원 원장

“핵에 반대한다 - 원전을 폐쇄하라”, “녹색의 환경을 보호하라 - 대규모 토목사업에 무조건 반대한다”, “적의 전술 핵미사일에 대항하여 군비증강이나 국가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군축이나 전력 감축을 통해 평화를 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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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러한 선동정치의 구호들은 2018년 한국만의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 혼란한 서독에서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자칭 양심세력, 즉 “뉴-레프트” 운동을 이끌었던 세력의 구호이기도 했다. 당시 서독 좌파의 녹색운동은 시민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이들은 늘 동독과 소련을 찬탄하고 서독의 보수 세력과 미국을 비판했다. 동독이 붕괴된 후 낙후된 공산사회가 석탄보다 환경오염에 더 큰 타격을 주는 갈탄을 사용해서 서독에 비해 동독지역의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진실이 드러났다. 동독의 공장들은 기계들이 구식인데다 생산을 우선시해서 환경 보호에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소위 녹색운동은 환경오염의 피해가 가장 적었던 원자력발전을 극단적으로 반대하면서도 오염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제시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주장이 현실이 되려면 산업사회 독일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농경사회였던 목가적 독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들은 1983년 비폭력, 환경보존, 일방적 군축, 사회개혁의 4대 정책기조를 발표하고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2018년 한국의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 열성 지지자들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독일 정치사의 한 장면이다. 독일과 한국을 독자들이 착각할 정도로 선동정치의 양상은 유사하다. 이들은 평화를 외치면서도 미국과 서독의 보수파를 공격하기 위한 폭력행사나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시했다. “내로남불”은 한국의 좌파 선동정치에만 적용되는 특수사례가 아니다. 또한 서독에서도 좌파들은 “법치주의”를 완고한 도덕주의로 비난하면서 개혁의 대상이라고 외쳤다.

1980년에서 1983년 선동된 서독 국민들은 “평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의 전술핵 배치에 대항한 NATO의 군사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평화를 외치면서도 1983년 소련이 비무장 민항기인 한국의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시켰을 때 오히려 소련을 옹호하기도 했다. 선동가들은 실제와는 관련 없는 거짓뉴스와 단편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동독과 소련이 아닌 미국과 레이건 대통령을 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1968년에서 1970년 사이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적군파”라는 테러리스트들이 길러졌고, 이들은 베를린의 고등법원장 귄터 폰 드렝크만을 살해했다. 보수정치인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의 독일을 생각하면서, “독일에서 설마?”라고 독자들은 의아해 하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그렇다면 레이건과 강한 동맹으로 소련과 공산주의 동독의 붕괴를 이끌어 내고 통일을 실현한 독일의 정치적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이는 바로 베버가 말한 윤리, 즉 “책임의 윤리”를 신봉하는 법치와 질서를 강조하는 세력, 즉 국가적 위기의 순간마다 선동에 흔들리거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도덕적 보수주의 세력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일의 좌파들이 모두 저급했던 것은 아니다. 헬무트 콜의 보수집권 직전 통일의 기반을 다진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건전한 좌파의 귀감이다. 소련이 전술핵으로 유럽의 안보를 위협할 때 그는 미국에게 전술핵미사일 배치를 요청하는 중대한 결정으로 독일의 안보를 지켰다.

소련이 동독과 동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일방적으로 전개했을 때 슈미트 총리는 좌파들의 선동으로 “거짓 평화”에 속고 있었던 국민들의 포퓰리즘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는 전술핵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하고 미국을 설득했다. 서독과 서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은 그의 노력과 설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의 정치의식을 알 수 있는 발언들을 보면 매우 감동적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타고남은 재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횃불을 밝혀두고 있는 것이다. 그 횃불은 인간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그 횃불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라고 하는 우리 기본법상의 지고한 가치기준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 1978년-

자유, 정의 및 인간의 존엄성 등은 독일-미국간의 우의와 연대의 근간을 이루는 공통의 가치요 원칙이다. 우리들의 맹방이기 때문에 같은 이념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가 같은 이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맹방이요, 같은 도덕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맹방인 것이다. - 1980년-

사실 오늘날 독일의 통일과 번영을 일군 일등 공신은 역사 속에서 전승된 “책임윤리”라고 할 수 있다. 책임윤리에 기초한 정치란 소명으로써의 정치를 의미하며 이러한 책임윤리는 종교개혁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헬무트 슈미트와 같은 합리적인 좌파 지도자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도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확고한 인권의식,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타협 없는 자유수호의 의지가 독일 정치사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슈미트와 같은 건전한 ‘진보’ 지도자는 도덕적 가치에 기반 한 책임 윤리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보수적 전통”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보수적 가치는 도덕적 가치를 의미하고 책임 있게 이 가치를 실현하려는 역사적 윤리의식이 보수주의의 정신적 근간이다. 이러한 정치사적 전통 속에서 다소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같은 기본가치를 존중하는 건전한 ‘진보’ 세력의 등장도 가능해 진다.

한 세력의 독점적 지위가 아니라 기본 가치에 동의하지만 구체적 실현 방안에서 의견 차이를 보이는 보수와 진보의 견제와 균형은 선진적인 “법치주의” 안에서만 가능하다. 법의 역사를 통해 천박한 중우정치와 포퓰리즘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선언했던 독일정치의 번영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한국도 법치주의의 기초 안에서 도덕적 가치를 우선하는 진정한 보수주의가 성장해야 한다. 천박한 “기회주의”나 “물질만능주의”는 보수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책임윤리에 기반한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제일 가치로 삼는 진정한 보수 세력의 등장은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에 눈감으면서도 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선동정치를 “진보”라고 부르는 한국의 저급한 정치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선동을 일삼는 무책임한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안보를 위해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진보”세력의 출현도 도덕적 보수의 등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독일의 정치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진실이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포퓰리즘으로 경제와 안보의 경고음 속에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은 현재의 한국이 패망의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세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향유가 마지막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임윤리에 기초한 성숙한 보수주의는 지금 이 순간 시작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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