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는 올해 만 95세로, 예전만큼 활발히 활동하진 못하지만, 약 2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증언할 때는 더없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김신의 기자
(Photo : 김신의 기자 )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는 올해 만 95세로, 예전만큼 활발히 활동하진 못하지만, 약 2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증언할 때는 더없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김신의 기자

1924년 평양에서 태어나 1948년 월남한 주선애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95).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기독교교육학 교수가 됐다. 장신대에서 만 2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 1989년 은퇴했다. 그 뒤부터는 생애 거의 대부분을 탈북민들을 돕는 데 바치고 있다. 그녀가 '탈북민 대모'로 불리는 이유다.

"저도 북한에서 온 사람이니까요. 70년을 여기(대한민국)서 살며 피난민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 은혜로 이 만큼 살았으니 탈북민들을 도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북한에서 못 나왔으면 나도 저들과 같았을 텐데, 어찌 저만 평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 박해 피해 월남"
"봉수·칠골교회? 진짜 아냐"

-월남은 왜 하셨나요?

"(북한이) 교회를 못 다니게 하니까요. 교회 나가면 반동이라고 하고, 아오지 탄광에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주일에 교회 갔다가 다음 날 학교 가면 매를 맞고 그랬어요. '여기 계속 있다가는 순교를 하든지, 탄광에 붙잡혀 가든지 둘 중 하나니까, 차라리 남쪽으로 가서 자유롭게 하나님 믿자'고 했던 겁니다. 그 때 집집마다 걸려 있던 게 '당이 명하면 충성뿐이다' 이런 식의 글이었어요. 미국 사람 짓밟는 그림도 있고. 그런 걸 보는 게 마음 아팠어요."

-그 때부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았군요.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 박해하는 건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1945년 해방되고 나서 북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남쪽으로 넘어 왔지요. 저는 좀 늦게 온 편이라 중간에 붙잡히기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12일 걸려서 서울에 도착했어요."

-지금도 탈북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나요?

"더러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북한 주민들은 아예 교회를 잘 모릅니다. 제가 월남할 때만 해도 평양에 교회들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북한 정권은 북한 내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드는데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는) 진짜가 아닙니다. 2001년에 봉수교회에 갔던 적이 있는데, 목사도 있어서 정치 강연 비슷하게 하더군요. 사람들 오면 그저 구경시키고 연보나 받으려고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황장엽 선생도 그랬어요. 다 거짓말이라고."

"故 황장엽 선생 '기독교만이 통일을...'"
"기독교와 주체사상은 공존 불가능"

-故 황장엽 북한 전 노동당 비서와도 생전 친분이 있으셨죠?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딱히 예수를 믿어보라고 했던 적은 없었어요. 다만 성경도 드리고 제가 아는 여러 목사님들도 만나게 하니까, 스스로 신앙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저를 만나면 늘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하용조 목사님 문병을 갔을 땐 스스로 기도도 하셨는데, 참 잘 하셨어요. 끝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시며."

-황 전 비서는 북한에 있을 때 주체사상을 완성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전 주체사상과 관련해 그와 대화를 나누신 적이 있나요?

"그 분이 '통일은 기독교 아니면 안 되겠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기독교만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주체사상으로 해봤자 자꾸 혁명만 하고 사람 죽이는 것만 하니까 안 된다고. 기독교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한 때는 기독교와 주체사상을 서로 맞춰보려고도 하셨다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 그런 말도 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주체사상은 완전히 인(人)본주의고 기독교는 신(神)본주의니까."

-일각에서는 기독교와 주체사상이 공존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열린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예수와 십자가 다 소용없고 '내가 주체다'라는 게 주체사상인데 공존이 되겠습니까?"

-북한 주민들에게 주체사상은 어떤 의미입니까?

"주체사상이 아닌 건 아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머릿속에 주체사상이 꽉 박혀 있어요. 눈 감고 그냥 주체사상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건,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면 또 잘 믿는다는 거예요. 김일성 자리에 예수만 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김일성을 하나님 같이 믿는다는 얘기군요.

"2001년에 북한에 갔을 때 '수령님은 살아 있다'고 크게 쓰여 있는 걸 보았어요."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Photo : 김신의 기자) 주 교수는 북한 인권을 이야기 하지 않고 통일부터 말해선 안 된다"며 "요즘같이 추울 때 따뜻한 방에 누우면,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 사람들이 먼저 생각난다"고 했다.

"북한 인권 참혹... 아기 태반 먹고 살아난 이도"

-탈북민들을 여럿 만나셨으니, 북한 인권의 실상도 많이 아실 것 같습니다.

"참혹합니다. 신발은 김일성 살아 있을 때나 신어보고 그 뒤론 없어서, 겨울에 눈이 오면 비닐로 발을 싸매고 다녔다고 해요. 이불도 김일성 때 받은 것 하나로 수십 년 째 온 식구가 덮었고. 난방이 있나 뭐가 있나. 추우면 쌀겨 더미에 기어 들어가 목만 내놓고 있었다는데. 얼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이토록 춥고 배고프니 도둑질을 해도 그게 잘못인 줄 몰라요. 아침에 일어나면 먹을 게 없으니까, 부모가 자식한테 훔치든 뭐든 해서 먹을 것 좀 구해오라고 시킨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생쌀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논 주변에 가는데, 그걸 아는 당국이 군인들을 보내서 쌀을 지키게 한대요. 잡히면 매를 맞는다고.

한 번은 장신대 교수로 있을 때 한 탈북민이 학교로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비롯한 교수들이 죽 앉아 있는데도 묻지도 않고 냉장고를 열어서 먹을 것을 가지고 갔어요. 그래도 죄책감을 못 느낍니다. 공산주의 식으로 똑같이 나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또 한 분은 남편과 탈북을 하려다 잡혀서 수용소에 갇혔었답니다. 그 뒤 남편과 갈라졌는데, 그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대요. 그 자신도 수용소에서 주는 강냉이 몇 알을 먹고 근근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용소에서 나왔고 거의 죽기 직전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아기 태반을 구해와 그걸 먹고 겨우 살아났다고 해요.

우리가 이런 걸 알아야 합니다. 북한 인권을 이야기 하지 않고 통일부터 말해선 안 되는 거예요. 요즘같이 추울 때 따뜻한 방에 누우면,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 사람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김정은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몇 명을 빼고는 다 새우잠을 자겠지요."

"정치만으론 북한 변화 못 시켜"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 일어나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3~4만 명의 기독교인들도 잡혀 있다고 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어느 분은 성경책이 발각되어 수용소에 잡혀 들어갔다가 며칠 뒤에 풀려났는데,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선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에서 혁명이란, 사람을 죽이더라도 해야 할 과업인 까닭이죠.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이 세계복음화이듯, 북한도 전 세계를 공산화 하고 사회주의화 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주선애 교수
과거 북한동포들과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했던 주선애 교수.

-그런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도록 한국교회가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통일을 이루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정치적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론 저들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니 오히려 더 악랄해지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합니다. 비단 북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갈수록 악해지고 있어요. 이런 시대일수록 기독교인들이 초대교회처럼 더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살려고만 해선 안 됩니다."

 "북한교회 살리려던 김정욱 선교사, 결국 붙잡혀"

-그런 결단으로 북한 선교에 매진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제가 아는 분 중에 김정욱 선교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중국 국경에서 그곳으로 나오는 북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셨어요. 그렇게 보름 정도 가르치면 마음이 갈급한 북한 주민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다시 북한에 들어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할 수 없으니까 국수라도 삶아주면서 집으로 초대를 한대요. 그럼 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그걸 안 김 선교사님이 도움을 주려고 했었습니다. 돈을 모아서 북한에 들어가 국수공장에 국수 말리는 기계를 사주려 한다는 거예요. '북한교회가 살아야 통일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그 소릴 듣고 '북한 가면 붙잡힐 수도 있는데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목숨을 걸었는데 뭐가 무섭습니까?' 하더군요. 결국 어렵게 모금을 해서 평양에 가셨지만, 곧바로 붙잡혔다고 해요. 북한에 들어가시기 전에 제게 전화를 거신 김 선교사님께 '조심하시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 북한정의연대(대표 정베드로)는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생명과 신병상태가 매우 위태롭다"고 했다. 이 단체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 선교사는 북한의 불법적인 조사와 구금, 강제노동에 의한 고통과 북한의 체제선전 학습 거부로 중한 고문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현재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

김 선교사는 지난 2013년 10월 북한의 유인으로 추정되는 기획입북으로 북한에서 체포된 뒤 국가정보원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북한 형법의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등을 적용받아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억류되어 있다.

-끝으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가 제일 걱정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그들이 어떤지 알아야 복음도 전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우선 한국교회라도 탈북민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자유 할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합니다."

주선애 교수는

평양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뒤 영남대에서 영문학을, 미국 뉴욕의 비블리컬신학교에서 교육학을 각각 전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기독교교육 학자로 숭실대와 장신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퇴임 후 경기도 포천의 은성수도원을 인수해 장신대에 경건훈련원으로 기증했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 길동의 자택도 그가 세상을 떠나면, 장신대로 기증된다고 한다. 탈북인종합회관을 약 5년 간 이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