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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칼럼] 평신도를 위한 창세기 해석(1)

기독일보

입력 Jan 09, 2019 06:51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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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창 1:1 전반 절)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바른 창세기 해석을 위하여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밝히신 창조에 대한 선포의 말씀이다. 그 중에서도 첫 말씀인 1장 1절에는 분명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회 안에는 일치되지 않은 창조 해석들이 난무하였다. 해석자들마다 마치 모두가 창조주, 판단자가 된 듯 상반 된 주장들을 쏟아냈다. 창조론과 창조신앙이 잘못되면 필연적으로 종말론도 틀어지고 신앙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어 버린다. 한국 교회가 본질과 비본질이 뒤섞여 대혼란 속에 있는 것은 결국 해석(신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바른 신학에 기초한 신학의 부재는 바른 믿음의 부재를 가져왔고 자기복음, 자가복음만 난무하게 만들었다. 바른 창세기 해석이 성도들이 바른 믿음의 길에 들어서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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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

생명보다 먼저 온 것이 있었다. 바로 "태초"(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 창조도 있었고 생명도 있고 죽음도 있고 종말도 있다.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간단해 보이는 질문이 막상 답을 제공하려하거나 이해하려하면 그만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시간을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한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주후 354-430)도 "아무도 묻지 않을 때라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누가 시간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면 나는 모른다."고 했다. 시간은 알고 보니 그렇게 단순한 대중성과 일상성을 넘어 대단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단어다. 이 냄새도 없고 무게도 없고 흔적도 없는 시간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설명할까?

성경의 첫마디 "태초에"("Bereshith", 히)

성경의 첫마디는 놀랍게도 "태초"("Bereshith")라는 시간의 언어로 시작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시간의 주관자시며 창조자이심을 나타낸다. 이 단순한 단어를 풀기 위해 다양한 신학자들이나 성서해석자들이 도전한 것은 당연하다. 온갖 문법적 설명을 곁들여 이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도전하였다. 이 단순한 "태초"라는 하나의 단어에 수많은 창세기 주석마다 "태초"보다도 난해한 수백 가지 다양한 해설과 미사여구가 달린 이유다. 하지만 피조물인 인간이 시간의 역사 속에서 이 "초월적 단어"를 단순하고 용이하게(brevitas et facilitas) 해석해 낼 리가 없었다. 모세 오경의 저자 모세가 창조한 단어도 아니요 피조물이 결코 체험해 볼 수 없는 이 "태초"라는 단어를 도대체 누가 감히 그 문법적 토를 과감히 달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성경의 첫 마디부터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든지 아니면 거역하든지 그 기로에 서게 될 뿐이다. 중간은 없다.

시간의 주관자 창조주 하나님

시간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므로 하나님 이외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함부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소위 미래를 예언한다는 유명 점쟁이들은 미래를 얼마나 잘 맞추었을까? 1997년 12월에 있었던 아주 치열했던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선거의 당선자를 예언한(예측이 아닌 점을 친) 15명의 유명 점쟁이 가운데 당선자를 예측한 자는 겨우 두 명 이었다! 일반적 확률이라면 유력 후보 두 사람 중 한 명의 당선자를 맞추는 것이므로 50%가 되어야 했다. 점쟁이들은 보통 사람들의 확률보다도 못한 결과를 낸 것이다.

1970년 대 미국 내셔널 인콰이어러라는 잡지에서 세계적 유명 점쟁이 10명의 예언(1976-79년)을 분석해보았더니 그들의 예언 360개 중 적중한 것은 겨우 4개(확률 1.1%)에 불과했다. 성경은 거짓 예언자들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경고한다(사 47:12-14, 레 19:31, 신 18:9-12절). 피조물인 인간이 미래 시간에 대해 아는 첫 하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간의 종말

또한 시간은 창조된 것이므로 우리 사람의 육체처럼 시간도 길이를 가지며 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계 20:11). 그 마지막에 세상은 땅뿐 아니라 하늘조차 변동될 것이다(히 12:26-27). 그리고 시간의 창조주요 주관자인 주님에게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한 순간) 같을 뿐이다(시 90:4). 이 말을 받아 베드로도 종말을 다룬 베드로후서에서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고 했다. 이 모세의 시편 기도 속 고백은 놀랍게도 천재 과학자 아인시타인을 통해 오늘날 확인이 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태초"가 인간에게 알려주는 것들

"태초"라는 단어는 최소한 시간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 시간의 창조주요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성경은 시간의 시작이 있고 그 시간의 우주적 종말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 되어 있음을 웅변적으로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태초"나 시간을 말할 수는 있으나 자신이 스스로 시간의 주관자나 판단자가 되는 누(累)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에 대해 우리 피조물 인간은 그저 성경이 말하는 그 지점까지 갈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을 초월한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은 시간의 내재 속에서 사는 유한한 존재기 때문이다. 내재의 유한(有限)은 결코 무한(無限)을 담을 수 없다(Finitum est non capax infiniti).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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