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아이돌 엑소(EXO)의 '연기돌' 디오 도경수(로기수), 박혜수(양판래), 오정세(강병삼), 김민호(샤오팡), 자레드 그라임스(잭슨), 로스 케틀(소장) 등이 출연한 영화 <스윙키즈>를 살펴봅니다. 이 영화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등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의 6번째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6·25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결성된 '댄스단' 프로젝트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 문단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그 문단만 건너뛰시면 됩니다. -편집자 주

◈이념과 개인: 명작들의 브리콜라주, <스윙키즈>

처음 <스윙키즈>(Swing Kids)라는 제목을 듣고 떠올린 것은 1993년 개봉된 동명의 미국 영화다. 필자는 이 작품을 꽤 오래전 케이블 TV를 통해 시청하며 알게 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나치가 정권을 잡고 있던 1930년대 후반의 독일로, 자유롭고 신나는 스윙재즈, 그리고 스윙댄스에 심취해 히틀러 소년단(Hitler-Jugend)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참고로 이 영화에는 현재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해 앳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스윙키즈>는 제목만 같을 뿐, 1993년 작품과 완전히 다른 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나 두 작품은 부분적으로 동일한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바로 전체주의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두 영화에서 공통된 바, 스윙뮤직과 댄스는 이념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탈출구 역할을 담당한다.

전체주의 이념로부터의 해방되는 길로 음악과 춤을 선택한 <스윙키즈>의 주제의식은 1993년작 <스윙키즈> 외에도 두 편의 영화를 더 생각나게 한다.

하나는 공산주의 소련의 압제에서 탈출하는 두 댄서와 아내의 이야기를 전하는 <백야>(White Nights, 1985), 다른 하나는 대처리즘 시기 영국에서 광산노동자 계층의 막내아들로 살아가며 빈곤의 압박과 가부장적 마초주의를 벗어나려 춤의 열정에 몸을 던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전하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다.

이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전체주의 이념과 그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자유의 열망 사이 대립은, 2018년작 <스윙키즈>에서 1951년 전쟁 시기 한국 거제도의 전쟁포로 수용소라는 배경에 안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산 전체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한 북한군 청년 로기수(도경수 분)의 일화로 형상화된다.

이 영화의 원작은 2015년 3월 초연된 대학로 창작 뮤지컬 <로기수>다. 이 작품은 당시 한국 뮤지컬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으로,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답지 않게 많은 인원이 동원된데다 음악효과를 MR 재생이 아닌 라이브 밴드의 연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여타 소극장 뮤지컬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전문 댄서들이 아닌 일반 배우들이 높은 수준의 탭댄스와 노래 실력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여러 편의 명작 영화들을 오마주하는 듯한 치밀한 서사로 관람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다.

스윙키즈
▲영화 <스윙키즈>의 원작인 창작 뮤지컬 <로기수>의 한 장면.

(스포일러 문단) 영화 <스윙키즈>의 결말은, 원작인 뮤지컬 <로기수>의 결말과 마찬가지로 남북 이념투쟁에 희생되는 로기진(김동건 분), 로기수 형제의 슬픈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대목은 한국전쟁 중 동생의 무사 생환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비극적인 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의 결말부를 떠오르게 한다.

뮤지컬 <로기수>는 이 다양한 명품 재료들을 훌륭하게 가공해 하나의 완성도 높은 서사로 종합해 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 <스윙키즈>의 서사 역시 그 완성도를 이어받기 위해 힘쓴다.

이처럼 영화 <스윙키즈>는 그 이전 여러 명작들로부터 물려받은 주제의식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작품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1951-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일련의 친공포로 폭동사건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여러 모로 올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기대작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념의 도구: 북한군식 '227호 명령' 

제2차 세계대전 중 단일 전선 전투로는 인류 역사상 최대 사상자(약 5개월 간 교전을 통해 독소 양군 군인 및 민간인 총합 200만명 이상의 사상자 기록)를 기록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임박한 시점에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소련군 내 형벌 부대를 대상으로 명령 제227호를 발표한다. 명령의 내용은 간단했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Ни шагу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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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227호 명령을 기념하는 소련 우표. 상단에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는 러시아어 문구가 보인다.

형벌 부대란 범죄자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들은 군복무와 전투 참여로 형벌을 대신하도록 돼 있었는데, 스탈린 정권 하에서 범죄자로 선고된 이들 가운데는 실제 범죄를 저지른 이들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누명을 쓴 이들이 더 많았다.

공산당에 대해 약간이라도 불만을 표시한 이들, 공산당 당원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행동을 한 이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형벌 부대에 배치되었다. 심한 경우 보드카를 잘못 마셔 소련군답지 않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돼서 형벌 부대에 배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개시 전까지 소련으로 침공해 오는 나치 독일군의 위세는 등등하기 그지 없었다. 만일 스탈린그라드마저 점령되면 모스크바가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스탈린은 명령 227호를 발표했다.

그리고 전선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물러서거나 항복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형벌 부대원들은 전선에서 무조건 즉결 처형하는 극약 처방을 취했다.

명령 227호의 정신은 이후 공산주의 국가 군대들의 기본 지침으로 자리잡았으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역시 이 지침에 따라 자국 군인들의 신상필벌을 결정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군과 유엔군에 포로가 된 북한 군인들 가운데 공산주의 사상에 깊게 물든 이들은 전선에서 죽지 못하고 포로가 된 처지를 상당히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런 정황은 한국 역사학 연구자 이선우가 집필한 연구논문 "한국전쟁기 거제도수용소 내 '친공포로'의 딜레마와 폭동"에 자세하게 제시된다. 이후 본 칼럼에서 제시되는 친공포로 폭동 관련 사실들은 모두 이 논문의 진술을 참조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1년 2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 부산을 비롯, 전국 각지에 수용되어 있던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이 거제도로 이송돼 한 곳에 수용되었다.

전체 포로 수는 16만명. 한창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포로 관리에 병력을 할애하기 어려웠던 유엔군은 수용소 관리 병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로들이 직접 뽑은 대표자들을 포로 지도자(prisoner commander)로 세우고, 이들을 통해 자율적인 통제시스템을 구축해 수용소를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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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키즈>에 등장하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런 시스템은 수용소 운용 초기에는 아무 문제없이 원활히 작동했다. 포로 지도자들은 수용소 지도부인 미군들에게 비교적 협조적이었고, 통제에 저항없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세 달 뒤인 1951년 5월부터 친공포로 측 지도자들이 점차 미군에 저항하는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 16만의 포로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념과 사상에 무지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북한 정권에 의해 강제로 징병되어 남침에 동원되었다가 포로가 된 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희박한 이들과 전쟁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수용소에서 미군의 유화 정책에 호응해 반공 포로가 되었다.

한편 포로들 가운데 공산군 간부 출신으로 공산주의 사상이 투철한 이들은 포로 지도자 위치를 활용해 수용소 내에 공산화 조직을 만들고, 내부 기관지까지 만들어 배포하며 사상 교육에 힘썼다. 이들에게 동조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옹호하던 이들이 이른바 친공포로였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수용소 내 친공포로 조직을 총괄하던 인물은 박상현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 생애 대부분을 소련에서 보내며 공산당의 교육을 받은 골수 공산주의 엘리트였다.

전쟁 발발 전 황해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던 그는 포로가 된 후 자신의 처지를 크게 비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산군 간부로서 전쟁에 패했을 뿐만 아니라 포로가 되기까지 한 까닭에 전후 북으로 송환된 뒤 출세길이 막혔다고 생각한 듯하다.

박상현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포로수용소 내부에서 공산화 책동에 힘썼고, 포로수용소 내 소요와 폭동을 유발하기 위해 힘썼다. 자기 휘하의 포로들을 교육시켜 관리자인 미군들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저항하게 만들었고, 반공 포로들을 습격해 사상자를 내도록 부추기기도 하였다.

결정적으로는 1952년 5월 7일 포로수용소 관리소장이었던 프란시스 돗드 준장 납치 사건의 주동자로 활약했다. 당시 친공 포로들이 가장 많이 포진해 있던 제76수용동 포로들은 박상현의 지시 하에 돗드 준장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보좌진과 함께 수용동에 방문한 돗드 준장을 수용동에 감금한 뒤 수용소 지도부와 처우 개선과 관련된 협상을 요구했다.

이처럼 미군과 반공포로에 대해 살해, 폭력, 납치 등을 획책했던 박상현은 당시 수용소 친공포로들 사이에서 '로 선생님'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뮤지컬 <로기수>와 영화 <스윙키즈>는 바로 이 박상현이라는 인물, 로 선생이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로부터 주인공 로기수의 형 로기진이라는 인물을 창안해 낸다.

영화 속에서 로기진은 '미제의 회유정책에 넘어간 친공 포로들을 엄벌하고 미제 앞잡이 군인들을 척살하려는' 계획을 가진 친공포로 지도자로 등장한다.

반면 동생 로기수는 수용소 지도부가 포로들을 미국식 선진 문화를 통해 회유하려는 목적으로 창단한 댄스단에 들어가 스윙재즈와 탭댄스의 열기에 빠져든다. 그는 더 이상 이념의 도구로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삶의 열망을 찾기 시작한다. 이로써 로기수는 자유로운 인격으로 우뚝서는 길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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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하사의 지도 하에 공연을 펼치는 스윙 키즈 댄스팀.

이처럼 영화는 두 형제의 갈등과 비극을 통해 남북 이념대립의 현실뿐 아니라 집단 대 개인, 전체주의 대 자유, 폭력 대 화합의 가치대립을 함께 표현한다.

작중 주인공 로기수가 탭댄스 강습을 통해 잭슨 하사(자레드 그라임스 분) 및 댄스팀원들(남한 통역사와 친공포로로 구성)과 가까워지는 과정은 자유, 화해, 예술의 열망에 이끌리는 인간 본성을 대표하고, 이런 로기수를 배신자 취급하는 로기진과 친공 포로들의 폭동 및 암살 계획은 유물론 이념에 사로잡힌 폭력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신을 대변한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스윙키즈>가 전하는 이런 주제의식은 반가운 것임에 틀림 없다.

영화 전체에서 종교성에 관한 메시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인권의 핵심으로 제시하며, 이를 억압하는 공산전체주의를 지탄하는 <스윙키즈>의 메시지는 종교의 자유 보장을 환영하는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환영할 만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메시지가 기독교적 정신과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며, 반공 포로들을 우대했던 이승만 정권 시대의 역사적 장면에 오버랩되기까지 하는 까닭에 반가움의 정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 영화가 북한군 출신 로기수라는 인물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킨다 해서 '북한 미화 영화'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북한군 병사가 자본주의 국가의 자유로운 문예사상을 대변하는 스윙음악과 스윙댄스를 통해 변한다는 점,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형이 믿어왔던 공산주의 사상의 비인간성에 의해 쓰고 버리는 도구, 일회용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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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키즈>의 서사 속에서 북한군 출신 포로 로기수의 변화는 자유를 지향하는 댄스의 열망으로부터 출발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