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29살때였다. 필자는 대학에서도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에 입각한 무신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성경과 교회는 의지가 약하거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나 믿는 미신 정도로 생각하였다. 책의 내용 자체로 보았을 때 그 어떠한 믿을만한 증거 하나 없는 책이 성경책이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대홍수로 전지구를 멸하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그야말로 황당한 내용의 책이 분명했다.

하지만 필자는 20대 후반에 우연한 기회에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 성경에 대한 의문점과 궁금증은 커졌고 특히 세상의 과학이론과 가장 대립되는 사람의 창조에 대한 의문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고 적혀 있는데, 교과서에는 화학원자들이 우연히 모이고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이었다. 주일 오후에 드리는 예배시간에는 조는 때가 반이었다. 몇 달 후 이렇게 교회를 다니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성경에 대한 의문점을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그리고 상당히 합리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나의 혹은 그 어떤 사람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렇게 계속 윗세대로 올라가다 보면 그 어떤 이론이나 사상에 의하더라도 최초의 사람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사람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만 알게 된다면 성경과 진화론 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진화론에 대하여는 중고대학교를 거치면서 10년 이상을 공부하였으니 대략적인 내용과 근거에 대하여는 알고 있었는데, 그와 반대되는 창조론(혹은 창조과학)에 대하여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하루 날을 잡아 모교 대학도서관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책을 한 권 빼들고 처음부터 차분히 쭉 읽어 내려갔고 책의 중간을 조금 더 읽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이 기적과 같은 사건(창세기 2:7)은 설화나 소설이 아닌 "진짜"였던 것이다. 요즘말로 "레알"이었던 것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나를 택하시고 내 영혼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하나님이 정교하게 DNA의 염기서열을 바느질하듯 하나하나 직접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와 만물이 신비하고 은혜로웠다.

전지구적 대홍수인 노아의 홍수 역시 충분히 신빙성 있는 믿을 만한 증거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니, 그때부터는 성경의 모든 기적이 아무런 의심없이 모두 믿어졌고, 받아들여졌고, 가슴 벅차고 은혜로웠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못 하실 일이 무엇이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모든 과학법칙, 수학법칙을 함께 만드셨고, 기적을 행하실 때는 과학법칙을 초월하는 일도 행하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이나 물 위를 걸으신 일이나 모두 과학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나, 과학법칙을 만드시고 이를 초월하시는 분께서는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명백한 팩트와 논리적 근거를 기반으로 세워진 창조신앙은 어떠한 유혹과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천지를 창조하심,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마치 1+1=2라는 사실처럼 확고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팩트가 되어 가슴에 새겨진다.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오더라도 1+1=2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든 시련이 와도 1+1=3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분명하다. 이 정도가 되면 신앙이라기보다 사실인 것이다. 더 큰 축복으로 훗날 채워주시리라는 강한 믿음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창조신앙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생들과 청년들은 성경과 배치되는 과학책으로 중고등학교 6년을 공부하고 취업과 진로, 직장, 결혼 등의 인생의 중요한 문제로 인하여 머리 속이 복잡하고 평온할 날이 없는 시기이다. 필자와 같이 20대 후반의 나이에 교회에 처음 출석하여 믿음을 새로 갖는다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창조신앙을 접하게 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필자와 같은 무신론자에 진화론자, 생물학 전공자도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작은 기적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정보의 불균형의 시대에서, 세상 사람들은 창조론이나 창조과학을 접할 기회조차 없다. 학교의 교과서는 물론이고, TV, 인터넷, 대중 서적 등 어느 곳에서도 진화론이 틀렸다거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 학문의 자유가 있는 대학에서도, 진화론이 틀렸다는 주장을 하면 학계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였던 모교수 역시 아직 증명되지도 않은 '이론(theory)'에 불과한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였다는 이유, 성경을 기록된 내용 그대로 믿는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필자는 당시 대한민국이 학문의 자유, 더 나아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 사람의 창조에 대한 설교를 좀처럼 들어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대학생, 청년들이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부분,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터치해주면 그들은 충분히 변화될 수 있고 은혜받을 수 있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만일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와 성경에 적힌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면, 교과서와 성경을 절묘하게 절충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되 빅뱅과 진화의 방법으로 수 십 억년에 걸쳐 미물로부터 인간까지 조금씩 천천히 중간단계의 생물들을 거치면서 만드셨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와 같은 유신진화론(혹은 진화적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첫째,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의 과학적 관찰의 결과와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둘째, 성경의 매우 중요한 내용들의 해석에 있어 매우 무리한 비유와 왜곡이 가해져야만 하며, 셋째, 결국 그와 같이 타협하고 절충한다고 하더라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불필요하게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내용들이 누적되어 결국 성경 자체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게 되고, 넷째, 세상과 타협하였지만 세상의 과학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며, 다섯째, 에덴 동산의 선악과의 원죄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동일한 과학적 관측을 가지고 과학자마다 서로 다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필자가 업으로 삼고 있는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가 서로 다른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상반되는 증거를 제시하였을 때 어느 편의 말이 더 타당한지는 이를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판단의 권한을 가진 법관이 그들 각자의 양심에 따라 달리 판결하였다면, 이러한 두 개의 상반된 판결(예를 들어 1심과 2심) 중 어느 하나가 위법한 판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일 것이고, 둘 다 맞을 수는 없다. 진실을 찾고 진리를 따라갈 때,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더욱 깊어질 수 있고 믿음은 더욱 커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경과 세상의 과학이론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대학, 청년들에게 필자는 말하고 싶다. 아무런 의심, 걱정하지 말고, 성경을 기록된대로 믿으시라.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우리 마음대로 말씀을 세상과 타협시키지도 말고, 마음 푹놓고 성경에 적힌 그대로 믿으시라. 아멘.

한국창조과학회 총무 구주와(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