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파괴보다 더 큰 비극은 하나님의 떠나심

성전이 파괴된 것도 이스라엘 역사에 엄청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나버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에스겔 8-11장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환상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안에서 행하는 각종 우상숭배의 적나라한 모습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면서 이들의 죄악 때문에 성전을 떠나신다고 말씀하신다(겔 8:6). 에스겔 10-11장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단계별로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에게서 떠나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고(10:4), 이어서 성전 문지방을 떠나 그룹들 위로 가서 머물렀고(10:18), 이후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서 떠올라 성읍 동쪽에 있는 산꼭대기에 머물렀다(11:23). 이 장면까지 본 후에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다시 바벨론의 포로들 가운데로 데리고 왔다(11:24).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더렵혀진 성전에서 떠나시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았다. 바로 이 시점이 예루살렘의 파괴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절의 시점과 일치한다. 이때가 바로 주전 586년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의 시점과 일치한다.

진정한 포로귀환은 하나님께서 재건된 성전에 돌아오심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의 칙령(주전 538년)으로 돌아왔지만 성전이 완성되기 전에 이들은 여전히 포로 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스가랴와 학개는 선포하고 있다.

예레미야서의 포로생활 70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스가랴서는 성경 내적 해석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스가랴서는 70년에 대해 구체적으로 두 번 언급하고 있다(슥 1:12; 7:5). 스가랴서 1장 1절은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한 연도가 “다리오 왕 제 이년 여덟째 달”이라고 밝히는데, 이때는 주전 520년이다.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전한 첫 번째 메시지는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 . .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라는 말씀이다(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올 때, 여호와께서도 그들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첫 말씀의 중요한 메시지는 여호와께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돌아오시는가.’이다.

스가랴와 학개는 포로귀환 후 성전 재건이 지체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려하여 성전 재건을 완성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이다.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동일하게 주전 520년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스가랴서 1-8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면 답이 분명하다. 이는 성전 재건이 완성이 되어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거처로서 기능을 하게 될 때이다. 스가랴서 1장 16-17절에 따르면 여호와의 돌아오심과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완성이 되면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택한 도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스가랴서 1-8장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나님의 돌아오심은 바로 성전 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주전 520년에 스가랴에게 임한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자.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슥 1:12).

이 말씀은 천사가 여호와께 드린 말씀인데,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 70년은 포로귀환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라, 스가랴가 이 말씀을 받은 이 시점(주전 520년)까지 계속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 끝이 나겠는가? 스가랴서 1-8장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끝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때는 성전 재건이 완료된 시점이다(1:16-17; 2:10-11; 3:3-4; 8:2-3, 8-13).

에스라서는 70년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지만 고레스의 칙령을 두 번 소개하고 있다(스 1:2-4; 6:3-5). 두 곳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레스 칙령의 강조점은 유대인들의 귀환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있음이 분명하다(대하 36:23에도 동일함).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그릇들도 되돌려 보내 성전이 완성되면 원래 위치에 다시 두도록 지시하고 있다(6:5). 에스라서의 강조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돌아와서 고레스의 지시대로 성전을 재건하는데 있다. 이는 진정한 포로 됨에서 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함을 통해서 완성됨을 암시하고 있다.

스가랴와 함께 학개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중단된 성전을 재건하도록 독려한 선지자였다. 여호와께서 학개를 통해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재건된 성전에서 받으시는 예배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스미스(Smith)는 설명한다(R. L. Smith, Micah-Malachi, WBC 32, 153). 여기서도 에스겔에서처럼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를 지칭하는“영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은 성전 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스가랴서와 함께 에스라서, 역대기하 36장, 학개서에서 밝히는 ‘예레미야 포로생활 70년’의 메시지는 고레스의 칙령으로 돌아온 시점에 포로의 멍에를 완전히 벗어버린 것이 아니라, 포로귀환 이후에도 여전히 포로의 멍에를 메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누리는 시점은 성전이 재건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때 시작됨을 가르치고 있다. 포로생활 70년의 성경 내적 해석의 결과 진정한 포로 귀환의 시점은 성전이 재건된 주전 516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구약시대의 성전의 기능은 신약시대의 십자가의 기능과 동일하다. 범죄한 사람이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곳은 성전을 통해서이다.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은 용서의 통로를 잃어버린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의미 없는 종교유희에 불과하다. 죄 용서 없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는가? 구약 예배의 핵심은 성전의 제사의식을 통한 속죄에 있었다.

[김진규 연재 칼럼] 예레미야서의 포로생활 70년은 정확한 수치인가, 어림수인가, 상징적인 수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