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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별세, 우리가 몰랐던 그의 9가지

기독일보 강혜진 기자

입력 Dec 05, 2018 06:10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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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캡쳐화면

ⓒTGC 캡쳐화면

미국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이면서 역사상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었다. 최근 더가스펠코얼리션(The Gospel Coalition, TGC)은 '조지 H.W 부시에 대해 알아야 할 9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1. 조지 H.W. 부시는 1924년 매사추세츠 밀턴에서 프레스코트 쉘던 부시와 도로시 부시 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친의 할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George Herbert Walker)의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주었다. 이는 영국성공회 신부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던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지 부시는 전쟁기간 군에서 복무했으며, 예일대학교에 입학한 후 사업을 운영하다 정계에 입문함으로써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프레스코트 부시는 코네티컷에서 10년 동안 미국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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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지 H.W. 부시는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에 소속된 17세의 학생 당시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급 공격했다. 부시 대통령은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심지어 캐나다 왕립공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부시는 18세 나이에 입대해 결국 해군 예비군과 해군 비행사 장교가 되었다. 18세 때 그는 태평양 전투지역에서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한 어뢰폭격기를 운전했다.

3. 해군에 합류한 지 2년 후, 부시는 도쿄에서 700마일 남쪽에 있는 작은 섬에서 급습을 당했다. 그의 비행기는 공습 직후 여러차례 총격을 받았고 비행기에서 탈출한 공군대원들은 9명에 불과했다. 그는 섬에 추락했고, 미국 잠수함에 의해 구조됐다. 일본인은 다른 8명을 붙잡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 중 4명은 도살을 당했다. 그는 "왜 제가 살아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제게 무엇을 주신 건가요?"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운명이 있었고 이 땅에서 뭔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4. 일본이 항복한 지 한 달 후인 1945년 9월 부시는 해군을 떠나 예일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2년 반 만에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가족들과 텍사스로 이주, 석유사업 분야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0년대 두 개의 석유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이미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나 이 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5. 그는 아내 바바라와 함께 조지 W.(1964년), 로빈(1949~153), 젭(1953년), 닐(1955년), 마빈(1956년), 도로시(1959년) 등 6명의 자녀를 두었다. 1964년 텍사스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이어갈 때라고 판단하고 선거에 나섰다. 당시 선거에서 피배했으나 1966년 휴스턴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1970년에 상원의원 선거에 다시 나서기 전까지 2번에 걸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6. 두 번째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한 부시는 NASA 대표, 중소기업 회장, 대통령 특별 보좌역 등 닉슨 행정부의 여러 직책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그를 유엔 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되기 전까지 2년 동안 유엔 대사로 활동했다. 제럴드 포드 (Gerald Ford)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부시는 국무부  중국연락사무소장을 맡았고, 이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임명됐다.

7. 부시는 1980년 공화당 예비경선에 출마했다. 그는 24% 표를 얻었으나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로널드 레이건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중도에 포기했다. 전당대회에서 부통령을 선출할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첫 번째 선택은 제럴드 포드 (Gerald Ford)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은 처음에는 부시가 정책적인 견해 차이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부시는 레이건과 공화당 플랫폼을 모두 지지한다고 동의한 후, 전당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백악관에서 8년 동안 정치적 견해차가 사라질수록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8. 부시는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레이건의 뒤를 이었다.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당시, 미국장애인법(American Disabilities Act of 1990)이 통과되는 등 중요한 국내적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중요한 성과 중 많은 부분이 외교 분야에서 나타났다. 부시 대통령은 파나마와 페르시아만에 군대를 보내 파나마 지도자이자 마약밀매업자인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Noriega)를 체포하고, 쿠웨이트를 불법 점령하고 있던 이라크 군대를 추방했다. 그는 또 독일 통일 등 냉전 이후의 세계 질서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부시 전 대통령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9. 부시는 오랫동안 성공회에 몸 담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대해 주저했다. 그는 "'당신은 거듭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받아들입니까?'라고 묻는 것이라면, 나는 분명히 '그렇다'고 즉시 대답할 수 있었다. '만약 단 한 순간에 당신의 인생이 바뀌었습니까?' 묻는 것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많은 순간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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