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미국변호사
정소영 변호사

시대가 바뀌면 늘 신조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요즘엔 특히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조차 힘들 만큼 우리의 언어생활이 많이 바뀌었고 혼란스러워졌다. 그 중 5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획기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단어가 나타났으니 이름하여 '젠더(Gender)'이다.

 

'젠더'란 원래 문법적으로 남성형과 여성형을 구분지을 때 사용하던 단어였다. 그런데 이 단어가 이제는 출생 시의 생물학적인 성별을 대신하거나 심지어 이를 부인하는 새로운 성별 정체성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젠더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이 젠더를 '사회적으로 학습된 성'이라거나 개인이 '자의적으로 선택한 성별 정체성'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개념이다.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이다. 과학적으로는 염색체를 기준으로 XY면 남자, XX면 여자로 완전히 구분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가 이렇게 구분된 남자, 혹은 여자라는 성별 정체성에 따라 모든 사회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해 왔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사를 보면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마치 젠더라는 이 단어가 우리 곁에 늘 있어왔던 것처럼 친숙하게 느끼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모든 국가기관에서 생물학적인 성별 구분인 '섹스(Sex) 혹은 양성' 대신 '젠더 혹은 성'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가장 엘리트 집단이라고 하는 대학가에서도 '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뭔가 더 세련되고 지적인 사람인양 취급하는 분위기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된 연유를 알고자 한다면 최소한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가량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1818년 칼 마르크스의 탄생은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역사를 계급투쟁의 과정으로 보고, 궁극적으로 기존의 사회질서와 기득권을 타파하여 평등하고 인간미 넘치는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그의 사상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던 후대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해체, 해방, 혁명에 관한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변주를 이루며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인 울림을 주고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이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었던 남녀 간의 성생활과 그것을 기초로 세워진 가족관계를 계급간의 억압과 착취구조로 보고 이를 해체하려 했던 마르크스로부터 영감을 얻어, 인간에게 부여된 생물학적인 성별 정체성을 자연이, 더 나아가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절대자이자 창조주가 부여한 억압의 굴레라고 보고 이것을 해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남자 혹은 여자라는 고정된 성별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며, 스스로가 정의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게 하는 토대라고 생각하였다.

젠더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인간의 성별 정체성은 수 십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마치 스팩트럼처럼 LGBTQIA....등등 다양한 성별정체성이 펼쳐져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젠더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매일 변할 수도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되고 더 늘어나서 이들이 상징으로 삼고 있는 6가지 색깔의 무지개처럼 더욱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된다고 한다.

창세기에는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신이 되고 싶은 마음에 '선악과'를 몰래 훔쳐 먹고 저주를 받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후로 인간은 각자 자신의 우상이 되어 자기 소견에 따라 옳고 그름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잘 드러나있다. 그런데  젠더 이데올로기는 선악과로 이미 한번 신의 권위에 도전했던 인간들이 이제 남은 생명나무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려고 하는 사상적 흐름이다.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근원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뚜렷이 구별된 성별 정체성이 있고, 이를 토대로 가정이 성립되고 생명이 태어난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이성의 이름으로, 과학의 이름으로, 생명 창조 질서의 근본을 흔들어 대며 이 금단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게 된다.

정소영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