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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칼럼] 진정한 행복의 세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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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Nov 29, 2018 11:11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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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
(Photo : )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교(Protestant)와 구교(Catholic)로부터 존경받는 신학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의미 있는 저작물인 행복론이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는 참 행복을 주장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참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행복의 본체라고 확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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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
(Photo : wikipedia) Portrait by Philippe de Champaigne, 17th century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행복론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행복한 소식을 전합니다. 행복을 누리게 하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행복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행복한 소식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행복론을 자세히 살펴본 대린 막마흔((Darrin McMahon)은 자신의 책 ‘행복의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하는 행복을 세 개념으로 정리합니다. 행복은 실존적, 이성적, 그리고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첫째, 진정한 행복은 실존적이어야 합니다. 철학에서 ‘실존’은 자아인식과 경험의 구체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용어로 정리한다면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말하는 실존적 행복은 개인적이고, 체험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복입니다.

당시의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안은 상당히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쟁론을 좋아하고 사변적 신학체계를 세우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행복하려면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남과 섬김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이 누리는 바른 행복은 개개인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구가하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둘째, 진정한 행복은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체험적이어야 하기도 하지만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이성이 상충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성은 신앙과 위배되지 아니하고 이성은 신앙에 대치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원래 이성적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영적인 삶과 영적 경험도 이성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신앙과 신앙의 경험을 신비의 세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되고 인식되고 설명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래서 누리는 행복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신앙적 체험과 성도의 행복은 논리적이어야 하고 이성적으로 분별이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셋째, 진정한 행복은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행복의 범위를 절묘하게 조절합니다. 신앙인이 누리는 행복이 개인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또 신앙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이 신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누리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누리는 행복, 하나님을 섬기며 누리는 행복이 상함도 쇠함도 없는 참 행복입니다. 행복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행복 추구는 파괴적입니다.

에덴동산의 인류 조상들은 행복을 오해함으로 타락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사람들은 잘못된 행복 추구로 자신도 망하고 이웃도 망하게 하는 비극을 맞습니다. 행복추구는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행복 추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복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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