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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시는 주님… 신랑으로 맞을까, 심판주로 맞을까?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Nov 25, 2018 11:25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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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재림신앙, 현실도피인가?

 

▲이경섭 목사.
(Photo : ) ▲이경섭 목사.

 

 

예수 재림(再臨, parousia)은 주후 70년경부터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재림은 예수 승천 후 곧 실현된다고 믿었고, 심지어 동시대인들은 예수로부터 직접 자신들이 죽기 전 그의 재림을 볼 자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이는 사실 '성령강림'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마 16:28, 막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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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0여년이 지났음에도 재림이 실현되지 않자 여기저기서 재림 부정론, 시한부(時限附) 종말론 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그런 성도들을 다독이려고 교회들에 편지를 써서, 예수 재림이 더디다고 낙심치도 말고(벧후 3:9), 특이한 징후들이 있다 해도 섣불리 재림의 징조로 단정하여 쉬 동심(動心)치도 말라(살후 2:2)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문이 다 먹혀든 것만은 아니었고, 때론 공격자들로부터 조롱과 반대를 받았습니다(벧후 3:3-4). 재림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흔히 제시됐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벧후 3:8)"는 말씀은 공격자들로부터 '재림 시기를 초월적인 시간으로 만들므로 예수 재림을 더욱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은 유한된 시공간(時空間) 에서 구현될 초월적인 재림사건은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재림뿐 아닙니다. 유한된 시공간 속에서 이뤄진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 '영원한 피의 속죄(히 13:20)' 등 초월적 사건들은 상징적인 시간 개념으로 밖에 설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약 성도들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인내심 있게 메시아 강림을 고대한 것은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라는 초월적 시간 개념을 견지한 덕분이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재림 지체에 대한 공격자들의 비판, 재림 회의론 등이 생겨났지만, 그것들이 이제껏 성도들의 재림 신앙을 약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수의 재림 지체가 그리스도인들의 재림 신앙을 약화시킬 수 없는 것은, 이미 그들 안에 '영으로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의 임재의 자각이 '육체를 입고 오실 예수 재림'을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실도피로 오해받는 재림 신앙

재림 신앙은 건전한 성경적 신앙임에도, 왜곡되게 비판받아 온 역사적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재림 신앙은 인생 패배자들의 현실도피적 방편이라는 비난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비난이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를 위시해서 고난과 박해의 시대마다 재림 신앙은 성도들로 하여금 고난스러운 현실을 타계지향적(他界志向的)인 태도로 극복하도록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공격자들의 주장처럼, 염세주의자들(a pessimists)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한때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애창됐던, 순교자 손양원(孫良源, 1902-1950) 목사님의 '낮에나 밤이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라는 '주님 고대가(苦待歌)'는 그에게 박해를 이기는 힘이었습니다. 동시대에 박해받던 수많은 한국 그리스도인들 역시 손 목사님의 "주님 고대가"를 함께 부르며 고난스러운 현실을 이겼습니다.

그러다 해방과 6·25 사변을 지나오면서, 차츰 한국 사회가 가난과 혼란을 벗어나 사회가 안정되고 소위, 먹고 살만하게 되자 그 뜨겁던 '재림(再臨) 신앙'은 점차 약화됐고, 오늘날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재림 신앙의 약화에 대해 공격자들은 '봐라 재림 신앙이 현실도피적인 마취제였다는 우리의 주장이 맞지 않았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들의 비판에 귀기울일만한 점도 없진 않으나, 재림 신앙은 오히려 고난과 평안의 때를 막론하고 여전히 견지돼야 할 일상적인 신앙입니다.

유사 이래로 오랫동안 평안과 풍요를 구가하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오늘 같은 시대에 더욱 요구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30, 마 24:38-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신랑으로 오시는 예수

흔히 예수 재림 하면, 사람들은 먼저 종말과 심판을 떠 올리며 공포심에 사로잡히는데, 사실 예수 재림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연합한 그의 신부를 취하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 원리는 하와가 아담의 신체 일부(갈비뼈)로 창조돼 아담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창 2:23)'이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성도는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합됐으며, 재림은 한 몸된 그의 신부를 취하러 오는 것입니다.

초림(初臨)의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는 그의 이름대로, 택자들의 죄를 구속하려 왔기에 죄인들의 접근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강도, 세리, 창기를 비롯해 그 어떤 흉악자도 그에게의 접근이 금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느 누구나 오라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시니 어느 누구나 오라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시니 어느 누구나 오라(찬 257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다 주께 나오라(찬 257장)'는 가사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죄와 상관없이 오시는 예수 재림일은(히 9:28) 그의 피로 연합된 성도와의 재회(再會)일이며, 죄인들의 접근이 엄격히 제한됩니다. 그래서 재림 예수는 공중 재림을 하시며 신부된 성도들은 공중에서 그를 영접할 것입니다(살전 4:17).

그리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면부지로 만나지만 누가 그 분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가 신랑 예수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그가 자기 안에 성령으로 내주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 재림일은 이미 성도에게 와 계신 분을 만나는 날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계 1:4; 4:8)"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어린양 그리스도의 피로 연합된 그의 신부들이 신랑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랑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는(마 25:1-12) 그리스도의 신부들의 신랑에 대한 고대를 예표합니다.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나 주의 재림에 무관심하고 그의 오심을 예비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피로 구속받지 못해 그와 연합되지 못한 자들이기에 그와 무관합니다.

따라서 재림 예수를 신랑이 아닌 심판주로 맞게 될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뿌림을 받지 못한 자는 그의 피가 그를 심판할 것입니다. 성경은 어린양의 피를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의 잔'으로 말하기도 하고, 죄인을 심판하는 '진노의 잔'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어린양의 피를 "구원의 잔(시 116:13, 마 26:27-28)"으로 마시지 않은 자에게는 필경 그것이 "진노의 잔(계 14:10; 16:19)"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책에 송아지의 피가 뿌려진(히 9:19-20) 두 가지 의미, 곧 '율법을 어기면 반드시 죽는다'와 '그리스도가 율법을 어긴 자를 대신해 피를 흘릴 것이다'는 예표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어린 양의 '구원의 잔을 들 것인가, 진노의 잔을 들 것인가?'는 그의 은혜를 입었느냐 입지 못했느냐에 의해 결정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피로 구속을 받은 신부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의 피뿌림을 받지 않은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시 2:12)"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되지 못한 자가 그의 재림 때 받을 진노를 두고 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맞지 않으려면 그의 재림 전에 그의 피뿌림을 받아 그와 연합해야 합니다.

◈예수 재림시 가장 필요한 것

마태복음 25장에는 재림하시는 신랑 예수를 고대하는 성도들의 영적 상황이 잘 묘사돼 있습니다. 예수 재림 시 슬기로운 처녀, 미련한 처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졸며 잤다(마 25:5)'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신랑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던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분명했음에도 모두 영적 잠에 빠지는 신앙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졸며 잔' 그들은 모두 다 혼인잔치에 배제돼야 마땅하건만, 그 중 일부는 혼인잔치에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마 25:10).

깨어 있음을 '구원의 증표'로까지 여기며, 영적 졸음을 비상(砒素, 독약)처럼 여기는 경건주의자들(devotionalists), 인간의 신앙 노력을 구원의 조건으로 간주하는 신인협동주의자들(synergists)을 당황스럽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잠간(틈)'의 방심을 신앙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 곧, 마귀의 지배아래 들어가고, 구원에서 탈락되는 요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졸며 잔' 그들 모두는 예외 없이 혼인잔치에 배제돼야 마땅합니다.

이 열 처녀들만 그러겠습니까? 인간 모두의 실상입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깨어 있으려 애쓰지만 안 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졸며 잤기를' 거듭 반복하는 것을 본 예수님이 "한시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마 26:40)"고 한 책망은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칼끝 위에라도 서 있을 듯이 정신일도(精神一到) 했다가, 깜빡깜빡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실상입니다.

열 처녀들 역시, 어쩌면 신랑 도착 직전까지 열심히 깨어 있다 도착시에 잠시 졸았는지 모릅니다. 만일 주님이 경건주의자들(devotionalists), 신인협력주의자들(synergists)의 주장대로 그런 자들을 모두 내친다면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영적인 잠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번도 깨어 본 적 없는, 처음부터 사망의 잠을 잔 자들이 있고, 중생했지만 육신의 약함으로 깜빡 조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잠, 요나의 잠, 베드로의 잠 등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잠도 아마 그런 잠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혼인잔치에 들어간 것은 방심(放心) 여부보다는 '기름 준비' 여부에 의해 결정됐으며, 여기서 우리는 일시적 방심보다 기름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름 준비'에 대한 견해들이 분분합니다. 혹자는 '믿음 준비'라고, 혹자는 '중생 받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혼인잔치에의 참여여부가 곧 구원 여부는 아니라며, '기름 준비'를 '믿음, 중생'과 연결지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당신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때때로 깜빡 깜빡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고 당신 안의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예수 재림을 간절히 고대합니까? 그리고 그의 오심을 예비하며 그 앞에 설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됐습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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