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림 목사
강성림 목사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떠난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렸을 때 아버님이 약주를 한 잔 하시고 들어오시면서 부르시는 노래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노래의 제목이 "단장의 미아리 고개"인데 나는 꽤 오래 동안 이 단장이 낮은 담을 가르키는 단장(短牆) 인줄 알았습니다. 철이 들고서야 여기에서 "단장"이란 斷腸으로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이라는 의미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의 시작이 母猿斷腸 (모원단장)이라는 사자성어로부터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4세기 중국 오호십육국 시대 진나라 환온이 촉나라를 치기 위해 양자강 계곡을 배로 지날 때, 배에 탄 한 병사가 강가에 늘어진 나뭇가지에 메달려있던 새끼 원숭이를 사로잡아 데려가자, 이를 본 어미 원숭이가 비통하게 울며 죽을힘을 다해 그 뒤를 쫓아옵니다. 이 모습을 보고 환온이 배를 멈추게 하자 어미 원숭이가 배 위로 뛰어올랐는데, 배 위로 뛰어 올라온 어미 원숭이가 갑자기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환온이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가 이상해 갈라보니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고사성어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슬픔과 원통함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7:12에는 정말 가슴 아픈 어머니의 이야기가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인 성의 과부로 외아들 독자를 잃고 장사 지내는 무리들과 함께 관을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제자들과 성으로 들어가고 있던 예수님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는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을 살려 그 과부 어머니에게 주십니다.

불교에 비슷한 말씀이 있답니다. 옛날 인도의 구시라 성의 시다림(林)이란 한가한 숲 속을 석가모니는 제자들과 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그 숲속에서 한 젊은 과부가 애통하니 울고 있었다. 외아들이 죽어서 너무나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젊은 여인을 보고 "울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하였으나 그 여인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석가모니에게 "부처님이시여 내 외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라고 애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석가모니는 "여자여 일어나서 마을에 가서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줌씩 얻어다가 죽을 끓여서 먹이면 너의 아들이 살아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기뻐서 마을로 힘 있게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해는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 그 젊은 과부는 빈손으로 힘없이 돌아왔다. "부처님이시여, 하루 종일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한 톨의 쌀도 못 얻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 때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 너무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과부의 슬픔에 "울지 말라"하시며 어쩔 수 없다 초월하며 살아라" 하는 부처님과 "울지 말라" 하시며 과부의 슬픔을 체휼 (Sympathize with) 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have Compassion) 예수님을 비교해 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불쌍히 여기다"라는 단어는 splagcnivzomai (스플랑크니조마이) 라는 단어로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To be moved as to one's bowels ' 창자까지 움직이게 되는 깊이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헬라어의 의미로 오늘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불쌍히 여기심"이란 창자까지 내려가듯 깊이 불쌍히 여기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외 아들을 잃은 단장(斷腸)의 슬픔 속에 있는 이 과부를 예수님께서는 같은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 긍휼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아무도 살려달라 애원하지 않았는데 그냥 살려서 그 어머니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또한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불쌍히 여기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죄로 죽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로 구원을 주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미7:19, 엡2:8) 초월하며 살아라 잊고 살아라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체휼하시며 같이 슬퍼해 주시고 같이 아파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