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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 ‘다시 스무 살 청년이 된다면?’ 질문에…

기독일보

입력 Nov 02, 2018 09:05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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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 이승훈 선생.

그들은 대도시뿐 아니라 몇 군데의 농촌도 돌아보았다. 남강은 각 지역 교육시설에 큰 관심을 쏟았다.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그들의 교육시설을 본 남강은 오산학교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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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와 히로시마에는 조선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들의 형편이나 교육 수준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고생하는 망국민의 비애를 보고 눈시울을 적셨다.

남강은 일본 시찰을 마치고 오산학교로 돌아오자 전교생을 모아놓고 말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본이 강대국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보이지 않는 속내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온갖 부조리가 그 사회를 좀먹고 있었고, 도덕적 타락이 만연하여 곳곳마다 병들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승리합니다. 동양의 평화를 짓밟은 일본은 곧 망할 것이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 얼마 후 <동광>이란 잡지에서 '만일 다시 스무 살 청년이 될 수 있다면'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남강은 대답했다.

"나는 지금 나이 육십이 넘었소. 나는 눈앞에 당한 일을 내가 옳게 생각하는 대로 힘써 왔소. 또 그렇게 해가는 중이오. 어언간 늙어 한 일은 변변한 것이 없소마는 나는 후회하지 않소. 그때 그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줄로 생각하는 까닭에.... 이러하니 내 나이 20세든지 30세든 앞에 당한 일을 옳게 생각하는 대로 힘써 할 뿐이지오.

지금 다시 20세 청년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 다르다 할까. 60 넘은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 없을 터이지요. 가령 지금 내 앞에 당한 일이 50년 이상 걸려야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시다.

하지만 내 나이 앞이 짧다고 아니할 리 없지요. 나는 언제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힘써 하면 고만이니까. 대체 사람이란 제 앞에 당한 일만 제 힘껏 옳게 잘해 가면 고만 아니겠소?

인생의 의미니 무엇이니 어려운 건 난 모르오. 세상에는 화성에 있는 생물에게 갑자기 습격을 당할까 보아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많고 강을 조사한답시고 강을 썩혀 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에 이상이 있는 줄로 나는 아오.

끝으로 짤막하게 내 생각 하나 더 말할 것이 있소. 지금 나를 쪼개어서 20여 세 먹은 청년 세 사람을 만들어도 그 세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조선을 위하여 일할 것이란 말이외다."

빼빼 마른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청년 같은 말이었다.

총독부는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다. 그것은 충성스런 일본 식민지의 신민을 양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즉 조선인들에게 일본어를 보급시켜서 잘 부려먹기 위한 보통학교와 농업, 상업, 공업 분야의 하급 직업인을 만들기 위한 실업학교,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학교만 허가하고 차원 높은 지식을 탐구하는 대학은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한민족의 지식욕을 충족시킬 만한 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민족의 수치이므로 민립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큰 뜻에 따라 설립운동이 일어났다. 1922년 일제가 식민지 지식인을 양성키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려 하자, 많은 애국지사들이 민족교육과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민립대학을 세우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교육만이 민족의 활로라고 굳게 믿은 남강이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뛰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발기총회에서 남강은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남강은 이상재, 조만식 등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열고 민립대학 설립 취지를 역설했다. 또 전국에 수백 개의 지회를 조직하고 모금운동도 전개했다. 또 총독부를 드나들며 실무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인의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관립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을 서두르면서 교육운동의 기운을 무마시키려 획책했다.

또한 민립대학 설립기성회가 배일사상을 고취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강연회를 중지시키고 청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 운동은 일제가 민족운동의 하나로 판단해 방해하는 바람에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1924년 봄 남강은 <동아일보>의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시련기였다. 이광수가 쓴 '민족적 경륜'이라는 사설이 빌미가 되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앞날에 대한 통찰력과 신망을 갖춘 리더가 필요했다.

남강은 취임사에서 앞으로의 구상과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오늘 뜻하지 않게 큰일을 당하여 책임의 무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사장이 된 이상 아무쪼록 진력하여 장차 훌륭한 언론기관을 만들어서 우리 나라와 백성의 행복을 추구해 보려 합니다."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점묘화).

남강은 민족에 대한 사명감으로 <동아일보>를 이끌어 나갔다. 밤을 밝히면서 간부들과 더불어 민족을 살릴 의논을 했다. 남강은 <동아일보> 사장으로 있으면서 오산학교와 <동아일보>의 유대를 한층 더 굳게 했다.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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