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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칼럼] 아우구스티누스 행복학(2) ‘행복의 중요성’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Nov 01, 2018 08:1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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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
행복 설계사 강태광 목사 (World Share USA 대표)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생동안 행복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행복을 찾아 방황하였습니다. 그가 33세에 소위 진리의 항구에 도달할 때까지 그의 목마른 방황은 처절했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단순한 이론적 논리 체계가 아닙니다. 실제적이고 실존적인 영혼의 만족과 평안을 향한 즉 영적 행복을 향한 목마른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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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행복은 삶의 궁극적 질문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행복은 철학의 정점이요, 신학의 중심주제였습니다. 프랑스 철학자요 철학역사 학자인 길송(E. Gilsong)박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의 개념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중세철학의 대가인 길송(E. Gilsong)박사가 바라본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을 찾다가 행복을 발견하고 행복을 누리고 행복을 전파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행복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실천적 과제였고 신앙의 열매였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에서 그의 행복은 강화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의 발견과 그 행복의 강화를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철학과 신학에서 행복이 중요한 이유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행복이 자기 인생의 숙제였기 때문입니다. 일생의 과업이었다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은 궁극적 행복을 찾는 순례자의 삶이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의 방황, 그의 학문 그리고 그의 경건의 끝은 행복의 항구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행복을 누리면서 그의 모든 방황은 끝이 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행복을 갈망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갈망할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 추구’를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희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당신이 전쟁을 하는가?’ 라고 묻거나 ‘당신이 사업을 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도 있을 수 있고 “아니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모든 사람은 “예”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가만히 우리를 살펴보면 모든 인생은 행복을 찾고 있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찾기‘라는 모든 인생의 숙제를 발견했습니다. 행복이 일생의 과업이기에 행복은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둘째로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행복을 발견한 축복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찾아 헤매던 아우구스티누스는 33세에 행복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완성된 그의 행복 찾기는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됩니다. 그는 행복찾기는 결국 하나님 찾기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발견한 행복을 나누고 싶은 열정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숨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자신이 찾은 행복을 전하는 통로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진정한 행복을 찾고 보니 행복을 찾을 때보다 더 행복의 중요성을 더 실감합니다. 행복의 비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386년 8월에 회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386년 9월에 카시키아쿰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행복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나눕니다. 그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이 행복론(De Beata Vita)입니다. 자신이 발견한 행복을 전하려고 행복을 강조합니다.

   셋째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의 본질을 알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유한한 인간은 도무지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때에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이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갈 때에 영원을 맞보며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삶이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은 인간의 희망사항이자 하나님이 인간에 부여하는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들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행복하라)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구원과 우리들의 행복(풍성한 삶)을 위해서 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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