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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우주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

기독일보

입력 Oct 18, 2018 06:4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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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칼럼] 철학자 러셀의 결정론에 대해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작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이 최근 나왔다. 호킹은 이 책에서 몇 가지 눈에 띠는 주장을 폈다. (1) 첫째 '신은 없다'는 주장 (2) 둘쨰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주장 (3) 마지막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새로운 인간 '슈퍼 휴먼'이 기존 인류를 지배하고 도태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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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과학자가 일종의 미디어 스타가 된지는 오래다. 하지만 과학자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는 순간 그의 한마디는 놀랍게도 대중들에게는 과학예언자라도 된 듯한 무게를 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에서 이미 그 폐단을 확인한 적이 있다. 호킹은 일반 독자를 위한 책 『시간의 역사』(1987)를 낼 때만 해도 아인시타인이 질문한 "신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으나(물론 결론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유작에서는 마치 과학적 예언자처럼 대담한 주장을 펴고 있다. 어떻게 내재의 학문인 물리학을 다루는 과학자가 초월의 신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할까? 겸손한 과학자라면 "초월의 신의 존재는 내가 대답할 영역이 아니고 외계생명체에 대해서는 현대과학이 꾸준히 추적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라고 했어야 옳았다. '슈퍼 휴먼'에 대해서는 이론물리학자가 결론을 내릴 영역이 아니었다. 과연 미래는 인간이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어떤 인과론적 질서로 움직이는 것일까?

결정론(決定論, determinism)은 모든 현상은 합법적·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인과론(因果論)적이라 여긴다. 따라서 결정론의 원리를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결정론이 섭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나 일부 섭리론적 요소가 있다.

러셀은 계시로서의 성경을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성서가 과학과 함께 성서비평학이 시작되면서 계시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제 기독교에 남은 세 가지 중요한 교의는 신(God), 영혼불멸설, 자유(freedom)이며 이들은 계시가 아닌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기에 기독교는 이제 다른 종교와 차별되지 않는 자연종교(natural religion)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과학주의자로서 러셀은 과학적 논의의 대상으로서 결정론을 거론한다.

러셀은 이 결정론을 자유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이 철학의 결정론은 신학의 섭리론이나 예정론과는 분명 전혀 다르다. 오히려 경정론은 자연적, 사회적 제 현상이 발전, 발생, 소멸의 객관적, 법칙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의 관심을 끄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미래는 이미 현재에 결정되어 있다. 유물론자들은 지나친 확신 속에서 세상의 변증법적 발전에 매달린다. 유물론자들에게 이것은 우연히 찾아오는 길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미래의 실상이다. 한반도의 일부 좌파들을 보라! 이들 무신론적 마르크스 유물주의자들은 미래를 확신한다는 착각 속에서 현재에 매달려있는 이상한 유토피아주의자들인 것이다. 유물론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과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결정론은 유물론자들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화석처럼 되어 버렸다.

러셀은 결정론이 가진 두 가지 철학적 성격을 논한다. 하나는 과학 연구자들을 안내하기 위한 실제적인 격률(格率, maxim)이다. 격률은 인과법칙 즉 한 사건과 다른 어떤 사건들을 연결하는 준칙을 말한다. 또 하나는 우주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일반적 이론을 찾는 작업이다. 자유와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결정론은 인간 행위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신이나 자연, 사회관계와 같은 외적인 원인에 의해 정해져 있고 선택의 자유나 우연은 없다고 본다. 이 견해는 인간의 의지나 책임, 행위의 의의 등에 대해서 당연히 부정적이다.

불신자로서 러셀도 당연히 결정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신앙인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 유물론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결정론에 회의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가 결정론에 회의적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비록 신학에 무지하다하더라도 기독교의 예정론과 섭리론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포스트모던적인 양자론의 확률론을 논한 것도 자유의지의 승리를 염두에 두고 결정론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칸트와 달리 러셀은 어떤 선험적인 것들(a priori)도 고려의 대상에 두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를, 그 밖의 모든 것에서는 결정론을 가정하여 자유와 결정론의 논리적 조화를 시도하는 입장을 러셀은 궤변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신학의 웨슬리안-알미니안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언급처럼 보인다. 절대적 지식을 배척하는 러셀의 입장은 분명 그를 회의주의자로 보이게 한다.

1950년, 철학자 러셀은 20세기 말에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세 가지 가능성을 예측한 적이 있다. (1) 세상 모든 생물의 멸절 (2) 지구 인구가 격감하고 야만의 상태로 회귀함 (3) 모든 전쟁 무기를 독점하는 단일 정부에 의한 세계 통일 정부 등장이었다. 그도 스티븐 호킹처럼 자신이 미래를 예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세계적 인물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스티븐 호킹도 받지 못한 노벨상까지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냉전 시대를 살았던 이 천재 철학자의 예언 비슷한 이 예측들은 21세기가 지난 지금 살펴보면 결국 조금도 들어맞지 않았다. 사실 러셀의 이 같은 예측은 호킹이 21세기를 사는 신앙 없는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주장을 편 것처럼, 20 세기 중반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예측이었기는 하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러셀은 자신이야말로 역사를 선도하는 사상가라는 자부심이 분명 있었다. 그런 자신감으로 자신의 결정론적 격률(?)에 따라 역사를 예측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그도 그렇게 그저 평범한 인류보다 조금 나은 사상가였을 뿐이었다. 천재 과학자들도 선지자가 아니요 결국 미숙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의 말이라면 결정론처럼 추종하는 대다수 우리 민족의 어리석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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