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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철학자 러셀이 생각한 악마론과 의학에 대해

기독일보

입력 Oct 10, 2018 05:02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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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러셀이 생각한 철학

누구나 아는 것처럼 러셀(1872-1970)은 영국 명문가 출신의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수학에도 능통한 천재 철학자였다. 이 천재 철학자 러셀은 철학이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철학은 철학자들이 살던 당대의 처한 사회적 상황의 결과이거나 반영(effects)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행운이 작용하면 그 철학적 견해로 후세의 정치와 제도를 변화 시키는 원인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철학자들에 대한 그의 서술방식이 철학자들이 살아갔던 그의 환경(milieu)의 산물임을 밝히려는 데 집중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셀 자신도 그 스스로 살던 시대와 사회적 환경의 제한 속에서 철학을 전개했다는 얘기다. 즉 우리가 다루려는 "악마론과 의학"에 대한 이 무신론 천재철학자의 견해도 참된 진리라기보다 그가 살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한다. 철학은 이렇게 초월적인 진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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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란트 러셀이 생각한 악마론과 의학에 대해

악마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마귀와 귀신들(Devil and demons)과 관련된다. 러셀도 주로 기독교와 관련된 악마론을 전개한다. 그러면서도 러셀은 천사들과 악마들에 대한 논의가 철학(신플라톤 철학)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초대 교부들이 철학을 활용한 것은 사실이다. 철학에는 당연히 이성의 선한 측면이 창조주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이 시대상을 담고 있다는 러셀의 주장처럼 초월적 진리는 아니다. 따라서 철학 이전에 성경 계시가 먼저 천사들과 악마에 대해 지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 악한 신들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삼상 16: 14-23). 칠십인 역(Septuagint)은 여러 곳에서 귀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그 대부분은 이교(異敎)의 신들을 가리켰다(신 32:17; 시 91:6; 96:5; 106:37; 사 13:21; 34:14; 65:3).

신약에서는 귀신이 주로 구원론과 관련하여 서술된다. 귀신은 그 우두머리 마귀를 따라 하나님을 불신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장중에서 분리시키려 하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단순한 질병 치유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영육 간 완전한 치유를 통해 인류가 궁극적 치유의 길로 들어서기를 촉구했다. 치유를 위한 도구로서의 의사든 안수(按手)든 기도든 우리 인간은 결국 다시 병들고 쇠약하여 죽음에 이르는 존재다. 예수는 바로 이 존재의 영원 속에 참된 치유,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질병 치유는 영생을 향한 표적이었다. 칼빈이 사단과 귀신들의 실재를 단순한 '악한 감정'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기독교를 부정하는 러셀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신앙과 신학에 무지한 러셀이 악마론과 의학의 관계에 대해 편협 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했다.

러셀이 본 의학과 성경이 말하는 질병

성경은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모든 질병이 죄 때문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러셀은 여전히 신학이 의학에 간섭하려 한다고 보나 전혀 그렇지 않다. 건전한 신학은 전혀 의학적 테크닉 자체에 간섭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러셀은 의학이 과학적 독립을 위한 싸움에서 신학에 승리하였다고 하나 신학은 의학의 한 분야가 아니다. 종교와 과학을 대립의 개념으로 보려던 러셀이 신학과 의학도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오해요 참사일 뿐이다. 많은 의학의 역사와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 등의 신앙과 귀신과 관련된 의학적 진술을 가지고 악마와 관련된 신학이 의학과의 대립에서 패배하였다는 러셀의 생각은 계시의 점진성을 다루는 신학의 본질과 신학적 언어에 대한 러셀의 이해 부족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신학은 인간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마취제의 발명에 개입했다"는 식의 러셀의 판단은 그가 얼마나 신학과 기독교에 대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어떤 신학자와 정통 기독교 가운데 마취에 대해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있단 말인가?

서로 관점이 다른 성경의 언어와 의학의 용어

성경의 언어와 의학의 용어는 서로 대립하거나 충돌의 개념으로 볼 게 아니다. 서로 관점이 다른 언어이다. 러셀처럼 이것을 "과학이 언제나 신학에 승리했다"는 식의 논리로 이어가는 것은 곤란하다. 수많은 진단 실수, 그에 따른 치료 실수와 수술 실수, 약물 오남용을 비롯한 투약의 온갖 부작용, 병원 내 감염, 경제적 유익을 위한 의사들의 무리한 과잉 진료가 문제이니 현대 의학은 모두 잘못되었다는 논리가 황당한 것처럼 창조신학과 구속신학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학문인 신학의 탄력성과 종합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악마론과 의학의 대립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 했던 러셀의 판단은 성경 해석에 미숙한 불가지론자로서의 러셀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천재 철학자 러셀도 자신의 시대 속에 갇힌 유한한 인간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 천재 수학자, 철학자가 자신을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외쳤다고 자신의 신앙도 함께 기우뚱하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은 이제 없었으면 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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