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stats
에디션 선택 통합홈 English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DC 애틀랜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한국기독일보
SEA.chdaily.com
2018.12.13 (목)
X
뉴스 기독교 경제 Tech 라이프 오피니언 크리스천 잡스 포토 비디오

[탈북민 수기] 옆집 청년이 남편이 되기까지

기독일보

입력 Sep 05, 2018 06:21 AM PDT

Print 글자 크기 + -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드보라의 ‘나의 출애굽기’

ⓒ한국오픈도어

ⓒ한국오픈도어

대학 생활 중에 가장 중요했던 일이라고 한다면 남편을 만난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꽤 살림살이가 괜찮았다. 집에서 술도 만들어 이웃에게 팔기도 했다. 옆집 아줌마는 우리 집에 술 받으러 자주 오셨었는데, 오실 때마다 나에게 자기 시동생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그리 귀담아듣지 않고 웃어넘기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주머니가 억지로 심부름 거리를 만들어서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가보니 이웃집의 가족분들이 모여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청년이 한 명 있었다.

Like Us on Facebook

까까머리의 훤칠한 청년이었다. 아주머니는 그 청년과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하셨다.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그 청년이 문을 열고 나와서는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아주 우렁찬 목소리였다. 알고 보니 아직 군 복무 중인데 휴가를 나왔다고 했다. 그 당시 연예와 결혼 문화 풍토에서 자유연애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고 이렇게 이성을 직접 소개받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분위기가 너무 어색했지만 씩씩한 청년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첫 만남 때 어땠냐고 물어봤더니 첫인상이 매우 여자답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 청년은 아직 군 복무가 남았기에 부대로 복귀를 했지만, 곧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이성으로부터 편지를 받는 기분은 참 묘했다. 청년은 자기가 몇 년만 지나면 제대하니까 꼭 기다려달라 했다. 그 당시 갓 20대가 된 내 가슴은 괜스레 콩닥콩닥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하고 유치원에 배치를 받아야 하는데 하필 빈 자리가 없어서 동네 농장 유치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렇게 시골 농장 유치원에서 교사로 있는데 갑자기 남자한테 연락이 왔다. 예정보다 빨리 제대가 됐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소개시켜줬던 그 남자의 형수가 이제 대학도 졸업하고 다른 집에서 며느릿감으로 눈독 들일 텐데 돈을 쓰더라도 빨리 제대를 하라 해서 우여곡절 끝에 제대를 한 것이다.

그 당시 결혼은 남녀 간의 일대일의 연애사라기보다는 가족과 부모 사이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의 연애 사실을 모르고 계시다가 나중에 아셨다. 평소에 그 남자를 씩씩하고 바른 청년이라고 좋아는 하셨지만 공교롭게도 그 집은 대대로 남자들이 술을 너무 좋아하는 집이었다. 당장 그 남자의 형도 거의 알코올 중독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옆집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으셨고, 그 청년도 사위로는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도 전에 아버지는 우리가 연애하는 것을 알게 되셨다. 주고받았던 편지가 들킨 것이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집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으셨던 것도 있지만 언니보다 내가 먼저 결혼하려고 하는 것을 아버지는 매우 못마땅해하셨다. 그 당시 언니는 대학을 못 간 대신 5과 대상이라고 해서 국가에서 뽑혀갔다. 5과는 소위 말하는 얼굴이 반반한 여자들을 국가에서 뽑아서 위문이나 서비스업에 배치하는 것이다. 외국 사람 접대나 군대 위문공연 같은 일을 하고 소위 말하는 기쁨조도 5과에서 선발된다.

언니는 5과 선발 자원으로 선택이 돼서 농촌 동원도 안 당하고 특별 관리를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5과가 어떤 곳인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국가에서 특별하게 선발된 언니를 부러워했다. 언니는 그렇게 평양으로 불려가서는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가 나중에 지방 어느 군부대 인근으로 발령받았다고 알려왔다. 군부대 위문 공연을 다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와중에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았을지 걱정이 된다. 그나마 지방으로 배치된 것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튼 언니가 5과에서 제대하기 전에 동생이 먼저 결혼하게 생겼으니 아버지의 평소 가치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그 청년이 옆집에 살다 보니 아버지는 청년 얼굴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으셨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씩씩하고 우렁차게 인사를 하는 그이에게 아버지는 이전 같으면 하지 못할 욕을 막 하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꿋꿋이 웃으며 인사하던 그이도 참 굳센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이는 결혼을 하기 위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헤어지라는 우리 아버지의 말에 그이는 헤어지느니 차라리 양잿물을 먹고 죽겠다 하며 아버지 보는 앞에서 난리를 쳤다. 평소에 씩씩하고 바른 모습만 보였던 청년이 저렇게 고집을 부리니 아버지는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하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했던가.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상황은 결국 아버지의 허락으로 마무리되었다. 죽더라도 결혼해야겠다던 그이의 고집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결국은 나는 언니보다 먼저 결혼을 했다. <계속>

© 2016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의견 나누기

Real Time Analytics
Web Analy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