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한민 전도사가 쓴 것으로, 본지는 이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장로회신학대학교
(Photo : ) ▲장로회신학대학교

2. 장신대 일반게시판의 동성애 옹호 성명서들

 

(1) "우리는 누구인가?"(일반게시판 29820번 글)

장신대 학생들의 동성애 옹호적 성명서로는 2017년 6월 6일 장신대 일반게시판에 올라온 "우리는 누구인가?"가 있다. 이 성명서는 장신대 신약 관련 세미나 이후 신약학의 S교수가 총회에서 나온 동성애 관련 책자를 학생들에게 배포한 데에 일부 학생들이 반발한 것에서 촉발되었다. 이들 학생들은 다음 성명서를 작성하고 장신대 재학생들과 동문들 중 50인 정도의 동의 서명을 받았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1.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 배고픈 자들, 아픈 자들, 그리고 갇혀 있는 자들 가운데 계신다. 이 땅의 버림받은 자들을 돕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돕는 것이다.(마 25:31 이하) 우리는 성서적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반하는 내용의 종교적 교리를 거부한다.

2. 우리는 반사회적, 비이성적인 신앙과 신학을 거부한다.

우리는 며칠 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을 경험했다. 신학춘추 114호에 게재된 성소수자 관련 인터뷰 내용을 비판하며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과 SNS에 성소수자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글이 난무했다. 뿐만 아니라 6월 2일 본교의 S교수는 주간예배가 있는 한경직 기념관 1층과 2층에 동성애를 반대(심지어 혐오하는)하는 편협한 내용의 책자를 대량으로 비치하고 학우들에게 나눠주었다. 책을 옮기면서 S교수는 교내에도 동성애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돌발행동을 하면 사진을 찍으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우리는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비판, 혐오하는 반사회적, 비이성적인 태도를 거부한다.

3. Sola Scriptura

종교개혁의 정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보다 성서가 더 우위에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에 맞지 않는 교회의 전통과 교단의 입장 우위에 성서가 있음을 주장한다.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필수적인 해석학적 맥락은 사회의 가난한 자들, 갇혀있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과의 연대함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의 연대 가운데 계셨음은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가리킨다. 우리는 동성애를 비난, 정죄하기 위한 근본주의 문자적 성서해석을 거부한다.

4. 우리는 실천하는 신학생이다.

신학은 기독교신앙을 변증함과 동시에 교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잘못된 교리와 맹목적인 신앙을 비판하고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가장 적합한 설명은 실천(praxis)이다. 선악을 결정하는 교만한 태도를 잠재우고 성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실천은 시작된다. 우리의 신학을 선포해야 한다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맥을 같이 해야 한다.

5. 우리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거부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인권의 역사에 있어서 장애인, 여성에 이어 이 시대가 풀어야 할 마지막 과제이다. 사회적, 종교적인 억압과 눈초리가 성소수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성소수자들은 더욱 자극적인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사회가 아직 성소수자들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훗날 성소수자들을 정죄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냉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옳음을 정당화하고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종교생활을 했던 바리새인보다는 매시간 죄책감과 고립감, 차별대우를 받으며 주님께 부르짖은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이다.(눅 18:9-14)

하나님의 나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연대하는 가운데, 정의를 향하여 헌신하는 가운데,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의 애타는 열망에 새로운 민감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이 성명서에 대해 특기할 점은 이 성명서가 장신대 신약 관련 세미나 이후 신약학의 S교수가 총회에서 나온 동성애 관련 책자를 학생들에게 배포한 데에 항의하는 뜻에서 발표된 성명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6월 2일 본교의 S교수는 주간예배가 있는 한경직 기념관 1층과 2층에 동성애를 반대(심지어 혐오하는)하는 편협한 내용의 책자를 대량으로 비치하고 학우들에게 나눠주었다.(위 성명서 중)

이 성명서가 총회의 동성애 관련 책자를 배포한 것에 항의해서 나왔으므로 이 성명서의 작성자와 이 성명서에 서명한 학생들은 총회의 동성에 대한 입장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성명서에서 가장 심각한 점은 이 성명서는 동성애를 죄로 보는 성경해석을 근본주의적, 문자적 성경해석으로 보고 거부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보다 성서가 더 우위에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에 맞지 않는 교회의 전통과 교단의 입장 우위에 성서가 있음을 주장한다.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필수적인 해석학적 맥락은 사회의 가난한 자들, 갇혀있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과의 연대함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의 연대 가운데 계셨음은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가리킨다. 우리는 동성애를 비난, 정죄하기 위한 근본주의 문자적 성서해석을 거부한다.(위 성명서 중)

위 성명서에서는 '우리는 동성애를 비난, 정죄하기 위한 근본주의 문자적 성서해석을 거부한다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무슨 얘기인가? 그것은 곧 동성애를 죄로 해석하는 것은 문자적인 성경해석이며 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성애는 죄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장신대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지침'과 총회의 동성애에 관한 입장에 반대되는 것이다. 장신대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지침은 다음과 같이 동성애가 성경에서 금하는 죄임을 밝히고 있다:

둘째, 성경은 동성간의 성관계를 금한다.

성경은 합법적인 이성애에 기초한 부부의 범위를 넘어선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레 20:13). 동성애는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서 행해지는 관습들이었지만, 거룩하게 살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금지된 행위였다. 동성애는 "~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표현을 수반하는 근친상간에 포함되지 않고, 몰렉 제사, 수간 등의 부적절한 음란한 죄들에 포함되었다. 신약에서도 남색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불의한 죄악으로 여겼고(고전 6:9), 중한 죄의 목록에 두었다(딤전 1:10).

셋째, 성경은 동성애를 윤리적인 죄로 간주한다.

성경이 동성애를 가증한 죄(토에바)라고 말하는 것은, 동성애가 목욕과 제사에 의하여 회복되는 제의적인 죄(레위기 1-16장)가 아니라, 윤리적인 책임을 동반하고 자신의 생명으로 책임져야 하며, 땅으로부터 토해지는 형벌을 치러야 하는(레 18:29) 윤리적인 죄에 속하기 때문이다.('동성애 문제에 관한 교육지침' 中)

이러한 장신대 동성애 문제에 관한 교육지침의 동성애의 죄성에 대한 언명은 총회 대사회문제 대책위원회의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에 나타난 총회의 동성애에 관한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둘째,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선포하며 동성 간의 성관계를 금하고 있다.

성경은 이성애에 기초한 합법적인 부부의 범위를 넘어선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레 20:13). 동성애는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서 행해지는 관습들이었지만, 거룩하게 살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하여 금지된 행위였다. 이러한 동성애에 대한 금지는 문화적 상대주의의 주장을 넘어 개인과 공동체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보편적 기본질서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는 "~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와 같은 표현을 동반하는 근친상간의 죄(레 18:6-18)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음란한 죄(레 18:19-23)에 속하는 죄로 여겨진다. 신약성경에서도 남색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불의한 죄악으로 여겼고(고전 6:9), 심각하고 무거운 죄의 목록에 두었다(딤전 1:10).('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中)

그렇다면 장신대의 '동성애 문제에 관한 교육지침'과 총회 대사회문제 대책위원회의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에서의 동성애가 죄라는 해석은 위의 성명서에서 말하는 대로 '근본주의 문자적 성서해석'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동성애가 죄라는 성경해석은 동성애가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제국 애굽과 가나안에서 용인되고 행해지고 있던 관습이라는 동성애 행위에 대한 사회문화적 컨텍스트를 고려한 해석으로서 근본주의 문자적 성경해석이 아니다. 동성애가 죄라는 성경해석이 문자주의적 성경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장신대 배정훈 교수님의 레위기 18장, 20장의 동성 성행위 금지 규범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해석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레위기가 금하고 있는 관습들은 애굽, 가나안을 비롯하여 근동국가들에서 행해지고 있던 관습이다. 특별히 이 관습들을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라고 말함으로써 이 관습들이 단순히 다른 신들을 향한 우상 숭배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행하던 관습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즉,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백성들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구약성경에 나타난 동성애' 中)

위 성명서와 관련하여 살펴봐야 하는 또 한 가지는 위 성명서에서 동성애자들을 여성,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위 성명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인권의 역사에 있어서 장애인, 여성에 이어 이 시대가 풀어야 할 마지막 과제이다.

여기서 동성애자들을 여성,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이자 약자로 볼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위 성명서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여성, 장애인과 같이 역사적으로 볼 때에 핍박받고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은 소수자와 약자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동성애자들이 여성, 장애인과 같이 생래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동성애자가 된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동성애 옹호자들은 동성애는 유전적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은 여성과 장애인과 같은 약자들을 차별하는 것과 같다는 논거를 편다. 실제로 90년대 초반에는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과학적인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고, 이것이 당시의 통념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전자에 대한 최신 연구가 얘기해주는 것은 동성애를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질병유전자 검사인 GWAS 검사방법에 의하면 정신분열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서른 개가 넘게 발견된 반면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동성애는 유전적이므로 동성애자는 여성,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이자 약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를 소수자이자 약자로 보는 것은 서구의 문화역사적 컨텍스트에 입각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실제로 중세에 동성애자들을 핍박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실제로 동성 성행위를 형사법을 통해서 처벌하는 Sodomy 처벌법이 있어왔다. 서구에서는 그러한 과거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우가 지나쳤다는 반성에서 동성애자를 약자로 보고 보호하자는 운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와 같이 동성애자를 핍박한 역사가 없으며, 동성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성애자를 소수자이자 약자로 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근거 없는 것이다.

(2) 교회는 혐오의 총칼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입니다(일반게시판 29975번 글):

제102회 통합 총회에서는 총회산하 신학대학교가 건강한 남녀 결합의 제도와 그 정신을 올바르게 교육하도록 하는 청원을 허락하였고,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의 입학을 불허하고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동성애를 가르치는 교직원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조처하기로 결의하였다. 제102회 총회에서는 이와 아울러 '동성애에 관한 총회의 입장'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35대 학부 총학생회 '서로'는 이러한 통합 총회의 동성애에 관한 결의에 대하여 반대하는 성명서 '교회는 혐오의 총칼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입니다'를 발표하고 이를 장신대 일반게시판에 게시하였다. 또한 231명의 장신대 재학생과 동문들이 이 성명서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였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교회는 혐오의 총칼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기원 후 49년경의 일입니다. 안디옥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벌어진 논쟁이 그 일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 횡행하자, 이를 가지고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교회에 모여 머리를 맞댄 것입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달리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모세 율법의 준수는 '그 사람이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 가려내는 척도'이기에 이는 서로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첨예한 논쟁이었습니다. 많은 논쟁 후에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의 선언이었습니다. 교회사의 첫 공의회로 알려진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의는 우리 신앙고백의 토대를 마련한 것에 있으며, 이 정신은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 그리고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우리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우리의 견고한 신앙고백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은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모세의 율법이 아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은혜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의 고백'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102회 총회의 결의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우리는 총회에서 19일 오후 회무 시간,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남녀 결혼 제도를 가르치도록 해 달라"는 신학교육부의 안건에 더하여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교단 소속) 7개 신학대 입학을 불허한다", "동성애를 옹호하고 가르치는 교직원은 총회에 회부하고 징계 조치해야 한다"는 안을 결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20일 오전 회무 시간, 총회의 헌법개정위는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는 교회 직원(항존직, 임시직, 유급 종사자)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헌법 시행 규정 제26조 직원 선택란에 문구를 삽입하겠다"고 청원하였고, 이에 안건은 이견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결정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극적 타결을 이루어낸 예루살렘 공의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일까요? 102회 총회를 이끌어가는 선배님들의 시대와는 다르게 우리가 직면한 현시대는 동성애자들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하는 시대입니다. 신학은 세상의 고통과 각 시대마다 품고 있는 과제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변증하는 학문이라 배웠습니다. 우리의 신학은 광나루 언덕에서만 회자되는 신학이 아니요, 신학교라는 상아탑에만 갇힌 죽은 신학이 아닙니다. 광나루 언덕에서 신학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신학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것에 신학생의 정체성과 소명을 두고 있습니다. 곧, '신학은 동성애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답할 것인가?'가 신학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소명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현 총회의 결의는 우리의 소명을 무참하게 앗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102회 교단 총회를 이끌어가는 선배님들께 간곡히 청합니다. 동성애는 선배 목사님들이 아닌 우리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 시대적 과제입니다. 우리에겐 '신학과 교회가 이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야할지 깊이 탐구해야할 책무가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낯선 타자로 남아있습니다. 선배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삶으로 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곳 아닙니까? 예수를 따르는 우리가 변증해야 할 신학은 우리 중심적 이웃개념을 가지고, 이웃과 이웃 아닌 자를 나누어 배제하고 혐오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이웃이 되어주기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무한한 사랑의 영역을 넓혀가고, 그 사랑 안에 아무런 차별도 혐오도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웃이 되려면, 가난하고 무시 받는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들을 배제와 소외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으로 여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배우고 싶습니다. 성경적으로 동성애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교회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넓혀가는 것인지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찬양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옛날 우리의 부모님과 선배들이 북한동포를 '뿔 달린 괴물'로 오해했던 것처럼,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오해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의 모습을 적확하게 알고, 보다 성경에 가깝게, 보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에 가깝게 알고, 그들에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에 신학생이 자유롭게 동성애의 문제를 논할 수 있는 풍토와 환경이 신학교에 조성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하나, 학교 당국과 우리의 선생님들께 요청합니다. 우리가 신학생으로서 배움의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부디 도와주십시오. 소수자들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이 시대의 문화에서 교회와 신학이야말로 혐오와 배제의 극악무도한 공격을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하나, 함께 신학함과 기독교교육함과 교회음악함으로 광나루에 모인 친구들께 호소합니다. 우리의 교육권을 우리가 끝까지 지켜 나갑시다. 우리와 우리의 후배들이 광나루 언덕에서 자유롭고, 진지한 진리 탐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3:26-28)

2017년 9월 22일, 장로회신학대학교 35대 총학생회 '서로'

이 성명서가 심각한 점은 제102회 통합 총회에서 총회산하 신학대학교가 건강한 남녀 결합의 제도와 그 정신을 올바르게 교육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허락하고,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의 입학을 불허하고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동성애를 가르치는 교직원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조처하기로 결의한 것이 마치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의 사도들의 결의에 반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의 결론은 베드로가 천명한 것과 같이 '이방인들도 차별없이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사도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 것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성애는 분명히 이들 중 '음행'에 속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행위를 고집함으로서 사도들이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권고한 성도로서의 삶의 방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자 하는 자들이며, 총회의 결정에서는 이들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총회의 결정이 마치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에 역행하는 것인양 호도하는 것은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다.

교단 소속 신학교인 장신대 학생들이 그것도 총학생회의 차원에서 교단의 동성애에 관한 결의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것도 성경해석을 왜곡시키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여론이 상당히 넓게 펴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또한 이 성명서는 장신대 재학생들과 동문들 중에서 200명이 넘는 인원의 동의 서명을 받은 것을 볼 때에 상당한 지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