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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교회

임종구 | 국제제자훈련원 | 264쪽 | 14,000원

글에도 색이 있다. 어떤 이의 글은 청명한 하늘처럼 맑고 투명하다. 어떤 이의 글은 봄의 햇살처럼 따스하다. 어떤 글은 파도처럼 역동적이며 생동감이 있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용기를 준다. 또 어떤 글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만든다.

임종구 목사님의 글은 마지막에 해당된다. 시작은 마음을 쓸어내리는 안타까움이었으나, 마지막은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의기소침하고 상한 심령으로 무너진 나의 마음을 긍휼의 아버지께서 만져 주심을 느꼈다.

<단단한 교회>를 임종구 목사님의 사적인 이야기로 한정짓기에, 이 책은 너무나 크다. 교회를 개척해 오직 말씀과 제자훈련을 통해 교회를 세워 나갔던 임종구 목사님의 생채기가 검은 잉크로 점철된 책이다. 목회가 무엇인지, 삶으로 살아낸 복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척교회', 이 단어에서 소름이 돋는다면 목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반 지하에 위치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계단을 내려가면 좁은 공간에 반주자도 없이 서너 명 앉아있고, 맥없는 목사의 설교가 들리는 곳. 필자는 세 번 정도 개척교회에서 함께 동역한 경험이 있다. 현재도 가족끼리 모여 예배를 드리는 개척교회 목사이다.

개척교회 목사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재정의 빈함이 아니라 무기력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목회적 소명에 대한 회의가 주는 절망이 무서운 것이다. 신대원을 졸업하기도 전에 개척하게 된 임종구 목사는 개척교회가 주는 모든 것을 단 하나도 피하지 못했다. 목회적 회의, 무기력, 생존을 위협하는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차갑고 아픈 시간을 보냈다. 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설령 학력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언어 능력, 세련된 매너와 풍성한 경험, 안정된 경제력과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생의 자랑은 자랑이 아니다. 사역자가 가진 진정한 보배는 질그릇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27쪽)".

개척교회라는 처절함을 체득한 이들이라면, 이 고백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빈함 속에서 부유한 것이고, 모든 자랑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져야 함이 마땅하다. 임종구 목사는 목회의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다.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절대 설교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이 책은 개척교회 성공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무색무취의 투명 인간처럼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3년이 지나도록 전 교인 열 명도 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다. 개척교회에 대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3년 동안 자립하지 못할 경우 그 교회는 더 이상 성장의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개척교회에 '한 사람'이라도 오게 되면 만 명을 얻은 느낌이 들 것이다. 개척교회를 경험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의미를 알아내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결국 사람들이 사역을 감당한다. 하나님은 저 돌들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개척교회는 더욱 그렇다. ... 그래서 개척교회에서는 더욱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31쪽)".

교회 개척의 시기는 회의와 절망의 시간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것은 '광야로 나가는 것(35쪽)'이다. 광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부흥에 대한 꿈? 성장에 대한 기대? 아니다. 임종구 목사는 그 시간 자신을 들여다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개척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더 자세히 들어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니 오히려 힘이 빠졌고, 자신감은 제로가 되었다(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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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자기 성찰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보면서 오히려 절망했고, 상승이 아닌 '하강이었고, 끝없는 내리막길(39쪽)'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때를 회상하며 부흥하지 않음을 감사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회의하고 자기 비하에 이른 것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것이 우리의 실체이고, 진짜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CCM 중에 김명식의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라는 곡이 있다. 가사를 보면,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세워주고 일으켜 주신다는 약속을 붙잡게 한다.

'-상략-
내가 쓰러진 그 곳에서 주는 나를 강하게 하리
나는 다시 일어나겠네 주는 결코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리
내가 쓰러진 그 곳에서 주는 나를 강하게 하리
나는 다시 일어나겠네
주는 결코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리'.

가을이 오기 전에, 우리는 냉혹한 겨울의 황량함과 뿌리는 수고와 여름의 폭염을 견디어 내야 한다. 그래야만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가을에만 역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겨울에도 살아계시고, 봄에도 역사하시며, 여름에도 일하신다.

임종구 목사는 고난의 시간을 통해 단단해졌고, 단순해졌다. 단단함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라면, 단순함은 고난이 가져다준 거룩이란 선물이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복음만을 붙들고, 말씀만을 가르쳤다. 단단한 교회는 단순한 교회이다. 오직 주님만을 붙들기 때문이다.

처음 아내를 통해 <칼빈과 제네바 목사회>를 접한 후 한 번 꼭 뵙고 싶은 분이라는 생각만 했던 분이다. 그러다 일상을 기습해오듯 한 권의 책이 집에 도착했고, 그 책은 그렇게 만나기를 기대했던 푸른 초장교회 담임목사인 임종구 목사의 신간 <단단한 교회>였다.

국제제자훈련원에서 나온 제자훈련 시리즈 세 번째 책이기에 제자훈련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만 알았다. 물론 책의 목적은 제자훈련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제자훈련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알려준다. 그런데 단지 제자훈련을 소개하는 책으로만 한정지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럼 이 책은 무엇인가?

최근 들어 제자훈련은 비판을 넘어 현대 교회 실패의 결정적 역할을 한 원흉(元兇)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제자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담임목사의 제자로 만들어 교회를 사유화시켰다는 비판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제자훈련이 목사의 사병(私兵)을 기르는 세뇌교육이었을까? 그것은 제자훈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판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은 광의적 의미에서 성경공부이지만 일종의 소그룹 운동이자 말씀을 체화하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임종구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의 푸른초장교회에 이르기까지의 신앙 간증이자 목회철학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명을 잃어버린 목회자들에게 소명을 불러일으키는 소명 부흥서이다.

1-3장까지는 푸른초장교회가 성장한 과정을 다루었고, 4장에서는 임종구 목사의 목회관을 담고 있다. 마지막 5장에서 제자훈련 가이드 19가지를 소개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교회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핵심은 제자훈련이다. 목회철학은 4장 '신자, 가족, 시민의 꿈'에 담아 놓았다. 임종구 목사는 4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목회는 제자훈련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제자훈련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다른 길을 걸어본 적도 없다(115쪽)".

전인적 제자훈련에는 열 가지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세 가지 요소는 영적 성적, 지적 성장, 인격적 성장이다. 세 가지 성장은 신앙의 기초에 해당된다. 그 다음은 신앙의 준비로 윤리적 성장, 정서적 성장, 의지적 성장, 관계적 성장이다. 이 네 가지는 신앙과 삶을 포괄하는 전인적 성장이다.

마지막 세 가지 요소는 경제적 성장, 문화적 성장, 사회적 성장이다. 마지막 세 가지 요소들은 사회 속에서 삶으로 드러내야 할 요소들이다. 영적 성장의 세 단계는 첫 번째 신자의 영역, 두 번째 가족(공동체)의 영역, 세 번째 시민의 영역이다.

임종구 목사의 이야기가 신선했던 이유는 제자훈련을 체계화시키면서 전인적인 성도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제자훈련을 성경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모여 나누는 것에 한정시켰던 나의 인식을 뛰어넘어 버렸다. 임종구 목사는 깊은 샘처럼 맑고 투명하다. 오직 말씀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회관을 이렇게 피력한다.

"목사는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 특별히 개척교회 목회자는 더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135쪽)".

교회가 있는 그 지역에 충실해야 하고, '예배와 설교(136쪽)'에 충실해야 한다. 가정에 충실해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제자훈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우정(150쪽) 이라고 말한다. 우정은 곧 관계이며, 연대이다. 중세 신비주의자인 클레르보의 버나드는 영적 우정의 기초를 하나님의 사랑이라 말한다. 진정한 우정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사랑이 전제돼야 한다. 결국 사랑 없는 우정이 있을 수 없고, 사랑은 우정으로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책을 읽고 아내와 함께 나누었다. 잠시 잃어버릴 뻔 했던 목회적 소명을 다시 일깨워준 책이다. 그동안 '없다'고 원망했던 수많은 것들로 인해, 잊고 있던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나를 목사로 부른 '하나님'이었다. 쓰나미처럼 밀려든 절망적 상황으로 인해 베드로처럼 파도를 보고 물에 빠진 것이다.

책을 읽다 몇 번을 덮고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아야 했다. 나에게 영적 소명을 일깨워주고 망각한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보게 해준 임종구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잃어버린 소명을 찾게 해준 '단단한 교회'를 방황하는 모든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